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김대현
2001-02-17

<내 푸른 세이버> - 자전거는 순수를 싣고

▒감독이 되기까지

대학 졸업을 앞둔 88년, 김대현(36) 감독은 신촌의 영화사랑 우리, 동국영화연구소 등을 드나든다. “사회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수록, 영화는 도피처라기보다 또다른 가능성이었다. 가슴을 치던 <오발탄>을 비롯해서 <돈> <박서방> <마부> <바보들의 행진> 등 유년 시절 보았던 60, 70년대 한국영화의 잔상들이 한없이 피어올랐던 시기이기도 했다. 누구 하나 길잡이 해주는 이가 없어서 일단 영화과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지만, 불과 시험이 3주 뒤인지라 영화관련 서적 다섯권을 챙겨 독서실로 잠수한 것만으로는 불안했다. 일주일 남기고서 동국대 유현목 감독을 찾아가 “영화만들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몽타주 이론은 아나? 네오리얼리즘영화는 본 적 있어?” 유현목 감독이 툭툭 던진 질문이 당일 시험문제였을 줄이야. ‘운좋게’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수업보다는 졸업을 앞두고 8mm 영화 작업을 하던 김성수, 유하 감독들의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 인연으로 90년 <그들도 우리처럼>에 합류했다. 탄광촌에 가는 줄도 모르고 노란색 외투를 걸친 철없는 연출부 막내였다. 그래도 ‘현장세례’의 감동은 남았다. 특히 연출부였던 이현승, 김성수, 여균동 감독의 팀워크는 대단했다. 돌아오자마자 윤정모의 <사랑>을 각색해서 16mm영화 <서울길>을 찍었고,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베를린 리포트>까지만 그의 충무로 수업을 허락했다. 이지상 감독 등과 함께 영화제작소 ‘현실’을 차려 만든 작품들이 <지하생활자> <나마스테 서울> 등이다. 단편영화의 활로는 배급에 있다는 판단 아래 94년 이후에는 인디라인을 만들어 그 활동에만 전념했다. 케이블채널 등에 영화 방영권을 넘기거나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 제작비를 회수해서 “단편영화가 재생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게 목적이었다. 서울국제독립영화제를 만들어 `단편'에서 `독립'으로 시야를 확장한 것도 맥락은 같았다. 처음과 달리 적자운영으로 5년 만에 접어야 했지만 그는 인디라인의 수명이 다했을뿐이지, 애초 판단이 틀린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영화를 만들것인가

데뷔 준비는 알음알음 알고 지내던 박기형 감독이 <여고괴담>을 끝내고 만든 독립프로덕션 다다에 <아나키스트>의 유영식 감독과 함께 결합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원래 데뷔작으로 준비했던 작품은 박기형 감독과 함께 쓰기 시작한 <아버지 죽이기>(가제). 아버지의 가족여행 제안을 들은 자식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공모한다는 줄기의 블랙코미디였는데, 3고까지 마친 상황에서 비슷한 소재의 <셀레브레이션>이 개봉하는 바람에 미뤄졌다.

만화 <내 파란 세이버>를 발견한 건 99년 여름이었다. 읽고나서 곧바로 박흥용 작가를 찾아갔다. 70, 80년대 시골을 배경으로 한 두 소년의 성장기에 자신의 느낌을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순수했던 삶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던 10대 시절. 삶의 속도에 휘말려 뒤돌아볼 겨를 없이 허겁지겁 내달려야 했던 20대의 허탈함에 비하면 소진하기 직전의 충만한 에너지를 만끽할 수 있었던 10대는 <내 파란 세이버>의 대한이나 영식만큼 그에게도 강렬한 유혹이었다. 지난해 초부터 각색에 들어가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하긴 했지만, “잔잔함을 강조한 탓에 너무 밋밋한 것 같아” 2월까지 시나리오를 매만질 생각이다. 감독은 누구보다 빨리 달리고 싶었던 청춘들의 욕망에 초점을 두긴 하겠지만, 70년대에서 80년대로 진입하는 시기의 사회사적인 배경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내 푸른 세이버>는 어떤 영화

읍내 자전거포에서 살다시피 하는 꼬마 대한은 두살 터울인 동네 형 영식의 자전거를 얻어타며 우정을 쌓아간다. 두 친구는 칼 모양의 그림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사이클 선수를 동경하게 되고, 그처럼 멋진 사이클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10년 뒤, 대한과 영식은 여전히 자전거 경주를 벌이며 실력을 키워간다. 대한은 자전거를 타고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정체모를 거지에게 밥을 가져다주고, 영식은 우유배달을 하며 생활을 꾸려간다. 둘이 다니던 학교에 부임한 새 체육 선생은 둘에게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사이클부를 만들어 가입을 권유한다. 선생의 딸인 미현에게 연정을 느낀 두 친구는 사이클부에 들어간 뒤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지만, 영식과 달리 자유분방한 대한은 선생의 훈련 방식이 달갑지 않다. 첫 데뷔 경기를 앞두고 대한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도박 경륜에 참가하려다 선생과 미현에게 들키고 결국 사이클부에서 제명된다. 도내 경주대회에서 우승한 영식에게 경주를 제안하는 대한. 폭우 속에서 벌어진 둘의 경쟁은 이후 또다른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