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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미숙한 설정과 트릭에 갇히다

<리턴> 소재를 살리지 못하고, 추리스릴러로서도 허술한 영화

<리턴>은 수술 중 각성이라는 희귀 현상을 다루고 있는 의학 소재 추리스릴러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평가하는 건 비교적 쉽다. 소재와 주제를 제대로 잘 살렸는지, 스릴러와 추리물의 형태를 온전하게 갖추었는지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이 기초를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지 보면 된다.

우선 영화가 수술 중 각성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자. 수술 중 각성이란 환자가 수술 중 깨어 있어 그동안의 고통을 그대로 겪는 것을 말한다. 근사한 호러 소재지만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소극적이기 짝이 없다. 이 영화에서는 수술 중 각성이 두번 나오는데, 하나는 연쇄살인마의 과거로 도입부에 나오고, 다른 하나는 반전 뒤에 숨겨진다. 다시 말해, 관객이 직접 감정이입하는 캐릭터의 눈을 통해 직접 경험되는 사건은 단 하나도 없다. 이걸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때문에 소재가 품고 있던 힘이 시작부터 절반쯤 날아가버렸다는 건 그냥 사실이다.

그럼 추리스릴러 요소를 보자. <리턴>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수술 중 각성을 경험한 뒤 픽하고 맛이 가버린 남자의 복수극이다. 그는 자신을 수술한 의사들뿐만 아니라 병원 책임자들, 그들의 아들딸들, 심지어 그들의 배우자까지 죽인다. 여기까지는 이해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경제성은 심히 의심스럽다. 그가 그렇게 분노하고 있다면 그가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해야 할 대상은 아들딸들, 배우자들, 며느리가 아니라 바로 의사들이다. 그런데 그는 복수를 거꾸로 한다.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의사들은 간단하게 높은 데에서 밀어버리거나 차를 폭파해 간단히 죽이고, 사건과 전혀 책임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에너지의 반 이상을 집중한다. 그냥 미친놈이라서 그렇다고? 미쳐 있을수록 계산은 더 정확한 법이다. 살인마 자신의 비유를 빌린다면, 원금을 포기하고 이자만 받으려 기를 쓰는 빚쟁이를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된 건가? 한마디로 캐릭터가 작가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설정에 갇혀 자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리턴>에서는 캐릭터들의 고통보다는 중·후반의 반전이 더 중요하다. 살인마들만이 감옥에 갇혀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라고 나온 김명민 캐릭터가 영화 내내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유도 그가 설정용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가 죽였나’를 맞히는 추리물로도 영화는 굉장히 미진하다. 이 영화의 용의자는 겨우 둘이다. 한명은 의심스럽게 행동하고 다른 하나는 배우가 좀더 유명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범인을 공개하는 셈인데,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진상을 커버하기 위해 도입한 장치들이 그냥 미숙하거나 공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유준상 캐릭터의 등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훈제 청어’(red herring)로, 이런 걸로 관객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릴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그동안 범인의 동기에 더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진짜 범인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사용된 트릭들은 그냥 나쁘다. 가장 나쁜 건 가짜 재현장면을 도입하는 것으로 이건 아주 공들여 짜넣지 않으면 그냥 사기다. 범인이 자신의 안전에 대해 어이없을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것도 수상쩍다. 그가 남겨놓은 증거와 증인들은 트럭으로 담아도 모자란다. 그와 최면술 당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심지어 그는 살인을 저지르려 해외 나들이까지 했는데 과연 알리바이 조작에 신경이나 썼는지? 최면술에 대한 과신과 남용도 지적해야겠다. 난 도대체 한국 장르 작가들이 이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부탁이니, 기존 공식을 넘어설 만한 아이디어나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냥 최면술에 대해 쓰지 말아라. 지금이 무슨 40년대인가?

<리턴>의 설정이 현대 한국이라는 무대와 그렇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해야겠다. 우선 작가들 중 우리가 전 국민의 신상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경찰국가에 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여기엔 추리도 필요없다. 아무리 살인범이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도 경찰이 이미 쌓여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조금만 활용해도 가지치기는 몇분 안에 끝난다. 그리고 유준상 캐릭터는 포스트 9·11의 살벌한 세상을 살면서도 어떻게 권총을 한국에 밀수입해왔을까? 국내에서 구한 거라면 해외에서 살던 재미동포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입수했을까? 아무리 봐도 <리턴>은 오리지널이 아닌 서툴게 번안한 구닥다리 외국영화의 리메이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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