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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창간 12주년의 가오

“<씨네21> 왜 보냐고요? 아무래도… 가오가 살잖아요.” 지면 개편을 위해 독자 몇명을 불러 벌인 토론에서 나온 말이다. ‘가오’라는 표현이 바르진 않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씨네21>이 가오가 있어야 돼, 라며. 가오라는 표현을 쓴 독자도, 고개를 끄덕인 나도 가오가 겉멋이나 허세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뭔가 있어 보이는 잡지, 아니 진짜 뭔가 특별한 게 있는 잡지. 창간 12주년을 맞으면서 “초심을 잃지 말라”는 독자들의 당부가 뜻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특별한 뭔가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담은 이번호의 특집기사는 정윤철 감독이 만든 것이다. 늘 영화인을 취재대상으로 만나는 우리 입장과 반대로 영화인이 직접 영화기사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정윤철 감독은 이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평론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감독이 평론가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겠지, 아니, 항의하고 싶은 게 많겠지, 싶어 옳다구나 여겼다. 세상에 남 싸우는 것만큼 재미있는 구경도 흔치 않으리라. 정윤철 감독은 만나고 싶은 평론가로 정성일, 김영진, 황진미 세 사람을 꼽았다. 이중 황진미씨는 정윤철 감독과 악연(?)이 있는 인물이다(황진미씨의 영화평에 대해 정윤철 감독이 직접 덧글을 달아 반박한 적이 있다). 정윤철 감독이 첫 번째 인터뷰로 황진미씨를 만나기로 한 날, 직접 가서 현장을 목격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일일편집장을 맡긴 만큼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게 도리일 테니까. 다행스럽게(?) 이번 특집기사는 아무 불상사도 없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감독들 사이에서도 에너지가 많은 인물로 손꼽히는 정윤철 감독은 평론가들의 글을 꼼꼼히 읽고 성실한 질문자가 되어 나타났고 세 평론가의 생각과 개성을 고스란히 끌어냈다. 정말 좋은 특집을 만들어준 정윤철 감독에게 <씨네21> 명예기자 타이틀이라도 주고 싶다. 외양상 특집보다 눈에 띄는 것은 표지일 것이다. 박찬욱 감독과 복수 3부작의 배우들을 모은 이번 표지는 박찬욱 감독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모델이 된 배우와 감독뿐 아니라 사진촬영을 맡은 오형근 작가를 비롯한 여럿 스탭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던 표지다. 관련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전체적인 지면개편은 그간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했다. 특히 좀더 쉽고 친절하기 위해서 여러 코너를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씨네21>다운 깊이와 노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의했다. ‘VS.’와 ‘알고 봅시다’는 비평에 묻혀 놓치고 넘어갔던 영화정보를 맛깔나게 요리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동진, 김혜리의 메신저토크’는 영화평이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것으로 기대한다. ‘진중권의 IMAGINE’은 진중권씨가 미학자의 눈으로 영화를 이야기하는 코너다. 난해한 주제지만 진중권씨 특유의 명쾌한 문체가 어려움을 잊게 해주리라. ‘냉정과 열정 사이’는 소설가 정이현씨와 영화기자 김은형씨가 번갈아 쓸 예정이다. 정이현씨의 다정한 문장과 김은형씨의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벼려진 흥미로운 영화 에세이를 기대하시길. ‘續 내 인생의 영화’는 오래전 장수코너였던 ‘내 인생의 영화’를 부활시킨 코너다. TV 지면도 조재원, 이철민, 니야 등 새로운 필진으로 꾸몄고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필진으로 고종석씨가 합류했다. <씨네21> 사진기자들이 만들던 ‘포토에세이’는 ‘숨은 스틸 찾기’라는 제목 아래 영화 스틸작가의 몫으로 넘겼다. 일반에 공개되지 못한 사진 가운데 아까운 작품들을 선별할 생각이다. 바뀐 걸 다 설명하자니 힘들다. 종이가 바뀌고 디자인이 달라졌다는 건 말 안 해도 아시리라. 개편을 하면 늘 그렇지만 뿌듯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아무쪼록 가오가 서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