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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하이 므이
고경태 2007-08-10

두부 심부름이 싫었다. 빨간 바가지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그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를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두부 한모만 사오너라.” 창피했다. 식료품 가게를 오가는 길에 동네 여자아이들을 만날까봐 두려웠다. 열네댓살쯤 때의 일이다. 한사코 피하려 했지만, 결국 빨간 바가지에 담아오던 두부의 야들야들한 느낌은 아직도 정감어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두부처럼, 이라고 했다. 1980년대의 대학 교정에서 <오월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빨간 바가지 속의 두부를 떠올렸다.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소름이 끼쳤다. 공수부대원이 어린 여학생의 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했다고 했다. 80년 5월 광주 괴담이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당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증적인 조사 결과나 증언이 나온 적도 없다. 풍문이 돌았을 뿐이다. 뻥이거나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영화 <화려한 휴가>와 <므이>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두 영화가 ‘흥행 경쟁’을 벌인다는 보도를 접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총을 겨눈 <화려한 휴가>의 스틸을 보며, 아오자이를 차려입은 여인이 무표정한 눈길로 쳐다보는 <므이>의 초상화 스틸을 보며 엉뚱한 장면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가슴을 난자당하고 신음하는 여인이었다.

한국군은 1973년 베트남의 전장에서 철수했다. 광주의 비극은 그로부터 7년 뒤다. 광주 진압에 참여한 공수부대 하사관과 장교의 상당수는 베트남 게릴라 토벌에 참여한 실전 베테랑이었다. 동족을 상대한 5월의 광주보다, 이민족을 상대한 베트남이 몇배는 더 무지막지했을 거라는 추정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그랬다. ‘두부 괴담’은 광주를 넘어 베트남의 이야기였으니까.

6년 전, 나는 10여장의 사진을 들고 베트남을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중부지방인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마을이었다. 그 사진들은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소(NARA)에서 기밀해제된 지 얼마 안 된 미국 국방부 내부 문서에 첨부된 것이었다. 떼죽음을 당한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들이 사진 속에 누워 있었다. 그중 상반신이 난자당한 여인의 독사진은 엽기적이었다. 촬영자인 미군 상병은 이런 설명을 적어놓았다. “가슴이 도려진 채 아직도 살아 있는 여자.” 1968년 2월12일 한국 해병부대인 청룡여단 제1대대1중대가 베트콩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퐁니·퐁넛 마을을 휩쓸고 간 뒤 미군에 의해 발견된 중상자였다. 미 국방부 문서는 당시 79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총상을 입은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기록해놓았다.

의문의 집단 살인사건! 나는 그들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었다. 인민위원회 간부를 통해 마을 주민 50여명을 불러모았다. 사진을 펼쳐놓고 퀴즈를 풀 듯 이름을 맞추어나갔다. 30년도 지난 가족의 주검 사진을 보는 이들의 입에선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언니, 우리 언니가 맞아요.” 응웬 티 호아라는 여자가 그 문제의 사진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때 언니는 한쪽 가슴이 완전히 도려져 있었고 또 다른 가슴은 반쯤 베인 상태였어요. 그래서 가슴이 덜렁덜렁거렸죠. 왼쪽 팔은 잘려 있었고, 몸에 총상이 있었지만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있었어요.” 숨을 거둘 때의 모습도 잊지 않고 있었다. “병원에서 언니는 계속 ‘엄마’만을 불렀습니다. 엄마는 그날 총에 맞아 죽었는데 말이에요. 마지막엔 눈을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아빠’하고 나지막하게 불렀지요. 그리곤 고개를 떨구었어요. 끝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 그 언니의 이름은 응웬 티 탄이었다. 목격자도 나섰다. 참화의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쩐 티 투언이었다. “따이한(한국군)들이 화가 나 마을 사람들을 한 지점에 모아놓고 사격했습니다. 저 역시 그곳에 있었지만 다행히도 맨 밑에 깔렸지요. 기어나와봤더니 따이한이 응웬 티 탄 언니를 강간하고 있었어요. 대검으로 장난을 치고….”

그때 응웬 티 탄의 나이는 베트남 말로 ‘하이 므이’였다. 므이(muoi)는 10이다. 하이(hai)는 2다. 꽃다운 스무살 처녀였던 거다. <므이>의 초상화 여인처럼 아오자이를 즐겨 입었다고 했다. 그 초상화를 보자 자꾸만 응웬 티 탄의 사진 속 얼굴이 오버랩됐다. 영화 포스터 카피를 내 맘대로 패러디해볼까? “영화보다 더 잔인한 하이 므이의 또 다른 저주가 시작된다.” “39년 동안 사진으로 잠들었던 저주의 주인공,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슬픈 기억을 품고 부활하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게 아니다. 5천년 동안 남에게 침략만 당했다고 선전해온 우리 민족이, 한때는 베트남 정글을 배경으로 리얼리티가 넘치는 전쟁 공포영화를 찍었다는 것. 그리하여 대한민국에 한과 저주를 품고 있을 베트남 귀신의 수가 꽤 된다는 것. 그 대가로 끌어모은 미국 달러를 통해 이 나라의 외형적 국력이 빵빵해졌다는 사실. <화려한 휴가>와 <므이> 동시 개봉을 맞아 ‘덤으로’ 기억하고 넘어간대서 누가 때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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