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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신상옥 영화의 힘을 보라
ibuti 2007-07-27

<신상옥 컬렉션> Shin Sang Ok Collection

잃어버린 아버지의 이름, 김승호.

신상옥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 대중영화와 작가영화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한국영화가 도처에 널린 지금은, 그래서 신상옥의 영화를 되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그는 영화란 대중과 호흡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인식한 사람이다. ‘신필름’을 세워 한국영화 사상 전대미문의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한 것도 그런 바탕에서 비롯되었을 터다. 신상옥은 “영화의 예술성과 오락성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대중이 찾지 않는 예술은 자위”라고 말했다. 관객이 그의 영화를 평생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사랑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선명한 캐릭터, 섬세하게 구상된 미장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상옥 영화의 힘이다. 신상옥은 한해에 네댓편의 수작 정도는 너끈히 발표하던 기린아였다. 장르영화의 거장 하워드 혹스가 만든다 한들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상록수>가 한해에 나오진 못했을 거다. 신상옥의 1960년대 작품 중 다섯편을 모은 작품집이 나왔다. 서민드라마, 코미디, 문예물, 호러, 멜로드라마 등 박스 세트에 담긴 장르의 다양함은 그와 대중이 주고받은 영향의 증표다. 더군다나 장르별 완성도가 하나같이 뛰어나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로맨스 빠빠>는 신상옥의 1960대를 연 작품이자 신필름의 창립작이다. 오십대 가장과 일가족이 겪는 서민의 애환을 훈훈한 분위기로 풀어간 <로맨스 빠빠>는 멜로드라마와 코미디의 변형된 형태인 한국 서민드라마가 거둔 최고의 결실이다. <성춘향>의 경우, 말년의 신상옥이 직접 편집에 참여해 원본에 가깝게 부활시킨 판본을 수록해 가치를 더한다. 신상옥과 최은희 부부의 <성춘향>과 당시 멜로드라마로 승승장구하던 홍성기와 김지미 부부의 <춘향전>이 벌인 대결은 전설로 남아 있다. 결과는 6개월간 극장에 걸린 <성춘향>의 압승이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벙어리 삼룡>은 각각 주요섭과 나도향의 소설을 영화화한 문예물인데, 정교하고 단아하게 꾸민 영상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액션과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후의 대표작들과 대비된다. 두 영화에서 대사가 아닌 표정으로 내면의 심리를 애절하게 표출한 최은희와 김진규의 연기는 잊기 힘든 것이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은 신상옥이 호러 장르에 도전해 이뤄낸 성과 중 하나인 <천년호>는 그의 장기인 사극에 호러 장르를 과감하게 도입해 변방에 머물던 한국 호러영화를 주류영화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감독 자신은 최고의 작품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여성의 욕망, 육체와 혼의 이탈 및 공유, 이야기의 확장과 중첩, 시각적 표현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 면에서 <천년호>는 요즘의 한국 호러영화를 넘어선다. 이들 영화에서 보듯, 신상옥의 영화에선 근대화의 양면이 곧잘 충돌한다. 사라져가는 고귀한 가치를 붙잡고 아쉬워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전근대적 유산과 사회적 제약 때문에 희생당하는 인물이 제시된다. 사회드라마로 근대화의 정경을 정면으로 다루던 신상옥은 때로 시대물로 우회하면서도 저개발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개봉 당시 서울 인구 150만명 중 30만명이 봤다는 <성춘향>.

한국 호러영화를 변방에서 주류로 끌어올린 <천년호>.

<신상옥 컬렉션>은 신상옥의 사후 1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작품집이며, 한국영상자료원이 그간 출시해온 ‘한국 고전영화 시리즈’의 한 정점이다. 부록으로는 신상옥의 영화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한편(54분)과 신상옥 영화의 기획자로 활동한 황남과의 인터뷰(13분), 알찬 해설 책자를 제공한다. 분단국가의 영화감독으로서, 한국 영화산업을 이끈 제작자로서, 영화만치 파란만장한 길을 걸었던 신상옥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소개받는 자리다. 스탠더드 화면비율의 <로맨스 빠빠>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에 아나모픽이 지원되지 않는 게 못내 아쉬운 점이지만, 출시 자체의 가치에 그런 단점은 비할 바 아니다. 다섯 영화에는 김승호, 최은희, 김진규, 신성일, 신영균, 남궁원, 엄앵란, 박노식, 도금봉, 허장강, 김희갑 등 은막을 주름잡았던 스타들은 물론, 젊은 세대에겐 잊혀진 주선태, 주증녀, 이예춘, 김혜정같이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등장해 옛 기억을 불러낸다. 그들과 함께 족히 백번은 울고 웃었다.

한국 영화사에 남을 위대한 만남, 신상옥과 최은희.

부록 다큐멘터리 중 <꿈>의 제작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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