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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판타지 빈 아저씨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절대 판타지 빈 아저씨가 칸영화제를 한방 먹이다.

런던만큼 우아한 성당 앞, 낡은 미니 쿠퍼 한대가 주차를 시작한다. 뒤차가 부서지고, 행인이 다치는 따위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차 문을 잠그기 위해 동원된 고전적인 자물쇠가 클로즈업 되는 순간, 그제야 미스터 빈의 등장이 확인된다. ‘빈 본색’ 자체가 드라마의 알파라면, 오메가는 ‘본색형국지세’다. 미스터 빈(로완 앳킨슨)이 펼치는 스펙터클은 예측불가해성과 철면피적 속성에서 미스터 본드의 그것을 뺨칠 만하다. 00시리즈 첩보원을 해치우고 그 자리를 차지한 <쟈니 잉글리쉬>에서 그 유사 활약성을 증명한 바 있다. 소시민 미스터 빈으로 돌아온 그가 어떤 형국지세를 만들려나. 성당 안은 프랑스 칸의 리비에라 해안으로 가는 여행권과 캠코더를 최고상으로 내놓은 경품 추천이 한창이다. 동전만한 눈으로 희색만면한 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숫자가 적힌 표를 내던지고 돌아서려는 순간, 깨닫는다. 6과 9를 거꾸로 봤구나. 지체없이 떠난 그가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칸행 열차를 타기 위해 리옹역으로 가야 하는데 정반대인 신시가지의 한복판으로 와버렸다. 나침반을 빼어든 빈 아저씨, 벤치가 가로막아도 식당이 버티고 섰어도 1cm도 흐트러짐 없이 곧장 나아간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목적지에 정확히 도착하는 건 ‘빈 본색’도 아니며 빈에게 바라는 목적도 아닐 것이다. 빈 자체가 판타지니까. 낡았지만 번듯한 콤비 정장으로 치장한 건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 소시민이란 뜻일 게다. 막무가내 제멋대로 산다는 것 하나로 절대적 차이를 낳을 뿐. 찰나의 시행착오가 있을지언정 헤로인없이도 절망을 느끼지 않는다. 슈퍼히어로 같은 초능력도, 007 같은 첨단 무기가 없어도 자기 하고 싶은 걸 ‘그냥 막 한다’는 건 놀라운 판타지다. 죄없는 이웃의 피해를 돌아볼 필요가 없으니 빈은 슈퍼히어로에게도 판타지다. 기차 출발 5분 전, 샌드위치 자판기에 지폐를 넣다가 넥타이까지 넣어버려 탑승에 실패하는 순간, 그의 목적지 도착이 한없이 지연되리라는 걸 예고한다. 역사 안 식당에서 죄없는 여인의 핸드백에 꿈틀거리는 생굴 무더기를 쏟아놓는 만행을 함께 즐기는 태연한 여유가 필요해질 뿐이다. 그런데, 아니 마침내 미스터 빈이 막무가내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칸행 티켓에 부상처럼 주어진 게 디지털 캠코더였다. 빈이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유일한 물품인데, 액자소설처럼 영화 속 영화의 구실을 한다(사실 이건 절정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중대한 반전이다!). 기차에 오르는 셀카를 찍던 빈이 지나던 승객에게 촬영을 부탁한다. 맘에 들 때까지 재촬영을 시키더니 출발하는 기차에 빈 혼자만 냉큼 올라탄다. 움직이는 기차를 두드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를 기차 안에서 재밌다는 듯 촬영하던 빈이 가공할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어린 아들이 객실에 남아 있었다. 소년이 러시아말을 한다는 건 시간이 흐르고서야 알게 되지만 상관없다. 빈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예’, ‘아니오’만 하니까. 일말의 책임감과 동정심을 느낀 빈은 다음 역에서 소년을 따라 하차하고, 소년을 아빠와 재회시켜주기 위한 머나먼 로드무비를 시작한다.

현기증 일으키는 부단한 가지치기가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의 묘미다, 라는 건 쉽게 예측되는 바, 매듭짓기가 엉뚱하지만 은유를 담고 안착한다는 점에서 쾌감이 증폭된다. 꼬리 무는 난관과 엉뚱한 돌파가 지루해질 무렵 사태를 가파른 속도로 해결하되, 미스터 빈의 기능과 한계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소년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유명 영화인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가던 참이었다. 하여 유명인 아들 납치범으로 TV에 소개되는 빈은 두명의 영화인을 더 만난다.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예술감독 카슨 클레이(윌렘 데포)와 그의 작품에 잠깐 출연하는 여배우 사빈느(에마 드 칸니스). 감독 클레이는 빈과 사사건건 대적하게 되는 맞수이고, 사빈느는 로맨스풍 인연을 이어가는 빈의 파트너다(맙소사, 빈에게 아리따운 여자가?). 클레이의 고독한 자의식이 지독하게 반영된 <플레이 백>이 칸에서 상영되는데 빈은 이 고리타분한 작품에 결정타를 먹인다. 2006년 칸영화제 기간 중에 실제 촬영된 마지막 시퀀스에서 탱크처럼 생긴 영화제 건물에서 해변으로 사뿐히 옮겨가는 빈의 힘찬 발걸음이 마지막 판타지 펀치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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