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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류승범 형제의 `버라이어티 토크쇼` [2]
이영진 황혜림 2001-10-26

행복한 영화 보기, 더 행복한 영화 수다

범 | 형은 내가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하기 전부터 나한텐 이미 감독이었잖아. 보여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자그만 방에서 빛이 안 들어오게 커튼을 치고, 벽에 스크린을 만들어서 영화도 봤지. 형이 찍어온 영화들. 소리가 굉장히 멋있었어.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느낌이 참 묘해. 방이 깜깜해지고, 집이 극장이 되는 듯한…. 영화 자체보다는 그런 상황들이 재밌었던 거지만. 그래도 극장 가는 건 별로 안 좋아했는데, 형이랑 성룡 영화는 많이 본 것 같아.

완 | 성룡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봤으니까. 성룡 영화는 정말 좋아. 특히 80년대 성룡 영화들. 요즘의 성룡은 연세가 많이 드셔서…. (웃음) 열심히는 하시는데…. <엑시덴탈 스파이> 볼 때는 정말 영화 그만 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더라구. 그래도 최근작 중에서 나은 <러시아워2> 보면서 아, 그래 저 맛이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

범 | 성룡도 좋지만, 길이 들어 있어선지 아무래도 할리우드 액션영화도 좋아. <스워드피쉬> 같은 영화에서 헬기로 버스 들어올리고 이럴 때는 정말…. 영화를 떠나서 장면 그 자체,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서 정말 사람의 상상력이 거의 최대치에 갔을 때를 장면화시킨 걸 보는 거, 좋아. 상상만 해본 것들,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화면화한다는 게 할리우드영화의 재미인 것 같아. 그래도 제일 충격적인 건, 지금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다워>야. 맨 마지막에 날 울렸던 장면도 최고의 장면이고. 엄마가 환하게 웃고 다시 만난 아이를 안는. 보면서 쭉 그랬거든. 처음엔 되게 유치하다, 뮤지컬 같다, 슬랩스틱 같은 분위기로 막 웃기다가 중반 갔을 때는 야, 이거 신파로 가는구나. 옆에서 누가 찔끔찔끔 우는데도 일부러 참고 안 울었는데, 아빠가 죽으러 갈 때 저 아저씨가 나랑 총싸움하자구 그러니까 갖다올게, 아빠만 놀아서 미안해, 그러면서 딱 걸어갈 때부터 찡하더니 마지막에 엄마의 미소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확 나더라구.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일부러 두번을 안 보는 영화야.

완 | 뭐 좋아하는 거야 너무 많지. 스코시즈 영화도 좋아하고.<인생은 아름다워>나 베니니의 다른 영화 <미스터 몬스터>도 좋아하고. <ET>에서 자전거 타고 날아가는 장면, 성룡 영화의 격투신 굉장히 좋아하고, <성난 황소> 오프닝 장면. 왜 대사도 “분노하며 시를 읊을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엔터테인먼트지”, 그 대사 좋잖아. <분노의 역류>에서 “니가 가면 내가 간다”, 그 대사도 되게 좋고.

범 | 얼마 전에 비디오로 다시 봤는데, <파이란>에서 최민식 선배님이 공형진 선배한테 “너는 나이를 주접만큼 먹어서 좇도 몰라” 그러잖아. 충격적이데.(웃음) 그게 왜 탁 왔냐면 사실 최근에, 되게 건방지지만 배우 최민식의 연기를 혼자 막 파헤쳐보려고 했거든. <넘버3> 막 4번씩 보고. <파이란>도 그래서 다시 봤어. 뭐가 틀린가, 나랑 욕하는 게. 근데 갑자기 “너는 나이를…” 이러는데, (웃음) 그 다음부터는 영화를 그냥 보게 되더라구. 되게 셌어.

완 | 나는 진짜 슬랩스틱이 좋아. 심형래가 <변방의 북소리>에서 (일동폭소) 뭘 막 흔들다가 띵 맞고 이러는 거 정말 좋아하고, 이기동 아저씨하고 긴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한명이 벌떡 일어나면 넘어지고 그런 거. 내가 버스터 키튼 영화 진짜 좋아하잖아. <세븐 챈스>에서 산에서 바위돌하고 같이 막 구르고, <제너럴>에서 기차에 막 매달려 가지고 막…. (웃음) 그거 정말 예술이잖아. 대삿발이나 네가 말하는 아주 진지한 상황에서 나오는 코미디는 타란티노 영화가 죽이지. <펄프 픽션>에서 크리스토퍼 워컨이 엉덩이에다가 시계를 숨기고 얼마를 살아서 치질 걸렸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 하면서, 그걸 너무나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 맥도날드가 낫네, 버거킹이 낫네 그거 가지고 싸우다가 총 맞아 죽고. 그게 너무 죽이잖아. 그런 게 재밌지.

