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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명작에 담긴 풍부한 스페셜피처의 묘미
ibuti 2007-06-29

존 웨인과 앤지 디킨슨의 관계는 <소유와 무소유>에서 따왔다.

웨스턴의 전설을 완성한 사람은 존 포드다. 그러나 서부영화 장르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한 감독은 하워드 혹스다. 포드가 서부 사나이의 심리적 궤적을 따라가며 거대한 연대기를 마감하는 동안, 혹스는 액션드라마를 변주하는 쪽을 선택했다. 서부의 공간에 영혼을 바친 포드의 서부영화는 종종 쓰라림을 동반한다. 그의 서부영화가 거둔 성공은 장르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호흡한 결과라기보다 영화 자체의 완결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반면 혹스의 서부영화는 편하고 재미있다(존 카펜터는 DVD의 음성해설에서 “할리우드가 할리우드다운 영화를 제대로 만들면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나온다”라고 했다). 거기엔 관객이 원하는 속시원한 싸움이 있고, 아기자기한 인간관계가 있고, 통쾌한 결말이 있다. <레드 리버> 이후 10년, 혹스는 포드에게서 존 웨인을 다시 데려와 서부영화의 이정표를 세웠다. ‘서부영화 대백과’에서 ‘선과 악의 대결을 거의 완벽하게 다룬 예’라고 평가받은 <리오 브라보>는 뛰어난 상업영화인 동시에 혹스의 개인적인 신념이 담긴 작품이다. 혹스와 웨인은 1950년대 서부영화의 대표작 <하이 눈>과 <유마행 3시 10분 열차>의 노선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영화의 보안관이 비굴하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자존심과 전문성을 갖춘 영웅을 내세워 변화하는 서부영화들에 답했다. 그리고 <엘도라도>(1967)와 <리오 로보>(1970)에서 세 남자와 악당의 대결구조를 재연하며 ‘혹스 삼부작’을 만들어냈다(하지만 혹스는 변주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악당이 살인을 저지른다. 보안관은 악당을 감옥에 가두고 연방 보안관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악덕 농장주인 악당의 형은 수십명의 총잡이를 고용해 보안관을 위협하건만, 보안관 곁에는 다리를 저는 늙은이와 술주정뱅이 부관 둘뿐이다. 그들에게 어린 카우보이와 떠돌이 무용수가 가세한다. 영웅은 영웅답고, 악당은 악당다우며, 여자는 어떤 서부영화의 여자보다 매력적이다. 게다가 무뚝뚝하던 웨인이 혹스와 만날 때면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데다, 디미트리 티옴킨의 음악이 이리도 낭만적이니 서부영화에서 뭘 더 바랄까 싶다. 혹시 <리오 브라보>가 심심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10년 뒤에 다시 보길 바란다. 그러면 10년 전에 얼마나 잘못 판단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남자들의 우정은 말이 없어도 빛난다.

할리우드영화 역사상 최고의 아이콘.

특별판으로 선보이는 <리오 브라보> DVD의 영상은 색감 표현이 탁월해 (한국에선 나오지 않은) 기존판의 묽은 톤과 비교된다. <리오 브라보>를 최고의 서부영화로 꼽는 감독 존 카펜터와, 할리우드 역사를 꿰뚫고 있는 영화평론가 리처드 시켈의 음성해설은 기대했던 바와 많이 다르다. 카펜터의 말수가 적어 시켈이 대부분 음성해설을 진행하는데, 그나마 잡다한 사실들을 쭉 늘어놓기보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중요한 사실들을 툭툭 던지는 식이다. 시켈은 혹스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이다. 옛 친구의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흥 때문인지, 뒤로 갈수록 영화에 빠져 말이 없다가 간혹 웃음으로 반응하는 그의 모습이 거슬리지만은 않다. 시켈은 두 번째 디스크에 실린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은 남자: 하워드 혹스>(55분)를 연출하기도 했다. 시켈이 말년의 혹스와 나눈 인터뷰에 곁들여, 혹스가 코미디, 갱스터, 전쟁영화, 웨스턴, 누아르 등 전 장르에 걸쳐 만든 걸작들의 클립을 훑어보는 맛이 쏠쏠하다. ‘올드 투손’(9분)은 60여년에 걸쳐 수백 편의 서부영화가 촬영된 곳인 ‘올드 투손 스튜디오’를 소개하는 코너다. ‘<리오 브라보>를 기념하며’(33분)는 감독, 평론가, 배우들의 목소리를 빌려 영화에 대한 평가, 제작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혹스가 그립다. 사나이다운 시기를 잘 그렸다”라고 회상한다. 시켈이 말한 대로 혹스를 이을 감독이 없는 지금, 혹스에 대한 그리움은 보그다노비치의 것만이 아닐 게다.

하워드 혹스의 말년 모습.

<리오 브라보>의 제작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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