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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대작 시나리오 작가] 에릭 로스
오정연 2007-05-31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

<포레스트 검프> <인사이더> <굿 셰퍼드>의 에릭 로스

HeSTORY

<굿 셰퍼드> 촬영현장의 로버트 드 니로와 에릭 로스(오른쪽)

30년 이상 경력의 1945년생 시나리오작가 에릭 로스의 전성기는 13년 전 <포레스트 검프>에서 시작됐다.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이후 기록적인 실패작 <포스트맨>과 로버트 레드퍼드와의 불화로 화제가 된 <호스 위스퍼러> 등을 거치면서 다소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마이클 만(<인사이더> <알리>), 스티븐 스필버그(<뮌헨>) 등과 굵직한 이야기를 통해 호흡을 맞추면서 재기한다. <뮌헨>과 <인사이더>는 미국 내 각종 영화상 각본상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가 숱한 감독을 거치며 12년 동안 품고 다녔던 <굿 셰퍼드>가 개봉하면서 현대사의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주된 배경으로 하는, 혹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선 (제작비가 아니라 영화의 심리적 측면에 있어) 대작 전문 작가로서 굳건히 자리잡은 인상이다. 예순을 넘긴 유대인 작가 로스는 영화홍보 담당자 아버지와 라디오 쇼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영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전통을 간직한 채 가치있는 일에 열중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것은 나의 부모님이 물려주신 내 안의 유대 전통에서 비롯된 듯하다.” 현재 그는 톰 행크스, 데이비드 핀처, 커티스 핸슨, 미라 네어 감독의 각기 다른 차기작의 작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TALENT

다량의 조사를 필요로 하는 묵직하고 밀도있는 프로젝트는 언제나 에릭 로스의 첫 번째 관심사다. 혹자는 일반인들이 즐겨보는 것보다는 다소 지적인 그의 영화가 오늘날 메이저 스튜디오가 잘 만들려 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작가는 이에 대해 굽히지 않고 대답한다. “관객에게 뭔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진짜 영화”라고. “정치적인 입장과 개인의 윤리 사이의 선택에 직면한 인물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그의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변명하지 않는 남자들이다. 지능과 피부색, 정치적 입장 등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하고 행동한 뒤 남을 탓하지 않는다. 전작을 통해 자타가 공인하는 ‘진짜 남자영화’를 만들어왔던 마이클 만, 로버트 드 니로 등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사내들의 전부를 건 싸움을 좀더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 로스는 첨예한 입장이 맞부딪히는 현실을 풍부한 질료로 사용한다. 그러나 인종차별에 맞서는 복싱 챔피언이든,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유대인이든, 담배회사의 횡포에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개인이든, 거대조직 CIA에 모든 것을 바친 뒤 고독하게 남겨지는 조직원이든 로스의 영화가 지닌 생생한 현실감은, 가장 현실적인 의미에서 영웅이 되는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데 복무한다. 일견 금기를 건드리며 사회에 대한 심각한 도전처럼 여겨지는 그의 영화가 별다른 어려움없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로스 자신이 까다롭고 복잡한 정치적 입장에는 정작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MEMORABLE LINES

포레스트 검프: 우리의 삶에 운명이 있는지, 혹은 그저 바람 같은 우연으로 이루어진 건지는 모르겠어요. 음. 내, 내 생각에는 둘 다인 것 같아요.-<포레스트 검프>

제프리: 나는 이 일에 가족 모두를 걸었어. 한데 자네는 뭘 걸었나, 고작 말뿐이잖나. 로웰: 말뿐이라고? 자네가 잘난 회사 간부들과 골프치는 동안 나는 내 말을 가지고 세상에 맞섰네. -<인사이더>

아브너: 이제 우리는 더이상 공정해질 수 없을 거야. 로버트: 우리가 언제고 그렇게 공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뮌헨>

조셉: 이탈리아인에겐 가족과 신앙이 있소. 아일랜드인에겐 고국, 유대인에겐 전통, 흑인에겐 음악이 있지. 당신들에겐 뭐가 있소? 에드워드: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오. 이민자에겐 없는. -<굿 셰퍼드>

에릭 로스는 “내가 만들려는 영화가 고유한 가치에 비해 너무 잘난 척하는 게 아닌지 늘 자문한다”고 한다. 그 소재가 지닌 묵직함에 비해서 그의 영화 속 대사들이 언제나 명확하고 알기 쉽게 주제를 함축하는 것은 그 때문일까. 하긴, IQ 75짜리 주인공의 말과 행동으로 미국 현대사를 그려낸 내공이 어디 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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