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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도둑맞은 발명품을 찾아 떠난 시간여행
글·사진 박혜명 2007-03-13

디즈니와 픽사 합병 이후 첫 제작된 3D애니메이션 <로빈슨 가족> 파리 시사기

도쿄에는 디즈니의 땅뿐 아니라 바다(Disney Sea)도 있다. LA, 도쿄, 홍콩 그리고 여기 파리에 터를 닦은 디즈니랜드는 단지 놀이동산 체인점이 아니라 어른들에게조차 지리적 감각을 잃게 하는 폐쇄적인 환상의 대륙이다. ‘시청’이 위치한 ‘타운스퀘어’를 중심으로 디즈니랜드 파크 안에는 다섯 걸음마다 하나씩 머천다이징 숍들이 있고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순경 차량이 지나다닌다. 아이들은 미니마우스 가방과 곰돌이 푸우 배지와 잭 스패로우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가뜩이나 주말이라 개장시간이 조금 지나자마자 거대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인파가 일렁이며 파크 안으로 들어간다. 수십곳의 입구가 가득 메워졌다. 월트 디즈니씨가 자신의 후손들에게 물려준 유산의 엄청남을 규모로 실감한다. 선조의 오래된 창조물을 가능케 한 거대 사업의 현장에서, 후손의 미래가 달린 애니메이션 한편의 제작진을 만났다.

매력적인 픽사의 애니 캐릭터와 디즈니식 가족주의의 결합

<로빈슨 가족>은 고아 소년과 괴짜 가족의 만남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발명밖에 모르는 열두살 루이스는 외롭고 불행하다. 입양 기회가 주어져도 어른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엉뚱한 발명품만 자랑하는 탓에 매번 외면을 당한다. “나는 가족이 생길 운명이 아닌가봐”라고 낙담하던 루이스는 설상가상으로 어린이발명대회에서 자신의 필생의 발명품 ‘과거를 볼 수 있는 거울’을 도둑맞는다. 도둑놈은 미래에서 왔다 한다. 이를 알려준 또래 소년 윌버 로빈슨도 미래에서 왔다. 루이스는 발명품을 되찾기 위해 윌버를 따라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년 뒤의 시간여행을 한다.

루이스는 자신의 잃어버린 발명품으로 엄마를 만날 생각이었다. 어릴 때 고아원 앞에 버려져 기억에조차 없는 친엄마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려고 했던 것인데 미래에서 날아온 악당 때문에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나마 루이스는 긍정적 의지라도 지녔지만 그의 고아원 룸메이트 구웁은 왜소한 몸에 다크 서클 짙은 퀭한 눈을 하고 매사에 태도는 시니컬한, 참으로 못난 구석밖에 없는 고아 아이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어떤 모양의 어른이 되었는지가 밝혀지는 대목은 루이스가 먼발치에서 엄마를 보고 돌아서는 대목과 함께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순간을 연출한다. <로빈슨 가족>으로 극장편에 데뷔한 스티븐 앤더슨 감독은 그 자신이 어릴 때 입양되어 자랐다. 감독은 “본래 디즈니가 실사로 만들려고 했던 시나리오인데 초고를 읽고 너무나 맘에 들어 내가 꼭 연출하고 싶다고 했다”고 뒷이야기를 밝혔다. <로빈슨 가족>은 1991년 출간된 윌리엄 조이스의 그림책 <윌버 로빈슨과의 하루>(A Day with Wilbur Robinson)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여러 면에서 다르다. 원작 동화책은 주인공 소년이 윌버 로빈슨의 집에 놀러가 별별 개성으로 뭉친 로빈슨 가족을 만난다는 짧은 스토리가 전부. <몬스터 주식회사> <치킨 리틀> <> 등 디즈니와 픽사 스튜디오의 최근작을 써온 작가 대니얼 거슨은 무명이었던 주인공에게 이름을 주고 고아라는 설정, 시간여행이라는 소재, 가족 공동체가 지닌 의미를 하나씩 가볍게 덧붙여 나갔다.

루이스와 구웁, 연민을 자극하는 두 고아 캐릭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은 <로빈슨 가족>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첫 3D 작품이었던 <치킨 리틀>에 비해 훨씬 더 다듬어진 수준으로 캐릭터들의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중충하고 뾰족뾰족한 현실과 달리 알록달록하고 둥글둥글한 미래 도시에서 루이스가 만난 로빈슨 가족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개구리들을 노래 연습시켜 빅밴드를 꾸린 윌버네 엄마, 옷을 뒤집어 입고 자기 뒤통수에 눈코입을 그려 세상을 거꾸로 사는 할아버지, 디스코 댄스에 취한 할머니, 대포알 대신 대포 속에 자기 몸을 집어넣고 공중으로 솟는 삼촌과 페튜니아처럼 생긴 손인형 숙모 등이 커다란 집에 모여 시끌벅적하면서도 조화로운 일상을 꾸린다. 이들이 스토리 안에서 온전한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두루뭉술 사그라지는 것은 큰 아쉬움이지만 디자인에서부터 미완성의 느낌이 강했던 <치킨 리틀>의 캐릭터들을 떠올리면 <로빈슨 가족>은 <토이 스토리> 이후 자체 콘텐츠가 아닌 협력사의 콘텐츠에서 애니메이션 사업의 미래를 보던 디즈니가 스스로 출구를 드디어 찾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로빈슨 가족>은 픽사 스튜디오의 인력이 적극 동원돼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크리에이티브 총괄(Chief Creative Officer)을 맡은 사람은 픽사의 수장 존 래세터 감독이다. <로빈슨 가족>은 2006년 1월 디즈니와 픽사의 합병 이후 태어난 첫 결과물인 셈이다. 합병 당시 디즈니의 두 번째 3D 프로젝트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래세터를 포함한 픽사의 인력들은 도중 합류해 디즈니 애니메이터들과 협업했다. 슈퍼바이징 애니메이터 딕 존 다그(<로빈슨 가족>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입체적인 매력의 악당 캐릭터 ‘보울러 햇 가이’를 책임졌다)는 “그들은 3D애니메이션에 관한 훌륭한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그것들을 공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며 “픽사 친구들은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라는 긍정적인 평도 잊지 않았다. 프로듀서 도로시 매킴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관해 자기 견해를 밝히던 중 이렇게 말했다. “존 래세터는 디즈니의 현재다.”(He’s today of Disney)

