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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은 변한게 아니라구요! [1]

이동진 “지나치게 뼈대에 치중해요” , 김혜리 “굉장히 수공예적인 예술가죠”

스포일러 있음

*면회 가는 여자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번트 대는 남자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면회 가는 여자님의 말(이하 면회녀): 제가 모든 개봉작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실망스런 영화가 적은 좋은 시즌인 듯합니다.

번트 대는 남자님의 말(이하 번트남): 영화팬으로서 저는 4월과 11월이 제일 좋아요. 여름은 확실히 ‘나쁜 계절’이죠. ^^

면회녀: 제겐 아직도 <빈 집>이 김기덕 영화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도 TV로 다시 보았는데 구성이나 모든 요소의 배열이 거의 완벽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를 자주 하지 않는 배우 이승연씨가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새삼 느꼈어요.

번트남: <>이 분명 김기덕 영화의 베스트라고 할 순 없겠죠. 영화를 본 직후 느낌은 어떤 것이었죠?

면회녀: 전혀 영화가 “착해졌다”거나- 이 표현은 참 싫습니다. 평자가 영화를 굽어보며 보호자연하는 것 같아서- 낙관적으로 변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시사 뒤 ‘김기덕이 변했다’식의 반응이 약간 의외였어요. 그러나 예전보다 덜 불행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느낌은 받았어요.

번트남: 저는 김기덕 감독에게 사람들이 너무 ‘변화’를 읽어내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면회녀: 변했으면 하는 은근한 소망이 섞인 평가란 말씀이죠?

번트남: 그렇죠. 솔직히 ‘김기덕이 변했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한 건 이미 <파란 대문> 때부터거든요. 어찌나 변화를 읽어내주려고 하시는지들. 거의 ‘한국영화, 위기다’만큼이나 자주 반복되는 말이죠. 변한 것은 김기덕 감독이 아니라 관객 또는 평자들이죠. 김 감독에 대한 자신의 기존 평가를 바꾸고 싶긴 한데 자기 시각이 아니라 김기덕이 변했다고 말함으로써 부담감을 덜려는 거죠. 그런데 “감독이 어떻게 변하겠어요?”

면회녀: 저는 아예 김기덕 영화를 보지 못하다가 뒤늦게 보기 시작했고 신작들을 하나씩 보면서 김기덕의 초상을 완성해가는 쪽인데요. <>은 변화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악어> <빈 집>의 어떤 속성과 재회하는 순간이 더 많았어요. 그런데 김기덕 감독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가 무의식적인 정당화가 필요할 만큼 지금 부담되는 일일까요?

번트남: 아뇨. 김기덕 감독이 현재 비평적으로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진 않아요. 사실 저는 <>을 보고 나오며 처음 든 생각이 “아, 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유전자를 갖지 못하고 태어났나보다”라는 것이었어요. 전 뭐 일종의 유전자 결정론자라서. 제가 걸렸던 건 영화를 축조해가는 바늘땀이 너무 선명하다는 거였어요. 전 김기덕 영화가 기하학적이고 건축학적인, 지나치게 뼈대에 치중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면회녀: 관념으로 막과 장을 나누고 도돌이표, 그리고 후렴. 이런 식이랄까. 그러나 그런 구조적 치밀함은 덜 표면에 드러나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요?

번트남: 김기덕 감독 영화는 통념과 달리 이야기성이 아주 강하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 이야기를 흔히 명확히 두줄로 요약되는 아이디어에 맞춰서 뚝딱뚝딱 영화적 건물을 올린다는 거

죠. <>은 기본 아이디어에 있어서, “살아 있지만 사실상 죽어 있는 여자와 죽어가지만 살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를 계절의 변화 속에 집어넣고 바라보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면회녀: 저는 <>의 컨셉이 “죽을까? 말까?”라는 심각한 갈등의 찰나라고 생각했어요. 장진이 마지막에 죽었다고 보셨어요? 저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남자는 죽음의 시뮬레이션을 치르고 빠져나오길 반복하고 여자는 앞으로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는 칼날 같은 상태에서 노래를 하는 순간 영화가 멈췄어요.

번트남: 열어놓은 이야기의 고리들이 많긴 하죠. 이 영화의 마지막을 사형수의 죽음과 여자의 가정으로의 귀환으로 읽는 것은 좀 기계적인 독법이란 생각을 해요. 아, 완벽한 스포일러닷!

