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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일전! 독립영화제다운 독립영화제로
오정연 2007-05-08

인디포럼2007, 5월8일부터 1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

인디포럼의 귀환! 오는 5월8일부터(영화 상영은 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두 번째 인디포럼2007이 열린다. 지난해 내부 사정으로 인해 축소된 규모로 신작 공모없이 진행됐던 축제가 원상 복귀된다는 면에서, 그리고 신작전에서 소개되는 영화가 2000년대 초반의 전성기를 연상시킬 만큼 흥미진진하다는 면에서 올해의 인디포럼은 의미심장하다. 59편의 신작들은 관객과 작가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대중성과 실험을 겸비한 극영화와 애니메이션, 이 땅의 현재를 고민하되 긍정의 힘을 잃지 않는 다큐멘터리 등 2007년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독립영화제다운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디지텉 제작의 일반화로 전반적으로 러닝타임이 길어졌으며, 과거 영화과 학생들이 주를 이뤘던 제작 주체가 고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화된 점 등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모든 상영작들은 ‘객관적이고 대중적인 재미’를 갖췄다.

신작 상영 외에 알찬 행사들도 빼놓을 수 없다. 독립영화계와 영화정책 담당자 등이 참가하는 포럼의 주제는 ‘독립영화, 그렇다면 1퍼센트!’다. 작은영화, 저예산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 수많은 호명 속에서 독립영화의 생산적인 포지셔닝을 고민하기 위함이며, 이와 관련하여 <방문자>(신동일)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노동석)가 초청 상영된다. 이송희일, 김곡, 김선, 윤성호, 양해훈 등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인디포럼 작가회의 감독들이 함께하는 영화제작 워크숍은 인디포럼2007이 새롭게 시도하는 이벤트. 참가자들은 기획부터 상영까지의 영화제작을 이틀 동안 함께한 뒤 영화제 마지막날 깜짝 상영한다.

‘그렇다면, 심기일전.’ 담담하고 의젓한 슬로건의 인디포럼2007은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영화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넘나드는 <유령 소나타>로 포문을 연다. 지방에서 독립영화를 계속해온 감독의 자전적 경험담이 담긴 폐막작 <아스라이>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에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대서사시’다. 이 밖의 상영작 중, 인디포럼2007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게 되는 실사영화에 한해 ‘<씨네21>의 추천작 10선’을 만들어봤다.

<벚꽃지다> 섹션2 | 이병수 | 29분 ‘아이들의 영화 만들기’는 더이상 새롭지 않다. 안양예고 학생들의 <벚꽃지다>도 마찬가지다. 스무살이 되어 다시 만난 중학교 동창 5인의 술자리. 재수하는 모범생과 운좋게 연대에 진학한 날라리, 임신한 여자친구와 원치 않게 결혼하는 바람둥이와 그의 전 여자친구와 교제 중인 소심남의 복잡한 과거와 비뚤어진 마음이 얽혀든다. 한바탕 몸싸움 뒤 흩어지는 이들의 뒷모습은 상업영화 속 찌질한 중년 남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놀라운 것은 5년만 흘러도 우습게 느껴지는, 그러나 당시에는 못 견디게 절실한 문제에 울먹이고, 세상을 다 아는 듯 소주를 털어넣는 이들의 모습이 단 세컷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 촬영과 연출, 연기 등에서 엿보이는 제작진의 패기와 기술적인 능숙함은, 또래 특유의 치기를 넉넉하게 보완한다.