범 | 형이 만드는 영화의 코드도 난 좋아. 형이기도 하지만 감독으로서도 굉장히 잘 맞고, 죽이. 죽이 잘 맞으니까 좋아하고. 어떤 신파적인 것들이 안에 있는 것 같아. 그 대신 절대 보여지지 않고. 그게 기본이지. 기준. 기준이 있는 코미디, 기준이 있는 무서움, 기준이 있는 액션. 어떻게 말로 잘 설명은 못하겠고, 느끼는 건데, 신파라는 게 막 진짜 따분하고 그런 방식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가는 거지. 어떻게 보면 유치할 정도로 웃기고, 그러면서 진지할 때는 또 굉장히 진지한데, 그런 것들이 기본 수치를 벗어나지 않아. 웃겨야 된다고 해서 정말 웃기려고 하지 않고, 싸워야 된다고 해서 항상 ‘폼’내야 하는 게 아니다, 뭐 그런 거. 보면 재밌다는 거지. 가벼우면 그냥 가벼운 대로, 또 무거워지면 무거워지는 대로 툭툭 하는 게 좋아.

완 | 취향이 그런 거지. 감동시키려고 느끼해지는 건 싫어. 예를 들면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동은 좋은데 막 몰입을 요하는 <타이타닉>은 짜증나는 거지. 그걸 보느니 차라리 깔깔대면서 60년대 액션영화를 보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프롤로그하고 에필로그가 없었으면 좋겠다, 정 넣어야 되면 마지막에 경례만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거지. 안 그래도 충분히 할 얘기 다 하는데, 굳이 뭐 경례까지 하고…. 극장에서도 상영횟수 늘려줘야 되는데. 그런 식으로 뭔가 강요되는 게 싫어. 버스터 키튼의 스펙터클한 슬랩스틱을 보면 ‘우아’ 소리가 나잖아. 감동을 한다는 거, 감정이 동요한다는 거, 바로 그런거야. 넌 동의하진 않았지만, 저거 그냥 산에서 구르네, 그랬지만 난 정말 그 사람한테 존경심을 갖게 되거든. 근데 같은 영화도, <분노의 역류> 같은 영화도 좋지만, 도가 지나치는 영화들이 짜증나. 네가 아까 한 말대로, 관객은 팝콘 먹고 있는데 배우는 막 먼저 울고 있고, 관객은 또 돈 아깝다고 울고…. 거 아주 자세 안 나오잖아. 그런 게 싫어.

외롭고 수줍던 우리의 유년

완 | 전에 네가 새벽에 몰래 나가서 지하철 큰 거울 앞에서 춤 연습하는 거 보면서, 아, 더이상 말릴 수가 없겠다 싶더라.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던 나랑 똑같더라니까.

범 |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전문 댄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같은 게 없었어. 그땐 돈이 있어도 연습실을 구하지 못했으니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 혼자 좋아하는 뭐 그런 거였지. 그래서 연습실 대용으로 바닥이 맨들맨들했던 지하철 거울 앞이야.

완 | 처음엔 난 어디 가서 본드 부나 싶었어. 그래서 따라갔는데,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보면 아무도 없는데 옷깃 스치는 소리만 나는 거 있잖아, <데인저러스>였을 텐데, 꼭 그 분위기였어. 세세한 장면까지 다 기억난다. 그걸 보고 나서도 난 네가 그러는 게 싫었는데, 클럽 가서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같이 갔던 친구 녀석이 충고해주더라. “춤도 기술이여, 임마. 하고 싶은 대로 놔두면 되는 거라고.”

범 | 초등학교 때부터 나서는 건 싫었어. 차례가 돼서 책을 읽을 때도 더듬거렸을 정도였고, 친구가 있어도 꼭 한명이었어. 셋이 되면 내가 떠드는 것보다 듣기에 바빴으니까. 다수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중학교 때는 예전 친하게 지냈던 친구 녀석이 학교 짱이 되어 있어서 그 무리에 어울리면서 주위 친구는 많아졌지만, 늘 혼자였어. 녀석들이 술 마실 때면 매번 날 보고 넌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기나 하는 거냐라고 물었으니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상환이의 학창 시절 중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은 내 상상이 들어간 부분이야.