면회녀: 김기덕 감독은 굉장히 수공예적인 예술가라는 생각을 해요. 미술작업을 손수 하거나 극중 인물이 뭔가를 만드는 것도 있지만 김기덕 감독은 인간이 현실에서 행할 수 있는 구원에 가장 근접한 행위가 손으로 물건을 지어내는 일이라고 보는 듯해요. <사마리아>에서 돌에 노란 페인트를 칠한다거나 <빈 집>의 고장난 남의 물건을 돌본다거나. <>에서 여자가 벽지를 발라 사계를 연출하는 장면에서,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또 너무 말이 되는 거예요.

번트남: 너무 말이 되어서 문제 아닌가요? 전 참 그런 유전자가 없다고 생각되었던 게, 여름처럼 벽지를 바르고 선풍기까지 튼 여자가 면회실에서 앙증맞게 <해변으로 가요>를 부르는데, 정말 부담스럽더군요. 게다가 어릴 적 5분간 죽었던 일을 거의 빙의에 든 사람처럼 술회하는 장면이 직후에 나오잖아요. 하여튼, 환부를 찾지 못하겠는데, 비명을 계속 질러대는 환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면회녀: 단도직입의 절정이죠. 첫 면회부터. 이름도 모르잖아요? <빈 집>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부르주아 가정의 묘사에서는 인물부터 관계, 실내 인테리어까지 좀 막연하다고 봤습니다. 번트남: 그래서 전 김기덕 감독님 영화가 관념성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요. 압도적 골조에 비해서 그걸 채우는 시멘트와 벽돌은 너무 무시되는 듯한.

면회녀: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부산영화제 전에 감독님을 인터뷰했는데요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면 일단… (치고받거나 죽이기 전에) 봐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는 김태식 감독 말이 당연하면서도 어찌나 재미있던지.

번트남: 그걸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의 송강호씨 표정처럼 두눈 부릅뜨고 봤으면 스릴러가 됐을 텐데.

면회녀: 배신당한 남편과 바람둥이 남자의 직업이 상극이죠. 도장포 주인은 극도로 좁은 공간에 웅크려서 손님이 오길 기다렸다가 주어지는 글자를 무지 작은 평면에 파야 하는 반면 택시기사는 누가 올라타서 말해주기 전까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잖아요. 직업이 인생의 태도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캐릭터가 재밌었어요. 저는 평범하지만 속성이 분명한 직업이 등장하는 연애 이야기를 <아비정전>의 순경 유덕화 이후로 참 좋아하거든요.

번트남: 그런 면도 있네요. 그래도 두 남자는 중-상류 계급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로 설정된 것 아닌가요? 그게 홍상수 감독 영화와 다른 지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전 그런 요소도 참 흥미로웠어요.

면회녀: 배우 박광정의 얼굴이 가진 느낌의 재발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건 광각 촬영 효과도 큰 것 같아요. 광각 촬영의 효과는 두 가지라고 봤는데 아파트 방범렌즈로 내다보는 듯한 엿보기의 느낌(영화가 염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이 하나고 두 번째는 광각으로 보면 인간들의 행동이 좀 가소로워 보인다는 거예요. 물론 감독이 인물을 경멸했다는 뜻은 아니고요.

번트남: 박광정씨가 실눈을 뜨거나 곁눈질하는 표정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점도 있을 거예요. 인형으로 만들어서 팔면 좀 팔릴까요?

면회녀: 정말, 모델이나 이모티콘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는 가끔 평론가 정성일 선배 캐릭터 사업을 진지하게 구상해요.

번트남: 필수적으로 목소리가 나오는 인형이어야 할 듯.

면회녀: 누르면 “나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을 알지 못합니다!” 하고 말하는.

번트남: 아, 귀에 생생히 들리는 이 환청청청청…. 저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급박한 상황인데도 조금 썰렁한 듯 여유로운 듯한 공기가 무척 좋았어요. 무슨 나들이 같잖아요?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삶의 벽에 호되게 부딪히고 난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문지르고 돌아서는지, 벽을 발로 차는지, 부서져라 벽을 한번 더 들이받는지 등등등 말이에요. 노래방 기기를 파출소에서 찾아오면서 언덕길을, 배우자를 다른 사람에게 뺏긴 두 남녀가 함께 밀고 올라오는 장면이 참 좋더라고요.

면회녀: 저는 ‘아내의 애인의 아내’ 역인 조은지씨의 연기에 감동했습니다. 배신당한 두 배우자가 만나면서 이 영화는 어떤 예상치를 뛰어넘는데, 특히 그녀가 <누구 없소>를 거의 완창하는 장면은!

번트남: 그 장면 참 좋죠. 다른 사람 누구도 그 역을 그런 맛으로 해낼 수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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