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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의상감독들] <마리 앙투아네트>의 밀레나 카노네로
박혜명 2007-04-05

스크린 밖까지 이어지는 트렌드 리더

<마리 앙투아네트>

2006년 칸영화제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상영된 직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컨버스 운동화가 화제에 올랐다. 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커스틴 던스트)가 형형색색의 구두들을 바닥에 늘어놓고 오늘은 뭘 신을까 고민할 때, 패닝하는 카메라 안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신는 하늘색 컨버스 운동화가 턱 끼어드는 장면이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이었다. ‘베르사유의 컨버스’는 옥에 티가 아니라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밀레나 카노네로 의상감독이 영화의 전체적인 의도에 맞춰 꾸민 설정이었다. 카노네로의 설명에 따르면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굉장히 모던하면서 여성스럽고 지적인 소녀”이고 이 영화는 “완전히 낯선 곳으로 보내진 소녀가 ‘여자다움’(womonhood)을 향해 가는 사적 감정의 여행”이다. 컨버스 운동화를 로코코 스타일의 구두들 틈에 놓은 것은 지금도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소녀들의 일상과 이 영화를 다리놓기 위함이었던 셈이다. 각종 사료들 속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이답지 않게 묵직한 보석들과 복잡한 레이스로 몸을 치장한 것과 달리 카노네로는 커스틴 던스트의 드레스에 레이스를 적게 달고 옷감 자체의 문양이나 장식들이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느낌, 즉 그래픽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했다. 굵고 묵직한 목걸이가 늘어져 있어야 할 목에는 앙증맞고 부드러운 리본을 장식해서 소녀에게 자유로움과 생기를 주었다. 동시대적이면서도 당대적인 패션을 요구한 코폴라 감독은 사실적인 시대묘사에서 가능한 한 벗어나 “믿기 힘든 영화가 되게 하자”고 주문했다. 기본 재단과 실루엣은 고증을 따르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사한 파스텔 색감과 날아갈 듯한 드레스는 쾌활한 소녀들의 현대적인 일상 분위기에 더 가까워져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컨버스화, 즉 시대물 의상의 동시대성은 카노네로의 작업을 요약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대표적인 예는 줄리 테이머의 극영화 데뷔작 <타이투스>(1999)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희곡을 원작 삼은 이 영화는 로마 장군과 그의 전쟁 인질이 된 고트족 여왕, 로마 황제와 이들 각각의 자녀들이 뒤엉켜 사랑과 탐욕, 질투와 복수심으로 빚어내는 서사극이다. 브로드웨이 무대연출가 출신 줄리 테이머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관통하는 비극미를 한껏 살리면서 시공간의 배경을 현대적으로 뒤틀었는데, 여기에 카노네로의 의상이 큰 기여를 했다. 카노네로는 로마시대의 실루엣과 금속 소재들, 1·2차대전 전후로 특징적으로 변화한 현대적인 실루엣들과 다양하게 개발된 옷감들을 끌어와 어느 역사에도 존재한 적 없는 독특한 의복 파노라마를 선보인다. 중요한 건 이것이 단지 감독의 주문대로 “극적이며 극단의 판타지 스타일”을 좇은 게 아니라 실제로 5∼10년 뒤의 의상 트렌드를 예고한다 싶을 만큼 모던한 감각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의 의상은 스토리와 캐릭터를 부연하지만 1회성의 유일무이한 무대의상으로 남지 않고 지금 관객이 입고 싶어하는 동시대 최신 의복으로서 스크린 밖에서 호소력을 이어간다. 1920년대 뉴욕 상류층의 문화를 보여주는 <카튼클럽>(1984)에서 복고풍 패션에 세기말적 실루엣과 추상 패턴을 조화시킨 스타일이라든지 아프리카 대륙의 광활함과 낭만을 담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의 자연주의적 패션은 영화 개봉 이후 온갖 패션지들에서 기사화됐고, 세계의 패션 트렌드에 실질적인 영감을 주었다고 평가받았다. 당시 랠프 로렌은 자신이 카노네로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 말하면서 “업계 최고의 의상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라는 멘트를 남겼다.

<타이투스>

<배리 린든>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인 밀레나 카노네로는 제노바에서 미술과 디자인사, 의상디자인을 배운 뒤 곧바로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여느 의상감독들처럼 연극무대와 영화를 오갔고, 친구들의 부티크 상품으로 옷을 디자인했다. 이 무렵에 그가 했던 또 한 가지 일은 CF의 비주얼을 스타일링해주는 작업이었다. 시대의 첨단 트렌드를 반영하는 CF계,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영상감각의 보유지 런던에서 그가 스타일리스트로서 활동했던 경험이 이후 영화 작업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임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1975년 스탠리 큐브릭과의 두 번째 작업 <배리 린든>으로 첫 오스카를 수상한 밀레나 카노네로는, 자신의 나이를 밝힌 적이 없다. 각종 인터뷰나 정보 사이트에서도 꽁꽁 숨겨진 그의 나이는 “60년대에 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는 말에서 대강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이 싫다. 나는 늘 소용돌이의 한 중간에 있을 뿐 어디가 시간의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는 알 수 없다.” 선문답을 들은 <뉴욕타임스> 기자는 이것이 카노네로의 패션 철학과 맞물린 것이 아니겠느냐고 기사에 썼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컨버스화도 아마도 거기에서 튀어나온 듯싶다.

카노네로의 영화적 스승, 스탠리 큐브릭

‘영화 만들기’에 관한 가르침을 주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는 밀레나 카노네로의 영화의상 데뷔작이다. 이후 <배리 린든>(1975)과 <샤이닝>(1980)을 합쳐 큐브릭의 주요작 3편을 작업한 카노네로는 큐브릭이 자신의 파트너라기보다 “영화적 스승에 더 가깝다”고 표현했다. “그와 작업하면서 배운 것은 의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화 만들기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영화마다 불어넣을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이론적이지도 않았고, 늘 하던 얘기를 반복하지도 않았다.” 위트있고 미래적인 작업으로 평가받은 데뷔작을 지나 카노네로에게 첫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배리 린든>은 준비 기간만 18개월이 걸린 작품. 부와 명예를 꿈꾸는 남자의 파란만장한 생을 다룬 3시간짜리 영화 안에 서민부터 귀족까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다양한 계급상, 잉글랜드와 프랑스, 프러시아의 군대상 등이 들어가 있는데, 과한 수사를 부리지 않고 시대의 우아함을 살리는 데 충실했던 정직한 시대물 작업이 젊은 영화의상 디자이너들에게는 교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카노네로가 광고 일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광고업계에서 휴 허드슨 등의 영화감독들(휴 허드슨과는 이후 <불의 전차>를 작업했고 이 영화로 두 번째 오스카 의상상 수상)과 안면을 트게 된 그는 친분을 쌓은 한 촬영감독을 따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촬영장에 놀러갈 수 있었다. 그 뒤로 카노네로는 영화 자료조사나 후시녹음 같은 잡일을 하면서 큐브릭의 스탭 중 하나로 지냈다. “의상 일 해볼 텐가?”라는 어느 날의 제안으로 둘의 인연과 카노네로의 영화쪽 커리어는 동시에 시작됐다. “언제나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라고 회상하는 카노네로는 올해 <마리 앙투아네트>로 세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쥐었을 때 “이 상을 큐브릭에게 바치겠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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