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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신규 자본 등장, 활로인가 바람인가
이영진 2007-08-08

한화그룹, 벤티지홀딩스, SM엔터테인먼트, SKT 충무로 본격 진출 시작

잠깐 지나는 미풍인가, 아니면 진득이 남을 훈풍인가. 한화그룹, 벤티지홀딩스, SM엔터테인먼트, SKT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충무로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싸늘하게 식은 영화계가 불붙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존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규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고, 동시에 부분투자자들마저 “투자해도 남는 게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는 위기 상황. 그러다보니 제작 일선에선 새로운 전주(錢主)들의 등장을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요즘 투자하는 곳은 이들밖에 없는 것 같다”는 한 제작자의 전언처럼, 신규 자본 유입이 투자 위축에 따른 제작 감소로 신음하고 있는 영화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예상이 터무니없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과연 신규 자본들은 “9회말 2아웃 상황”에 직면한 영화계에 원기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한화그룹, 계열사 한컴 통해 영화사업 본격 진출

한화그룹이 7월30일 영화사업 진출을 가시화했다. 광고대행사인 한컴은 이날 120억원 규모의 ‘한화 제1호 문화콘텐츠 투자조합’ 결성 총회를 열었다. 한컴은 한화그룹 계열사다. 이 투자조합에는 한컴 외에 한화 계열사인 대한생명, 한화기술금융 등과 CJ엔터테인먼트, CJ미디어,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옐로우 엔터테인먼트, 벤티지홀딩스 등이 참여했다. 몇년 전부터 충무로 진출설이 흘러나왔던 한화그룹이 드디어 충무로를 노크한 것이다. 한컴은 1호 펀드 운용과 관련해 “영화쪽에 70% 정도, 드라마와 공연쪽에 30% 정도”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컴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내년 상반기에 150억원 이상의 2호 펀드를 만들 예정이다. 이미 2호 펀드를 결성할 경우 참여하겠다고 뜻을 전한 곳도 있다”고 전했다. 한컴은 한국영화 투자뿐 아니라 외화 수입 또한 준비 중이다.

화학, 기계 등의 사업을 근간으로 최근에는 서비스, 금융, 건설 부문 등에 박차를 가해온 한화그룹은 재계 16위 기업이다. 자산이 CJ보다 배가 많은 터라 일각에서는 한화가 투자뿐만 아니라 직접 배급, 극장 인수, 더 나아가 영화뿐만 아니라 케이블 등의 유관사업까지 관심을 확장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이동통신사와 함께 CJ-미디어플렉스-롯데 등의 3강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또 하나의 유력한 변수인 셈이다. 한컴 관계자는 “광고대행사인 만큼 콘텐츠 투자를 통해 프로모션 기회를 늘리고 그룹 소유의 백화점, 호텔, 아파트 등을 촬영장소로 지원하는 쪽에 집중할 것”이라면서도 “때가 되면 상황에 맞게 사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은 우리가 윈도나 플랫폼이 없어서인지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벤티지홀딩스, SM엔터테인먼트, SKT 새로운 주자로 부상

‘한화 제1호 문화콘텐츠 투자조합’ 조력자 중 한곳인 벤티지홀딩스는 한컴보다 앞서 올해 상반기부터 공격적인 라인업 확보로 주목받고 있다. 250억원 규모의 출자금을 가동하는 ISU-문화콘텐츠투자조합과 함께 벤티지홀딩스는 얼마 전 촬영을 끝낸 김현석 감독, 임창정, 엄지원 주연의 <스카우트>를 시작으로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 김윤석·하정우 주연의 <추격자>, 이한 감독의 <내 사랑> 등에 연이어 투자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벤티지홀딩스의 경우, 직접 배급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첫 투자작부터 메인투자를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분투자를 하면 실제로 돌아오는 수익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인 만큼 차라리 메인투자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일 수 있지만 한편에선 또 다른 파트너나 좀더 큰 밑그림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벤티지홀딩스는 이 밖에도 2∼3편의 자체 프로젝트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DVD 제작사인 비트윈을 인수하고 SM픽쳐스를 차려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까지 발을 넓힌 SM엔터테인먼트의 향후 행보 또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소리소문없이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을 제작, 개봉한 SM픽쳐스는 하반기에 일본 소설 <백야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비롯해 2편의 한국영화 투자 및 공동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일본 최대 음반사이자 “연간 매출이 1조원에 달하는” 에이벡스와 밀접한 관계(SM엔터테인먼트의 2대주주)를 맺고 있어 해외 네트워크와 자금력이 풍부하다. 최근 에이백스가 영상사업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과 발맞춰 SM엔터테인먼트 또한 한국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에이백스, 중국의 청티엔 등과 스막(SMAC)이라는 합자회사를 만들어 중국시장 진출에도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SM픽쳐스의 안연수 이사는 “안정적인 콘텐츠 제작 확보를 위해 펀드 결성 외에 다양한 파트너 물색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자회사인 IHQ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영화사업팀을 꾸려 영화, 드라마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SKT 또한 올해 가을쯤에는 청사진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들 신규 자본이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걷어낼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한 제작자는 “위기라고 이름 붙은 지금의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위기라고 떠들수록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분명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주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신규 자본의 움직임과 관련해 “주요 자본들이 영화쪽에 흘러들어 오는 것을 폄하할 필요가 없다. 큰 흐름이 들어오면 작은 흐름도 뒤따르지 않겠느냐”면서 “500만 정도 규모의 흥행작이 하반기에 2, 3편 정도 나와주면 곧바로 시장은 경색 국면에서 호전될 수도 있다”고 낙관했다.

