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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박물관 전시품 기증 릴레이 4] 대종상 여우조연상 트로피

<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내년 5월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열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해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네 번째 기증품은 배우 최지희가 기증한 제3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 트로피입니다.

“눈이 동그랗고, 외형적인 움직임의 타입이라고. 내성적 고민형,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육체적으로 치중된 말괄량이지.” 한국 문예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김약국의 딸들>을 연출한 유현목 감독은 영화 속 최지희를 이렇게 묘사한다. 박경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김약국집 네딸들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근대화되는 과정 속에 흔들리는 시대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이다. 최지희가 연기한 셋째딸 용란은 애정없는 결혼 대신 사랑을 선택한 대가로 자신과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비극과 욕망의 화신이었다. 속옷이 보일 정도로 치맛단을 높이 흔들며 여성의 욕망을 가감없이 전시했던 그는 주연을 압도하는 조연의 무게감으로 1963년 제3회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위시해 그해 영화상을 거의 휩쓸었다. 최지희는 ‘한국의 브리짓드 바르도’로 불리며 한국영화에서는 드문 아름답고 섹시한 악녀의 전형을 선사했던 장본인. <김약국의 딸들>에서 최지희가 곧 용란일 정도로 배역에 깊이 몰두했던 그는 많은 배우들이 전속 성우를 두던 당시에 목소리 연기까지 직접 했다. “바빠서 성우와 스케줄을 맞출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내 목소리로 사투리하는 걸 직접 녹음했지. 한달 정도 밤을 새워가며 녹음을 했어. 그때는 자기 목소리로 녹음을 하지 않으면 상을 받을 수도 없었다고….” 성우의 후시녹음이 대세였던 시대에 배우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 영화에 상을 주는 것은 당시 영화계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엄앵란 역시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 1965년작 <아름다운 눈동자>로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제는 글씨조차 희미하지만 낡은 트로피에는 그 시절의 추억과 한국영화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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