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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대한 집요한 연구
2001-10-17

<대부>, <맨하탄>의 고든 윌리스

1972년 할리우드는 전설적인 흥행성공 앞에서 영화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기대치 않은 수확을 거둬들인다. 마피아를 소재로 한 식상한 각본에, 적은 예산으로 고용한 젊은 제작자와 배우로 꾸려진 이 달갑지 않은 프로젝트는 개봉 9주 만에 533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거두는 기염을 토해냈다. 단순히 폭력의 세계만을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은 영화의 진정성에도, 냉혈한 모습과 인간적인 면을 두루 갖춘 대부의 내면을 훌륭히 소화해낸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도, 이 모든 것을 조율해내는 코폴라의 탁월한 연출력에도 이미 영화의 성공은 내재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입부의 어둠 속에 그려진 돈 코를레오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하면서도 위엄있는 마피아 대부의 이미지는 뛰어난 연기, 탁월한 연출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분위기를 창출하는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의 손길은 이미 그곳에 맞닿아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촬영감독’이라는 수식이 무색지 않은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 그의 영화인생은 뜻하지 않은 사이 이루어진다. 불황으로 워너브러더스의 분장사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촬영장을 드나드는 사이, 아역 배우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영화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영화계 사람들과의 친분과 평소 가졌던 사진에 대한 관심은 군복무 이후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뒤 광고계의 카메라 조수로 일하던 그는 우연히 아람 아바키안의 <종말>의 촬영을 맡게 된다. 극영화는 처음인지라 딱히 기대할 것도 없었지만, 그간의 다큐멘터리와 광고작업으로 쌓은 실력은 다소 미숙했던 첫출발임에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특별한 기교없이도, 효과적으로 사용된 광학효과와 아름답게 그려낸 영상으로 그는 촬영에 대한 자신감과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촬영감독으로서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는 것은 물론 <대부> 시리즈를 함께 작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의 만남 이후이다. ‘암흑의 왕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어둠에 대한 그의 탐구는 집요하다. 등장인물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건 일쑤이고 더러는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장면에 이르기까지, 심도가 깊어 화면의 특정부분을 살리기 어려운데다가 디테일이 살지 않는 어두운 화면은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마뜩치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장면 자체가 하나의 연기가 될 수도 있기에, 때로 배우의 표정을 살리는 것보다 장면의 분위기 연출이 의미전달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밝음과 짝을 이루어 더욱 극명하게 살아나는 어둠의 효과는 작품 곳곳에서 포착된다. <대부>에서의 밝은 결혼식과 어두운 방 안의 대비는 선과 악이라는 내적 감정선을 따라 유유히 흘러들어가며, 영화의 주조를 이루는 황금색 톤과 어우러진 성공적인 화면 창출은 이후 영화계의 전형이 된다. 77년 <애니 홀> 이후 콤비를 이룬 우디 앨런과의 일련의 작업은 이전의 장중함과는 다른 화면으로 또 한번 그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흑백필름과 시네마스코프방식으로 뉴욕의 도회적 정서를 그려낸 <맨하튼>과 낡은 흑백필름의 분위기를 재현해낸 <젤리그>의 영상은 실험성과 독창성을 기반으로 전천후 촬영감독의 면모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제작자와 감독들은 앞다투어 함께 일할 것을 청했고, 앨런 파큘라, 제임스 브릿지, 허버트 로스 등과의 지속적인 작업이 이어진다.

작품이 이룩해낸 이러한 성과와 달리, 애석하게도 아카데미는 한번도 그의 화면을 인정하지 않았다. 극적 요소가 없는 다분히 일상적인 코미디의 영상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할리우드의 시각 탓도 있지만, 작품 외적인 사교활동에 중요한 본질을 잃을 수 없다는 그의 외골수적인 성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었다.

그는 직접 연출한 영화 <윈도즈>로 그는 연출자로서의 역부족을 시인했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기에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훗날 그가 세인의 바람대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가치를 둔 것이 아니었기에 그것으로 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촬영준비에서 후반작업에 이르기까지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는 철저한 완벽주의와 현장 통솔에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가 말하는 좋은 영상의 조건은 외적인 풍족함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창의적인 정신이다.

이화정/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데블스 오운>(The Devil's Own, 1997) 앨런 파큘라 감독

<맬리스>(Malice, 1993) 해롤드 베커 감독

<대부 일대기>(The Godfather Trilogy: 1901-1980, 199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의혹>(Presumed Innocent, 1990) 앨런 파큘라 감독

<대부3>(Maio Puzo’s The Godfather Part III, 1990)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재회의 거리>(Bright Lights, Big City, 1988) 제임스 브릿지 감독

<환상의 발라드>(The Pick-up Artist, 1987) 제임스 토박 감독

<머니 핏>(The Money Pit, 1986) 리처드 벤자민 감독<퍼펙트>(Perfect, 1985) 제임스 브릿지 감독

<카이로의 붉은 장미>(Purple Rose Of Cairo, 1985) 우디 앨런 감독

<젤리그>(Zelig, 1983) 우디 앨런 감독

<내 사랑 시카고>(Pennies From Heaven, 1981) 허버트 로스 감독

<스타더스트 메모리스>(Stardust Memories, 1980) 우디 앨런 감독

<윈도즈>(Windows, 1980) 고든 윌리스 감독

<맨하탄>(Manhattan, 1979) 우디 앨런 감독

<컴즈 어 호스맨>(Comes a Horseman, 1978) 앨런 파큘라 감독

<애니 홀>(Annie Hall, 1977) 우디 앨런 감독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1976) 앨런 파큘라 감독

<명탐정 하퍼2>(The Drowning Pool, 1975)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

<대부2>(Maio Puzo’s The Godfather Part II, 1974)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암살단>(The Parallax View, 1974) 앨런 파큘라 감독

<대부>(Maio Puzo’s The Godfather, 197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콜걸>(Klute, 1971) 앨런 파큘라 감독

<리틀 머더>(Little Murders, 1971) 앨런 아킨 감독<주인님>(The Landlord, 1970) 할 아쉬비 감독

<주인님>(The Landlord, 1970) 할 애슈비 감독

<사랑>(Loving, 1970) 어빙 커쉬네르 감독

<이웃 사람들>(The People Next Door, 1970) 데이비드 그레네 감독

<종말>(End of the Road, 1970) 아람 아바키안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