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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살인 놀이의 기호학

상징(symbol), 지표(index), 도상기호(icon)로 추적해본 <조디악>의 진짜 범인

초등학교 시절 애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를 읽고, 한동안 암호문 만드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그래봤자 그냥 한글 자모를 숫자로 바꿔놓은 것이었다. 그 뒤 거의 30년이 지나서, 독일 유학 중 포를 읽던 시절의 내 나이 또래의 어린 소녀에게서 암호문을 선물로 받았다. 서양 알파벳을 루나문자 비슷한 문양으로 바꿔놓은 것인데, 아무리 뒤져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범죄와 놀이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라 그런지 <조디악>은 여러모로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킨다. 한국에서 대본을 가져다가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 최종적 결과가 DNA 검사로 가려지고, 유력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그럼에도 그자가 범인이라는 강한 심증을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사건에서 범인이 보이는 행태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성 연쇄살인의 희생자는 모두 여성들. 이는 범행의 성적 동기를 강하게 시사한다. 반면 <조디악>의 희생자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그의 살인에는 “동기가 없다”. 게다가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화성의 연쇄살인범과 달리 조디악은 버젓이 신문사에 자신의 필적을 보내고, 방송에 목소리를 남긴다. 이는 그가 살인을 사회와 벌이는 ‘게임’으로 여긴다는 의미한다. 조디악의 범행 동기는 순수하게 미학적이다.

수사의 방식도 다르다. <살인의 추억>에서 수사는 논리가 통하지 않던 5공화국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심증만으로 피의자를 잡아들인 뒤 고문으로 자백을 얻어내는 식이다. 반면 <조디악>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과학적이다. 피의자의 인권도 최대한 보장된다. 아무리 심증이 가도 ‘영장’없이는 체포도 할 수 없고, 심지어 가택수색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살인의 추억>에서 서사는 ‘감정’의 선을 타고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극적으로 전개되는 게 마치 바로크 드라마 같다. 반면 <조디악>에는 그런 극적 긴장감이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은 ‘이성’의 선을 타고 흐른다. 범인을 추적하는 것도 학자가 연구를 하거나, 관료가 업무를 수행하는 듯이 건조하다. <살인의 추억>처럼 재미는 없지만, 여기에는 이성을 작동시켜 읽어야 할 코드가 들어 있다.

암호해독

영화에서 내 관심을 끈 것은, 살인자가 신문사에 암호문의 형태로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영화 속의 암호문은 그리스 문자, 해군 수기 사인 등 여러 기호체계를 혼합해서 만든 것으로 상정된다. 살인자는 암호문에 제 이름을 감추어 두었다고 주장한다. 암호문은 신문을 통해 공개되고, 이로써 범인 잡기는 온 사회가 함께 푸는 수수께끼 놀이가 된다.

요즘의 스포츠신문에 스도쿠 문제가 실리듯이, 오래전에 미국에서는 신문에 오락거리로 암호문이 실리곤 했다. 때로는 독자들이 직접 작성해 투고한 암호문이 실리기도 했는데, 마크 트웨인은 이들의 암호문을 해독하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걸 다 어떻게 풀었을까? 아무리 바꿔놓아도 암호문 역시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언어라는 사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령 독자의 암호문을 받아들면 마크 트웨인은 먼저 자주 반복되는 문자열을 솎아냈다. 그리고 이를 일상언어에서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단어와 매치시켰다. 가령 암호문 속에 ‘□△○’라는 문자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영어의 정관사 ‘the'일 확률이 크다. 몇번의 시행착오만 반복하면, 아마추어들의 암호문쯤은 제아무리 복잡해도 웬만큼 다 풀어낼 수가 있다.

영화에서 조디악이 보낸 첫 번째 암호문도 그런 식으로 풀린다. 암호를 푼 교사부부는 살인범이니 ‘kill’이라는 말을 자주 쓸 거라는 가정하에 같은 기호가 두개씩 붙어 있는 기호열을 찾아낸다. 이로써 이미 k, i, l의 세 글자가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풀어낸 암호문 속에는, 주인공의 예상대로, 범인의 이름이 없었다. 이렇게 원시적인 암호문으로 범인이 제 정체를 스스로 드러낼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암호와 단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사건 당시에 조디악은 네개의 암호문을 보냈고, 그중 세개는 아직까지 해독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조디악의 메시지들이 해독의 단서를 주기에는 너무나 짧거나, 혹은 너무나 복잡한 코드로 암호화되어 있어 아직 풀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메시지들이 실은 암호문이 전혀 아닐 가능성이다. 과연 어느 쪽일까?