<돼지와 셰익스피어> 섹션5 | 김건 | 21분30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는 어불성설일지 몰라도, 돼지와 셰익스피어는 의외로 어울린다! 아버지와 함께 농사짓는 노총각. 이웃에서 얻은 돼지를 싣고 경운기를 몰다가 논 한가운데서 연기에 열중한 두 남자에게 한눈이 팔려 논두렁에 처박힌다. 셰익스피어는 물론, 연극이란 것도 모르고 살았던 그는 여행 중인 두 배우로부터 <햄릿>의 한 장면을 전수받으며 밤을 지샌다. 늙은 아버지는 결혼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아들이 못마땅하고, 매력적인 여행객은 다음날로 떠나가지만, 홀로남은 주인공은 한가한 논바닥에서 햄릿의 대사를 외친다. “이 유령 같은 놈아!” 어느새 돌아온 새끼 돼지가 그의 관객이 되어준다. 전형적인 농촌 총각의 연극 입문기를 통해 사회적 조건을 뛰어넘은 취향의 가능성을 말하는 소박하고 유머스런 화법이 근사하다.

<조감독> 섹션1 | 이경식 | 8분 충무로의 조감독은 비참하다. 전국을 발로 뛰며 로케이션 헌팅에 열중하느라, 시도 때도 없는 작업 일정에 맞추느라, 여자친구와 제대로 된 여행은커녕 정기적인 데이트도 불가능하고, 멀어지는 그녀도 잡을 수 없는 노동조건. 다수의 액션, 멜로 단편을 연출했고, <태풍> <히야쯔가르>의 연출부였던 이경식 감독의 <조감독>은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 만한 상황을 함축적인 러닝타임 안에 흥미롭게 녹여냈다. 여자친구와의 여행을 빙자하여 로케이션 헌팅에 나선 조감독은 캠코더를 뺏어들고 화를 내는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진심이 담긴 그의 열창은 그녀는 물론 관객까지 눈물짓게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떠나간다. 마지막 깜찍한 반전까지 잊지 않는 영화의 모든 장면은 등장인물이 촬영한 캠코더 화면 안에 담겨 있다.

<불한당들> 섹션4 | 장훈 | 32분 모모, 오사마, 콴스, 토너. 네명의 이주노동자는 월드컵 캠페인을 찍고 있는 감독의 제안으로 호프집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전 응원에 참석한다. 가뜩이나 피부색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이들은 한국팀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더욱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페이크다큐에서 적나라한 풍자가 담긴 좀비영화로 변해가는 <불한당들>의 감독 역시 영화전문기자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을 꾀한 주인공. <황혼에서 새벽까지>부터 <28일후…>까지 온갖 좀비영화를 능청스럽게 차용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즐길 줄 아는 B급영화의 정신까지 이어받은 영화지만, 까다로운 특수분장을 공들여 보여주고, 좀비 못지않은 광기에 휩싸이는 한국사회를 대놓고 비웃는 등의 탄탄한 내공이 엿보인다.

<울지 않는다> 섹션7 | 차성덕 | 18분 디지털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함축적이고 정갈한 단편의 묘미를 살린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 현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을 위한 소년의 고단한 하루를 따라잡은 <울지 않는다>는 단편의 미덕을 모두 갖춘 수작이다. 필름을 가져가지 못해 사진관에서 거절당하고, 열쇠를 두고 나와 담을 타다가 좀도둑으로 오해받고, 뜨거운 한여름 오후에 숨이 턱에 차도록 추격전을 벌이고, 부모를 팔아먹는 막돼먹은 놈 취급을 받는 소년은 결국 부모님의 얼굴을 액자에 넣는 데 성공하고, “엄마를 닮았구나”라는 말도 듣는다. 마지막까지 슬프다는 말 한마디, 극적인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소년은 그저 무표정한데, 이를 마주하는 관객은 때로 조바심이 나고, 때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Un/going Home> 섹션10, 개막작 | 김영란 | 34분 유색인종인 입양아에,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자 성노동자. 세계인을 계층별로 세분화하여 한줄로 세운다면 아마도 마지막 중에서도 마지막에 위치할 만한 조건. 부모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친구들을 만나 한국을 알아나가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혜진씨의 5주간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Un/going Home>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그런 걸 감당하려면 유머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매력적인 주인공은 어색한 자신의 얼굴을 두꺼운 화장으로 가리지 않고, 굵은 목소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그녀가 한국의 아저씨들과 가부장적인 의학계, 편견에 사로잡힌 동성애자 집단 등에 대해 말하는 순간, 우리의 같잖은 편견은 그저 무기력할 뿐이다.

