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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명적인 매혹, ‘시네프랑스-이자벨 위페르 특별전’

9월4일부터 11월11일까지 매주 화, 일요일 열려

아름다운 배우는 많지만 자기만의 향기를 가진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해서 영화가 발견한 가장 큰 성취라고 할 수 있는 클로즈업을 견뎌낼 수 있는, 큰 스크린을 자신의 얼굴만으로 채울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과 표정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 그중 하나가 바로 이자벨 위페르다. 창백할 정도의 하얀 피부와 딱 떨어지는 정형미를 살짝 비켜나가는 그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딘지 모를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 불안감은 얼굴뿐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단어를 좀체로 찾아내기 힘들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자기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그는 모든 영화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로 변신하면서도 여전히 ‘이자벨 위페르’로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올 가을 하이퍼텍 나다의 ‘시네프랑스-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주로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지 않은 작품들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1955년 3월16일 파리에서 5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영어교사였던 어머니의 권유로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1968년 베르사유 연극학교에 들어가 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다진 그는 <포스틴과 아름다운 여름>(1971)이라는 작품으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영화는 클로드 고레타 감독의 1977년작 <레이스 짜는 여인>(La Dentellire)이다. 파스칼 레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베아트리스라는 18살 소녀가 사랑에 빠지고, 버림받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30년 전 이자벨 위페르의 얼굴에서는 현재 그가 지닌 상충되는 두 이미지의 원형이 고스란히 발견된다. 극중 베아트리스의 별칭인 ‘폼므’(pomme)에 어울리게 사과같이 동그랗고 귀여운 그녀의 얼굴은 광기어린 악녀를 연기할 때조차 느껴지는 왠지 모를 아기 같은 순수함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실연의 아픔을 겪고 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간 뒤 베아트리스의 모습은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지금 그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피아니스트>

이자벨 위페르는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까지 넘나들며 고다르에서 마이클 치미노까지 수많은 감독들과 작업을 해왔는데, 이중 그의 연기경력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 것은 클로드 샤브롤과의 작업들이었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에서 그는 수녀원 출신의 단아한 시골 처녀가 허영심 많은 요부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아주 담담하게 연기한다. 그는 시대극의 외장과 전통적인 드레스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욕망을 품은 여인의 삶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해내는데, 그의 존재없이 플로베르의 원작을 형상화한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었으리라고 상상하기는 힘든 일이다. 다시 한번 클로드 샤브롤과 호흡을 맞춘 <의식>(La Ceremonie)에서 그는 상드린 보네르와 콤비를 이룬 광기어린 연기로 세자르와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부르주아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와 친구가 되어 결국 그 가족 전체를 몰살하는 우체국 직원을 연기하는데,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프롤레타리아의 비틀린 감정들을 폭발적으로 발산해내는 라스트신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에서 ‘샤브롤은 배우를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만드는 감독이지만, 오히려 그런 상태가 자신에게는 더 자유스러움을 느끼게 했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전형성 속에서 전복을 도발하고, 광기 속에서 차가움을 발산하는 그의 이미지에 딱 떨어지는 멘트가 아닌가.

이러한 이중성은 크리스티앙 뱅상 감독의 작품 <이별>(La Separation)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남편에게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말하는 앤을 연기할 때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해서 그녀를 단순히 바람난 가정주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부부에게 찾아온 결혼의 위기를 영화관에서 가볍게 잡는 남편의 손길을 뿌리치는 아내의 몸짓을 통해 파국의 실마리를 포착해내는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관계의 문제를 찬찬히 되짚어보게 만든다.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보장해주는 이자벨 위페르라는 배우는 그의 이름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도 시네필에게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이 영화들 외에 고다르와 함께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Sauve qui peut la vie)과 그녀의 관능적인 매력이 묻어나는 모리스 피알라의 <룰루>(Loulou), 다이앤 커리스의 <첫눈에 반하다>(Coup de foudre), 올리비에 다한의 <약속된 인생>(La vie promise) 등을 만날 수 있고, 그녀가 칸에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만든 <피아니스트>(La Pianist)를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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