조디악이 자신의 놀이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풀리지 않은 이 세개의 암호문에는 자신을 잡을 단서를 심어놨어야 한다. 그 세개가 아예 메시지가 아니거나, 혹은 아무 단서도 포함하지 않은 빈 메시지라면, 그는 사회를 향해 엉터리 게임을 제안한 셈이 된다. 진정으로 유희정신을 가진 범죄자라면, 애초에 게임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놓고 자기가 이겼다고 좋아하지는 않을 터. 그가 쪽팔리지 않으려면, 메시지 안엔 단서가 들어 있어야 한다.

조디악이 남긴 메시지들을 푸는 게 마니아의 오락이 된 모양이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자신이 조디악의 메시지를 해독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샹폴리옹 이전에 이집트 상형문자를 풀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난무하던 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메시지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영화에서 암호문은 그 이후에 플롯을 전개하는 데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증거와 정황

조디악의 살인 놀이는 상대방에게 두 가지 실마리를 던져준다. 하나는 암호문으로 된 메시지이고, 다른 하나는 필적과 지문과 같은 흔적들이다. 퍼스의 구분에 따르면, 암호문은 기호론적으로 ‘상징’(symbol)에 속한다. 하지만 암호와된 언어기호는 해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필적, 지문, 목소리와 같은 ‘흔적’뿐. 그것은 기호론적으로 ‘지표’(index)에 속한다. 상징의 해독에 실패한 이상, 수사는 지표의 추적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표의 추적은 번번이 실패한다. ‘크로니클’의 폴 에이브리 기자, 샌프란시스코 경찰청의 데이빗 토스키 형사도, 주인공의 카투니스트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선을 따라 범인에게 다가가나, 범인에 닿기 직전에 흔적이 끈이 끊기면서 좌절하고 만다. 이 좌절은 그들에게는 곧 인생의 좌절이었다. 기자는 폐인이 되고, 형사는 자작극이라는 누명을 쓰고, 카투니스트의 결혼생활은 파탄에 빠진다.

자동차에서 얻어낸 깨진 지문은 용의자의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전화 교환원은 용의자의 목소리가 조디악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필적을 감정하는 박사는 용의자의 필적이 조디악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중에는 용의자의 DNA마저 조디악이 보낸 편지에 묻은 DNA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다. 한마디로, 실제 범인의 존재로 이어지는 실들 중에서 확정적인 지표는 모두 끊어져 있는 셈이다. ‘리’가 찬 시계의 이름은 ‘조디악’이다. 조디악의 암호문에는 해군의 수신호 기호가 사용되고, 해군 도서관에서는 암호에 관한 책이 분실됐다. 그런데 마침 ‘리’가 해군 출신이다. 게다가 리가 다른 일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조디악의 편지가 끊겼다가, 그가 출감한 이후에 다시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 모두가 강하게 리가 조디악임을 시사하지만, 이 실들은 범인이 있는 곳으로 이끌기에는 너무 짧다. 그것들은 ‘증거’가 아니라 ‘정황’일 뿐이다.

사진과 목격

이로써 지표를 통한 추적도 실패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 도상기호(icon)뿐. 영화의 마지막에 그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범행의 피해자가 수십년 만에 다시 나타난다. 그는 조디악의 얼굴을 본 유일한 목격자다. 32년 만에 돌아온 그는 여러 용의자들 사진 중에서 정확하게 리의 사진을 짚어낸다. 그에게 확실성의 정도를 묻자, “10 중에서 최소한 8”이라고 대답한다. 32년 만에 나타난 증인의 80%의 확실성. 이 역시 용의자를 범인으로 확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리하여 상징, 지표, 도상을 통한 모든 추적은 실패로 돌아가고, 사건은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든다. <조디악>의 플롯은 이렇게 기호론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너무 이성적이라 그런지 서사의 진행이 지루하고, 인물들의 개성이 살지 않는다. 극적 진행과 개성적 연기는 차라리 주먹구구 수사에 감정의 선을 타고 흐르는 <살인의 추억>쪽이 낫다. 맺음 역시 <살인의 추억>쪽이 더 깔끔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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