<새끼 여우> 섹션6 | 이유림 | 28분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몇편 있었다. 그 결말을 슬프게 만드는 것은 정작 객관적인 투쟁의 실패가 아닌, 기약없는 버티기 속에서 다쳐버린 노동자들의 황량한 마음이었다. 전작 <낫시리아>에서 노동하는 이에 대한 경외를 감추지 않았던 이유림 감독은 <새끼 여우>를 통해 먹먹한 다큐멘터리의 결말을 적나라하게 극화한다. 노조 출석 기록으로 결정된 172명의 복귀 명단에 172번째로 포함된 박종모씨는 몇년 만에 일터로 향한다. 그간 소홀했던 가족이 눈에 밟히고, 함께 싸웠으나 처지가 달라진 동지들이 걸리고, 함께 시위대에 섰던 어여쁜 여학생은 방송국 기자가 되어 참을 수 없는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구경거리로 만들려 한다. 다큐든 극영화든 마찬가지다. 영화가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꿈속에서> 섹션2 | 장건재 | 19분 소중한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은 사람은 안다. 그와 함께했던 순간은 시도 때도 없이 재생되고, 그의 웃는 모습은 믿을 수 없는 실재감을 지닌 채 눈앞에 펼쳐진다. 머리 길이 때문에 지적받는 평범한 고등학생 훈규는 선생님께 혼나면서, 농구에 열중한 친구들을 뒤로하고 귀가하면서, 빈집에 홀로 들어서면서, 지금은 곁에 없는 친구를 본다.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일상을, 그 안에서 못내 소중했던 소소한 추억을, 영화는 아프게 더듬는다. 최근 2, 3년간 각종 독립영화제 상영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던 촬영감독 지망생이 1년 반 전에 세상을 떴고, 형제처럼 함께했던 장건재 감독은 그를 그리워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진심이란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 <꿈속에서>는 안팎이 두루 아름다운 영화다.

<“왜 사는 건지 모르겠어”> 섹션4 | 정하용 | 25분 대련에서 번번이 패했던 상대를 찾아나선 조운.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딪힌 사내부터 임신한 전 여자친구까지 온 사방에 시비를 건 끝에 결국 운명의 상대를 발견한다. “나, 나이 들어서 이제 대련 못해”라는 상대의 한마디에 울음보까지 터뜨려가며 귀하게 얻은 마지막 대련의 기회. 쨍한 오후의 옥상 위에서 ‘하나도 폼 안 나는’ 막싸움을 벌인 끝에 그는 기어이 승리한다. 그리고 뻗어버린 상대의 옆에서 중얼거린다. “왜 사는 건지 모르겠어.”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든 세상, 더이상 쪼잔할 수 없는 수컷들의 기싸움, 아집과 오기를 원동력 삼는 우리의 소소한 삶. 본능적인 타이밍으로 선보이는 맛깔스런 대사, 처절함과 무심함을 오가는 두 배우의 온몸 연기가 빛나는 유머를 완성한다. 왜 사는 건지는 몰라도, 재미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아는 영화.

<사과> 섹션2 | 안세훈 | 24분 두 소녀가 길을 떠난다. 길 잃은 강아지와, 강아지를 아기처럼 품고 혼잣말하는 여인 등을 만나는 하룻밤 여행길.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뱃속의 아이를 지우기 위해 산부인과로 향하는 소녀들의 사정이 조금씩 드러나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는 두 소녀의 서로 다른 태도도 명확해진다. 긴 생머리 소녀는 덤덤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뒤돌아보지 않지만, 유약한 말투의 소녀는 자꾸만 친구를 잡아끌며 자신없어한다. 불안하고 애처로운, 그러나 얼핏 평범한 여행 이야기는 결국, 단편은 물론 장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애틋한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지난 몇년간 충무로 공포영화가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그러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슬픈 공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보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