완 | 김두한보다는 시라소니가 어울리는 성격이지. 나도 학교 다닐 때 맨 앞줄에서 두 번째 창가에 앉아 특별히 교사 눈에도 띄지 않고, 뒷줄에서 노는 애들한테도 끼지 않고, 어디 놀러 다니는 것도 안 좋아했어. 가세가 기울면서 성적까지도 기울어서 원 참. 어쨌든 결정타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닌 건데 별 양아치들 다 봤으니까. 그런데 완전히 낙오된 아이들 중에서도 어떻게든 대학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놈, 장사하겠다고 깝치는 놈들이 있었어. 나도 고3 때 똘반이라고 부르는 특수반에서 체육특기생으로 대학 진학시키는 곳에 들어갔는데, 턱걸이 세개밖에 못하던 애가 거기 가서 두달 있으면 스무개 넘게 했을 정도로 스파르타식이었어. 거기서 하도 많이 맞아서 엉덩이는 매번 터져 있거나 부어 있었고, 수업시간에 하는 일은 손에 박힌 못을 ‘빼빠’로 문대느라 정신없었지. 거기서 폭력을 지긋지긋하게 경험해서인지 지금도 패거리주의나 마초주의 같은 게 싫어. <영웅본색>이야 보면서 환호하지만, 그건 현실에는 없는 거니까 그러는 것이고. 현실은 안 그래. 어쨌든 대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시절,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학생, 이라고 말을 걸면, 난 학생 아닌데 난 삐끼일 뿐인데 했고, 그런 상황에서 버스 안의 대학생들 보면 파일 같은 걸 들고 있는 게 되게 부러웠지. 그러면서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육화된 언어들을 내뱉는 법을 배웠고, 헤어스타일을 보고 직업을 맞히거나, 짭새가 떴을 때 태연하게 대처하는 방법, 당구장에서 손쉽게 ‘가리’하는 방법 등을 배웠지. 지금 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대부분은 그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만났던, 나랑 비슷한 울분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야.

범 | 영화를 만나고선 ‘나’를 찾은 것 같아서 좋아. 찍으면서 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기 시작했으니까. 그걸 얻게끔 해준 사람들이 그래서 소중해. 공인이 되면서 개인 류승범으로서의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게 됐지만, 얻은 게 더 많으니까, 뭐.

완 | 지금은 현장에서 동생이 어려워질 때가 있는데, 내 동생 류승범이 아니라 배우 류승범이 눈에 밟힐 때마다 그렇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주차장 장면을 찍을 때만 해도 제가 내 동생이구나 했는데 그새 많이 변했지. 그때 남산 2층 주차장에서 동선 짜면서, 배우들이 뛰어내리기 전에 시범으로 한번 뛰어내렸더니 네가 막 뛰어와서는 때리면서 ‘애까지 있는데 그러면 어떡하냐’고 마구 다그치는 거야. 스탭들은 뛰어내리기 전에 해봐, 해봐 그랬는데.

범 | 형을 현장에선 감독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에겐 항상 형이 부모 같은 존재지. 태어나서 딱 한번 경찰서 갔을 때도 보호자로 왔었고. 어려서 난 고생했다고 말하는 게 그래서 부끄러워. 난 고생한 적이 없거든. 마음고생은 있었겠지. 하지만 그 정도 없는 사람이 어딨어. 형 덕에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사고 싶은 것 다 샀고. 물론 남들보다 더 졸라야 살 수 있다는 게 달랐지.

완 | 솔직히 난 네가 집에서 자고 있을 때 보면 아직도 애 같아. 자고 있으면 그래서 엉덩이 깨물고 그러는 거고.

범 | 원래 그런 거 있잖아. 한살만 어려도 진짜, 아유, 네가 뭘 알아 그러는데 8살 위의 형에게 동생이 인생 살기 어렵다고 하면 얼마나 같잖겠어.

완 | 우리도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게을러서 잘 안 돼. <칭찬합시다> 같은 프로그램 보면 우리가 그런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주변에도 가슴 아리게 하고 숙연하게 만드는 분들 많고.

범 | 그런 사람들 중 가진 사람은 없잖아. 그 사람들도 개인적인 인생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아닐 텐데도 평생 그러시는 걸 보면, 다르게 태어난 분들 같아.

우리는 짧은 1등말고 영원한 2등이 되고 싶다

완 | 임권택 감독이 가끔 그런 말씀하시잖아. 내가 이것밖에 할 게 없어서 한다고. 근데 이게 먹고살 게 없어서가 아니라 평생 다른 것에 한눈 안 팔았다는 말로 들리거든. 영화가 취미이고 낙이고, 임 감독님에겐 평생을 몰입한 득도의 경지가 보이는 것 같아. 김지운 감독님 말대로 나도 진화하고 있다지만, 내가 임권택 감독이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연배가 되서도 평생 뭔가를 일구면서 장인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싶어.

범 | 나도 계속 배우를 했으면 좋겠어. 물론 저 지금부터 언제까지 직업배우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만큼 웃긴 것도 없지만, 나이 50에도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또 나한테 맞는 시나리오 찾아서 경험한 것을 영화로 풀 수 있다면 좋겠어.