신규 자본에 기대기보다 충무로 공동 전략 세워야

기대만큼 비관도 만만찮다. 한 투자사 대표는 “아직 뭐라 단정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뜻밖의 반전을 기대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일례로 한컴의 영화업 진출만 하더라도 한화그룹 전체 자본의 뜻으로 보긴 어렵다. “투자·배급을 하려면 리스크를 100% 떠안아야 가능한 상황이다. 부분투자자들이 미동하지 않고 있어서다.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가. 대기업 계열사들 중 지주회사들은 독립적인 경영구조 확보를 위해 신규 사업을 찾고 있다. 극장이나 부동산 투자의 경우 레드오션이 됐지만 아직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는 블루오션처럼 보인다. 실제 블루오션인지 아닌지 여부를 묻기 전에 말이다. 신규 자본의 영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문제는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단기간에 쉽게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 견해가 맞다고 힘을 실어주기에는 아직 충무로에 안개가 자욱하다. 신규 자본들이 다음 단계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도 알 수 없다. 현재 취한 한 걸음의 행보의 결과가 나와야만 이후 노정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다. 다만 신규 자본 유입이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단기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투자 감소, 제작 침체, 흥행부진’으로 간단히 요약되지만, 수차례 지적됐듯이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인과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누가 새 전주의 낙점을 받을까, 하는 관심은 그래서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 신규 자본의 몸을 달게 만들기 위해서 충무로가 어떻게 치료를 받고, 보양을 하고, 치장을 할 것인가, 치밀하게 공동 전략을 세우는 것이 맞는 순서가 아닐까.

“단순 투자가 아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컴 정해영 상무 인터뷰

한컴의 문화콘텐츠 사업을 총괄하는 정해영 상무는 1년 전만 해도 “영화에 까막눈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룹을 설득하고, 또 회사 바깥에서는 끊임없이 영화인들을 만났다는 그가 이제는 “영화인이 다 됐다”고 말한다. 이런 변신은 어쩌면 “영화비즈니스 실무 수업을 들어서”라기보다 위기에 갇힌 충무로를 체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화의 경우 영화계 진출설이 제기된 지가 꽤 됐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본격 논의가 시작된 것이 언제인가. =한컴에서 영화쪽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던 때는 2005년 말이었다. 광고나 프로모션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여러 사업들을 구상하게 됐다. 한화그룹 차원에서도 계열사별로 글로벌한 신성장 동력 사업을 정하라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한컴의 경우 과거 황기성 사단의 <고스트 맘마>에 투자한 적이 있는데다 다소 딱딱한 그룹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영화를 비롯한 문화콘텐츠 사업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업 추진에 꽤 오래 시간이 걸렸다. 영화업 진출을 확정한 것이 올해 1월이다.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숫자를 따지는 입장에서 영화쪽 수익률은 위험부담이 크니까. 게다가 지난해 수익률 상황은 더 나빴잖나. 그룹의 승인을 받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CJ쪽에 미안하다. CJ쪽하고 지난해 5월에 펀드 결성에 관한 양해각서를 주고받았는데 실행이 늦어졌다.

-극장, 케이블 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통사처럼 모바일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맞다. 플랫폼이 없다. 지금 당장 유통, 배급 등과 관련해서 뭘 하겠다고 정한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단순 투자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증권투자랑 뭐가 다른가. 다만 메가박스가 매각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쪽 상황이 앞으로 급변할 것이라 보고 있다. 그걸 염두에 두면서 큰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극장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뜻으로 봐도 되나. =할 수도 있겠지. 케이블 사업체도 인수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몇년 동안은 공부하면서 지켜볼 계획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흑자를 낸 한 멀티플렉스도 올해 1/4분기 손익 결과가 마이너스가 났다던데. 이미 스크린은 포화인 것 같다. 새로 극장을 짓는 식은 아닐 것이다.

-기존의 멀티플렉스 체인을 인수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지금 당장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배급 사업 또한 마찬가지다. 투자작의 경우도 일단 올해 하반기는 5억∼10억원 정도의 부분투자로 시작할 것이다. 알려진 대로 CJ와 벤티지 홀딩스의 영화들이다. 가속도가 붙으면 내년 상반기에 2호 펀드를 결성할 것이다. 그러면 메인투자를 할 수도 있겠고.

-신규 자본 유입이 충무로 위기탈출에 도움을 줄까. =중요한 건 과거처럼 투자사들이 작품 선택과 제작 관리를 허술하게 가져가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이 늘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위기를 타개할 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