개봉시 미키마우스와 구피의 소동극 <보트 빌더>도 상영

오는 4월19일 <로빈슨 가족>이 국내 개봉하면 관객은 본편 시작에 앞서 짧은 단편을 보게 될 것이다. <보트 빌더>(Boat Builder)라는 제목의 이 단편은 미키마우스와 구피의 보트 만들기 소동극으로 디즈니의 클래식 컬러애니메이션이다. 도로시 매킴 프로듀서는 “요즘 관객에게 디즈니 클래식을 상기시켜주려는 목적으로 삽입했다”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픽사가 하는 것과 형식은 같지만 의도는 정반대인 셈이다. 픽사의 재기 넘치는 단편은 그들의 창의력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반면 디즈니의 고전 단편은 세계 주요 도시에 건재한 애니메이션 왕국을 회고하게 한다. 그 불변의 자부심과 픽사 기술력이 합체한 것이 <로빈슨 가족>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전통적인 가족주의 틀 안에 큰 갈등없이 밀어넣으면서 끝을 맺는 <로빈슨 가족>은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쉬지 말고 정진하라”(Keep moving forward)라는 구절을 강조한다. 엄마를 찾는 고아 소년의 이야기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문구는 월트 디즈니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정진의 명을 받은 그의 후손들이, 다른 집안의 장인들이 보유한 첨단의 창의력과 기술력 안에서 가업의 미래를 찾아냈다.

<로빈슨 가족> 제작진 인터뷰

“애플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을 입히고 싶었다”

디즈니랜드 내 호텔에서 감독 스티븐 앤더슨을 비롯해 프로듀서 도로시 매킴, 슈퍼바이징 애니메이터 딕 존 다그, 아트디렉터 롭 러펠을 각각 인터뷰했다. 지면 관계상 각각의 질문과 대답을 간추려 싣는다. 감독 소개만 짤막하게 덧붙이면 스티븐 앤더슨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토리 부서에서 근무한 애니메이터 출신으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를 거쳐 <쿠스코? 쿠스코!> <브라더 베어>의 스토리 부문 슈퍼바이저를 담당한 바 있다. 비디오 애니메이션들을 찍었고 <로빈슨 가족>은 극장편 데뷔작이다.

-(감독에게) 보울러 햇 가이를 비롯해서 목소리 연기를 세 캐릭터나 직접 했던데. =처음부터 내가 할 계획은 아니었다. 적당한 배우를 찾기 위해 스탭들끼리 보이스 액팅을 하다보니까 내 목소리가 캐릭터에 맞는 것 같아서 하게 됐다.

-(감독에게) 주인공 루이스와 자신을 많이 동일시했다고 했다. =루이스와 내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나는 아주 어릴 때 바로 입양되어서 경험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루이스가 품었던 질문들이 어릴 때 내가 했던 질문들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어디 있을까, 엄마는 왜 나를 버렸을까. 그런 질문들 때문에 좌절도 많이 했고, 평소 조용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지냈다.

-(아트디렉터에게) 미래 도시의 모습이 밝고 둥글다. 미래 공간의 미술 컨셉을 어떻게 잡았나. =1930년대 산업디자인에서 메인 컨셉을 차용했고 지금의 애플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을 입히려고 했다. 1930년대 초현실주의 건축 컨셉을 미래적으로 바꾼 것이다. 용어적으로는 ‘복고-미래적’(retro-futuristic)이다.

-(슈퍼바이징 애니메이터에게) 악당 캐릭터 보울러 햇 가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디자인되었나. =보울러 햇 가이는 과거에 갇힌 인물이다.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구석을 벗지 못했고, 전형적인 악당이면서 알고 보면 가엽다. 그런 사람이 아이들의 시점에서 악당으로 보이려면 어때야 할까를 고민했다. 팔다리의 동작이 뱀 같은, 짐 캐리의 몸짓 같은 걸 떠올리면서 동작을 고안했다.

-(프로듀서에게)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구절 ‘keep moving forward’는 어떤 과정에서 넣게 되었나. =처음부터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었다. 제작 기간 중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인데, 모두들 ‘바로 이거야!’라고 했다. 우리가 말하려는 이야기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었다. 그 인용구를 발견한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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