완 | 우리 삶의 모토가 가늘고 길게 잖아. 짧은 1등말고, 영원한 2등. 부족한 게 있으면 평생 붙잡을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대학교육을 못 받은 것에 대해서도 한때는 엄청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도움이 돼. 남들은 4년 죽어라 했다면, 난 평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니까.

범 | 사장보다 상무가 멋있잖아. 1등보다 2등이 멋있고. 학창 시절에도 1등보다는 10등 안에 드는, 그러면서 운동도 잘하고, 담배도 피고, 록카페에서도 마주치고 하는 그런 애들이 멋있었어. 근데 형은 동생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을지도 모르겠네. 형하고 상황이 비슷한 친구가 있는데, 맨날 자기가 동생이었으면 싶다고 하더라구. 난 근데 형이 되고 싶지는 않아. 내가 형이 됐더라면 (집안을) 배려하는 맘도 없어서 우리 집 풍비박산됐을 거야. 내가 동물을 무서워하는 것도 뭘 챙겨주지 못해서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거든.

완 | 역할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네 얼굴이 맘에 안 들어서. 키는 크지만. (웃음) 다만 내 능력이 더 뛰어나서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하던 때는 있었지.

범 | 내 위에 누가 한명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하잖아.

완 | 누나 같은 사람? 중학교 때인가. 내가 널 거리에서 패고 있는데 모르는 여자 한명이 와서 말렸잖아. 그때야 내 동생 내가 알아서 하는데 하는 심정이었는데. 네 입장에서는 때릴 때 말려주는 누나 같은 사람이 절실했겠지. (웃음)

범 | 가족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난 결혼하면 다섯쯤은 낳을 거야. 어린 나이에 죽음을 보고, 남은 자의 슬픔을 알았잖아. 근데 남은 자가 적으면 더 슬퍼.

완 | 우리 꿈이 가족들끼리 모여사는 거니까.

범 | 난 이미 머릿속에 그려놨어. 조용하게 시나리오 읽고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에서 같이 살면 좋겠어.

완 | 마당에 샌드백은 있어야지.

범 | 성룡 모셔다가 한편 찍는 것도 있잖아.

완 | 아니지. 그때는 성룡이 감독 하고 내가 배우 하는 거지. 처음엔 그냥 멋있어 보여서 배우 하고 싶었는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해보니까 몸으로 느끼는 쾌감 같은 게 있어.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오케이가 났을 때, 아 해냈구나 하는 그런 쾌감 있잖아. 물론 지금이야 배우로서의 꿈은 많이 접었지. 정우성, 장동건 사이에 끼면 사람들이 다 그럴 것 아니야. “쟤는 어디서 온 로드니. 십주구리 하고 다리도 휘었네.” (웃음)

범 | 난 죽어도 감독은 못할 것 같아. 큰 걸 못 보니까.

완 | 지난번에 쓴 단편 시나리오 있잖아. <점심시간>이라고 그거 재밌었는데…. 내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준다고 했더니, 시나리오 없어졌다고 그러고. 하긴 너는 어렸을 때부터 뭘 마시라고 줘도 반은 흘리는 놈이었으니까.

범 | 대신 <스내치>에서 브래드 피트 같은 역은 꼭 하고 싶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남들보다 뛰어난 게 딱 하나 있잖아. 그래서 그걸 탐내는 놈들이 접근하고, 그들에게 이용당해서 결국 쓰레기로 남는 그런 역할 말이지. 브래드 피트가 엄마의 죽음 뒤에 집시들하고 술 먹고 하는 장면 보면서는 저건 내가 해야 하는데 막 흥분이 되는 거야. 화려한 건 별로 매력없어. 근데 진짜 묻고 싶은데, 정말 배우 하고 싶어?

완 | 배우는 딱 한번만 하고 싶어. 버스터 키튼처럼 액션과 스피디한 동선만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역할. 한번만 그런 역할 해보면 더이상 하고 싶은 맘이 없을 거야. 만들고 싶은 영화가 더 많아지기도 했고. 실험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장르적인 한계들을 끊임없이 무너뜨리고 싶어. <매그놀리아> 보면 문법이 액션영화처럼 풀리잖아. 액션이 하나도 없는 액션영화, 아트영화처럼 풀어나가는 액션영화를 하고 싶어. 어쨌든 쉽게 대중을 따라가려다 호흡이 가빠지는 것보다, 내 호흡으로 관객과 조금씩 호흡하는 방법을 찾아갔으면 좋겠고. 계속 지치지 않게끔 자극받으면서 영화 했으면 좋겠고. 피끓는 청춘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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