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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훈훈해지는 판타지 <스트레인지 댄 픽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고, 더 행복한 사람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 법

삶은 소설보다 멀리 있지 않다. 모든 문학의 보편적 주제가 삶의 지속성, 죽음의 필연성이라고 할 때, 그것은 희극 아니면 비극, 소박하게 말해 사랑하거나 죽기다. 여기 숫자와 규칙으로 가득한 삶을 살던, 성실해서 슬플 정도로 평범한 남자 해롤드 크릭(윌 페렐)의 체크리스트를 보자. 관능없이 살던 그의 리스트엔 비극적 항목이 압도적이다. 그의 삶에는 어떠한 스토리도, 그럴듯한 발단 전개 위기 절정도 없다. 융통성없는 국세청 직원 해롤드 크릭은 그 이름에서 연상되듯 째깍대는 시계바늘처럼 규칙적으로 일상을 패턴화한다. 그런데 숫자와 계산에 둘러싸인 그의 삶에 어느 날 문득 낯선 목소리가 침입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주석을 다는 소설가의 내레이션이 그의 삶과 죽음을 예지하고 있는 것. 해롤드의 일상의 패턴은 이러한 낯선 문학적 목소리의 개입과 더불어 매력적인 아나키스트 파티셰인 안나 파스칼(매기 질렌홀)의 등장으로 동요된다. 차가운 시계처럼 돌아가던 그의 심장은, 안나 파스칼 앞에서 어이없게 고장나버린다. 죽음을 예고하는 소설가의 목소리와 삶을 긍정케 하는 사랑의 열정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쥔 소설가를 찾아가는 해롤드. 바야흐로 그의 삶에 스토리가 얹히고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쌓이게 되는 것. 이제 그의 삶에는 어떠한 극적 반전이 필요하다. 죽음으로 갈 것인가 열정으로 갈 것인가, 혹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익숙한 제목에서 짐 자무시적 우울함을 연상했다면, 당신은 지루한 불면의 밤에 기꺼이 이 영화를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네버랜드를 찾아서>와 <몬스터 볼>의 따뜻한 휴머니스트 마크 포스터가 마음이 훈훈해지는 판타지가 처방된 신경안정용 영화를 선사할 테니 말이다. 삶을 체감케 하는 것이 비극이라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희극이다. 작가가 비극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과 환자를 찾아다닐 때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소설인 <죽음과 세금>(Death and Tax)은 얼핏 들어 <생기와 사랑>(Breath and Sex)처럼 들린다. 선험적으로 부여되는 운명적인 서사 속에 있지 않더라도, 결국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던가? 지극히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앙증맞은 이 판타지는 적어도 거짓 환상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발걸음이 마침표가 아니라 아직은 쉼표나 말줄임표 같은 구두점을 찍고 있는 중이라고 자위하는 쓸쓸한 통근자들에게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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