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사람들
[스폿 인터뷰] 지금은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해야 할 때
글·사진 강병진 2007-09-03

제11회 레스페스트영화제를 찾은 창립자 조너선 웰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레스페스트영화제가 귀빈 한명을 초대했다. 지난 1995년 자신의 아파트 지하실에서 저해상도 영화제란 이름으로 레스페스트영화제의 전신을 창립했던 조너선 웰스다. 그동안 전세계를 다니며 영화제의 프로듀서로 일했던 조너선 웰스는 이번 서울 방문을 통해 11년간 이어온 레스페스트영화제의 마지막을 장식할 계획이다. “세미나를 앞두고 있는데, 이번 행사가 마지막 레스페스트라고 하면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웃음)” 영화제가 성장하면서 뿌듯했던 한편,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많아졌다는 그에게 레스페스트영화제의 회고를 부탁했다.

-영화제 창립자라고 해서 나이가 매우 많을 줄 알았다. =젊게 보인다는 건가? (웃음) 사실 서른일곱살이니까 적은 나이는 아니다.

-레스페스트영화제는 1995년 당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지하실에서 처음 시작됐다. 아직 전세계적으로 디지털영화가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 데, 어떻게 디지털에 주목하게 되었나. =그 당시 소니에서 디지털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계들을 개발했다. 나는 그때 비디오 게임회사에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전문적으로 영화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디지털에 매력을 느꼈다.

-당시 영화제는 어떤 풍경이었을지 궁금하다. =일종의 파티였다. 스파이크 존즈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만든 짧은 비디오 클립을 상영했다. 한쪽 방에서는 술판이 벌어졌고, 다른 방에서는 영화를 상영하는 식이었다. 그 다음해부터는 아트갤러리로 이동해서 100명가량의 관객이 참여했고 이후로 700명, 1천명씩 관객이 늘어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지금은 레스페스트영화제가 40여개 도시를 아우르는 글로벌 행사가 됐다. 창립자로서 볼 때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느끼는 장점도 있겠지만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처음에는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행사가 커지면서 좋았던 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디자이너나 감독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래서 1년 전에 설립한 플럭스(Flux)를 통해 레스페스트와는 또 다른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디지털영화를 만들고 상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레스페스트영화제가 과거와는 달리 소외되고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당신이 처음 원했던 세상일 것 같다. =맞다. 지금은 내가 처음 구상했던 그림들이 완벽하게 실현된 시점이다. 지금은 유투브 같은 사이트를 통해서 누구나 외국의 영상물을 접하고 있다. 그러나 DJ들이 노래를 고르는 것처럼, 이러한 환경에서도 좋은 영상들을 골라서 상영하는 것은 레스페스트의 중요한 역할인 듯싶다.

-앞서 이야기한 또 다른 프로젝트는 어떤 색깔로 기획되고 있나. =단지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영화를 통한 여러 가지 경험에 주목하고 있다.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을 보기 전에 O.S.T를 먼저 듣고 영화를 본다거나, 영화의 세트와 비슷한 공간에서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아마도 내년에 다시 이 프로젝트와 함께 한국을 찾게 될 것 같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