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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모른다
2001-10-12

예상 깨고 `대박` 터뜨린 영화들

예기치 않은 홈런이 터져나올 때가 있다. 홈 플레이트를 밟는 입장에서야 이유 따질 것 없이 기쁜 일이지만, 상대 팀은 갑자기 뺨을 한대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을 느낄 터. 지난 10여년 동안 제작된 한국영화 830여편 중 흥행 순위 ‘베스트 50’에 랭크된 영화들 역시 모두가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은 ‘홈런타자’였던 것은 아니다. 이중에는 개봉 전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외면당한 영화들이 상당수 끼어 있다. 그래서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모른다”는 게 흥행에 관한 제1경구로 남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97년 정통 멜로영화의 부활을 알린 <편지>는 ‘대박’의 기운을 예감하지 못한 경우다. 같은 해 개봉한 <접속>이 통신을 매개로 한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신선한 설정, 신인감독답지 않은 꼼꼼하고 세련된 연출 등으로 평단으로부터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어낸 데 비해 <편지>는 낡은 신파 멜로영화의 공식을 답습해 한국영화를 후퇴시켰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는 신씨네의 시의적절한 홍보전략을 등에 업고 첫 주말에만 서울관객 5만명을 동원하며 이러한 질타를 잠재웠다. 1998년부터는 생소한 장르를 선택한 영화들의 ‘반란’ 물결이 이어졌다. <퇴마록>은 드라마의 완결성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업그레이드된 CG’를 내세워 흥행작 대열에 섰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9년까지 이어졌다. “한국에서 스릴러는 안 된다”는 제작자와 관객 사이의 묵계를 <텔미썸딩>은 한석규, 심은하라는 특급 캐스팅 작전으로 깼고, <주유소 습격사건> 역시 관객으로부터 기대 이상의 호응을 끌어내며 <투캅스> 시리즈를 잇는 코미디영화의 흥행계보를 이어갔다. 또한 <자귀모>는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이라는 특이한 설정으로, 리메이크한 <링>은 원작인 일본영화보다 먼저 국내에서 개봉하면서 호기심을 끌었다. 지난해 <비천무>와 <단적비연수>는 평단은 물론 관객까지 가세, 악평을 퍼부으며 그해 최악의 영화에 자주 거론된 영화들. 그럼에도 몇년 전에 비해 배가된 국내 배급사의 파워와 대대적인 마케팅 물량공세 덕을 보며, 서울관객 60만명 선을 넘겼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하루> <선물> <인디안 썸머> 등도 낡은 최루영화 공식으로 관객을 끌었던 예. 올 여름 흥행작인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 역시 두루 호평을 받은 영화는 아니었다. 이렇게보면 평단이 기준으로 삼는 영화적 완성도가 흥행결과와 직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평론가들의 싸늘한 평가를 무색게 하는 흥행결과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영화 관계자들이 완성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떤 수준 이하의 영화가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기 때문. <조폭 마누라>가 충격적인 것은 위에 언급한 영화들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그간 악평을 받고도 흥행했던 몇몇 영화사 관계자들은 “우리는 <조폭 마누라>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영진 anti@hani.co.kr▶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1)

▶ <조폭 마누라> 예상 뒤엎은 흥행폭풍, 부정적 영향 우려 목소리 높아 (2)

▶ 예상 깨고 `대박` 터뜨린 영화들

▶ <조폭 마누라> 제작자 현진영화사 대표 이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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