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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일본의 청춘들 <카뮈 따윈 몰라>

영화를 만드는 일본의 청춘들. 그들이 영화에 올인할수록 주변 현실은 희석된다.

<카뮈 따윈 몰라>는 카뮈의 소설과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들을 밑그림으로 해서 일본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일본 대학생들이 영화를 찍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에서 <이방인>은 영화 속 영화로 변주되고, <Day for Night> <아델 H의 이야기>는 영화를 찍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 응용된다. 영화는 월요일에서 시작되어 그 다음주 화요일까지 9일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영화제작은 당연히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진행되고 학생들은 지쳐간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연배우가 출연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이 생기고 조감독은 다른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다행히도 물망에 올린 다른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어 이 문제는 해결되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터져나온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이들 청춘남녀에게 고민거리는 두 가지밖에 없다. 영화 혹은 연애는 그들이 당면한 현실이자 고뇌이자 이상이다. 따라서 <카뮈 따윈 몰라>는 이 두 가지 화두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된다. 감독을 맡은 마츠카와(가시와바라 슈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망만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지만, 5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 유카리(요시카와 히나노)는 그와 결혼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양 행동한다. 그녀는 마츠카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영화 스탭들에게 줄 음식을 사오고, 직접 만든 수예품을 선물하지만 마츠카와는 결혼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마츠카와의 말 한마디에 콧대를 높이는 수술을 하는 유카리를 두고 스탭들은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아델이라는 별칭을 붙여준다. 영화를 통해 사고하고 영화를 소재로 대화하는 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영화제작 총지휘를 맡고 있는 나카조 교수(혼다 히로이타로)를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오는 아센바하라고 부르는 것이나 영화사에서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들을 읊는 일은 이들에게 매우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들은 로버트 알트먼의 <플레이어>에 나오는 8분짜리 롱테이크가 사실은 하나로 보이게 편집된 2개 컷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분별해내고, 살인에 대한 명장면이 담긴 영화 베스트 목록을 자신만의 감식안으로 선정하는 영화광들이다.

이들이 찍는 영화의 제목은 <지루한 살인자>다. 야나기마치 미쓰오 감독은 한 고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살인을 저지른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대본 연습을 통해 드러나는 영화의 내용은, 살인을 하면 어떤 감정인지 알고 싶어하는 고등학생 다케다가 실제로 노부인을 살해하지만 죄의식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다케다라는 캐릭터는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를 모델로 삼고 있다. 영화 제목인 <카뮈 따윈 몰라>는 다케다 역을 맡은 주인공 이케다(나카이즈미 히데오)가 카뮈나 그의 소설을 알지 못한 채 영화제작팀에 합류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야나기마치 감독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와세다대학에서 영화제작 워크숍을 강의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1985년 <불의 축제>로 로테르담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1992년 <사랑에 대해서, 도쿄>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야나기마치 감독은 10년 만에 <카뮈 따윈 몰라>를 만들었다. 실제로 카뮈 따윈 모르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감독은 유령처럼 살아가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부정적인 시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보는 이미지 그대로 일본의 청춘상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에게 ‘아센바하’라고 불리는 나카조 교수는 야나기마치 감독 자신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보인다. 유명한 감독이었지만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한 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카조 교수는 영화제작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부인과 사별한 채 외롭게 지내는 그의 눈에 어느 날 미모의 여학생이 들어오고 그는 뒤늦은 연정에 새로운 희망을 품지만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기치 못하게 흘러가는 일은 비단 나카조 교수에게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미래 프로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은 마츠카와는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유카리 때문에 곤혹스러운 일들을 겪고, 조감독 기요코(마에다 아이)는 영화스탭들과 연애사건에 휘말린다. 영화에서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8일 동안은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다사다난했던 준비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두 번째 화요일에 첫 촬영이 시작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다케다가 한적한 교외의 주택을 발견하고 무단 침입하여 노부인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영화 속 영화인 이 장면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다. 허구의 인물 다케다가 아닌 배우 이케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듯한 장면의 진실은 모호함 속으로 사라지고 피로 물든 다다미만이 뚜렷한 현실로 남는다. 영화에서 대학생들은 동기없는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영화로 만들지만 평소 그들의 모습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 고뇌가 없어 보인다. 단지 영화를 만드는 일에 열의를 쏟을 뿐 그들에게 더 넓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듯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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