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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들의 여름, 해커들의 세상

만능 해킹 트랜스포머 등장시킨 <트랜스포머>, 유약한 해커를 책임있는 미국 시민으로 탈바꿈시키는 <다이하드4.0>

이번 시즌의 블록버스터들에 대해 단평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짧은 평을 하기에도 조금 힘든 것이, 최근 자기만의 지역적 특성, 그 리듬과 이야기 전달법을 가진 영화들을 한꺼번에 몇편 볼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샛길을 둘러가려 한다.

최근 뉴델리에서 열린 오시안 시네 팬 아시아와 아랍영화제를 다녀왔다. 이미 9회째를 맞고 있는 성공적인 지역 영화제다. 영화제 디렉터는 아시아영화를 다루는 잡지 <시네마야>의 편집장이자 아시아영화를 장려하는 영화인들의 모임인 넷팩의 창립자인 아루나 바수데브. 이번 9회의 주제가 자유인지라 개막식의 마술쇼도 해방과 탈출을 다루었다. 매우 지루한 2시간의 공연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그곳 커다란 극장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부정적인 공감대를 이루었는지 형식적인 박수도 치지 않으려고 했다. 두 시간 남짓한 라이브 공연으로 영화광들을 만족시키려면 교묘한 계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보게 된 개막작인 <라미>(Raami)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 사이의 갈등을 신화적인 로맨스로 다루는 영화였는데, 감독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것이 너무 명백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럼에도 나를 감탄케 한 것은 이 영화들이 보이는 글로벌한 어떤 흐름- 디지털, 블록버스터 대세- 에 대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무관심과 태연함이었다. 할리우드나 그 아류가 유행을 탈 블록버스터를 고안해내느라 전전긍긍하는 사이 이들 영화는 바로 지역의 문제와 환상에 천착하고 있다. 전설과 신화를 부활시켜 그것을 당대의 문제와 만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포스터만 보면 <천년을 흐르는 사랑>처럼 느껴지지만 그보다는 정치적인 좌절과 신화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오시안 시네 팬 영화제가 또 태연하게 그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 지원하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 이런 지원 시스템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존경스럽다.

인도 뉴델리의 큰 극장들(흔히 보는 멀티플렉스는 아니나 여러 개의 영화관들이 있음)에서 이런 영화들을 보고나서 세계 영화시장을 대파하려는 듯 떠들썩한 여름용 블록버스터영화들이 오히려 정말 새삼스러워 보인다. 한편으로 세상은 금융자본의 명령을 받는 블록버스터영화로 가득 차고 다른 한편의 세상에서는 지역의 전설과 신화라는 역사적 판타지를 영화라는 모던 테크놀로지와 만나게 함으로써 ‘역사적 차이’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라는 내셔널 시네마는 이 두개의 스펙트럼을 엇비슷하게 가로지르고 있는 트랜스-로컬한 영화인 듯싶다.

<트랜스포머>의 의도치 않은 현실 조롱

이번 여름용 영화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해커들의 종횡무진이다. 해커들이 세상에 그리고 영화에 등장한 지는 사실 좀 오래되었다. 쉽게 생각나는 영화가 1995년에 만들어진 <해커즈>로 거기서 소년 해커들은 몰래 바이러스를 뿌리다가 미국의 비밀경찰들에게 발각되어 18살까지는 컴퓨터 접근 금지 명령을 받는다.

<트랜스포머>에서 인간 해커들이 몇명 불려오긴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미국의 군사 시스템을 공격하는 적이 이란이나 이라크, 북한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것을 판독하는 정도다. 그러나 다음 지점이 재미있다. 사실, 미국이 군산 복합체에 자본을 쏟아붓는 핑곗거리로 사용하는 ‘악의 축’이 이 영화에서 진짜 적이 아니네! 라고 판정받는 점 말이다. 이 영화는 엉뚱하게, 의식하지 않은 채 미국의 적은 사실 지구상엔 없어! 라고 놀리듯 말하는 셈이다. 그야말로 야유다. 거기다 무장해제를 해도 좋은 것이 옵티머스 프라임(다소 동어반복적인 이름)과 그의 오토로봇 사단이 <트랜스포머> 2, 3, 4 속편들을 만들기 위해 지구에 상주하고 있지 않은가? 이와 더불어 데저트 스톰이라는 군사명을 가지고 이라크를 공격했던 미국이 그야말로 데저트 스톰과 같은 괴력을 가지고 사막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디셉티콘에 경악하고 사막의 군사기지가 파괴되는 장면도 흥미롭다. <트랜스포머>는 이론의 여지없이 디지털의 대표적인 성능 중 하나인 ‘변형’을 그 주제로 삼아, 장난감 프랜차이즈 사업과 연계해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밌는 걸 어떡해?

여하간 이 영화의 진정한 해커는 프렌지라는 차가운 은빛과 푸른빛을 두른 트랜스포머 해커로 오토로봇의 숙적 디셉티콘 중 가장 작고 민첩하다. 기계와 곤충이 뒤섞인 듯한 소리를 내는 것도 적확하거니와, 이 아이는 원래 스파이며 붐 박스 모양을 하고 있다가 곧잘 가전제품이나 휴대폰 등으로 트랜스폼한다. 모든 가전제품을 원격조정 가능한 전 자동화로 만든다는 스마트홈을 홍보하는 사람들이 선호할 트랜스포머다.

비영웅 해커, 책임있는 시민으로 거듭나다

이 외계 해커 프렌지에 비하면 지구인 해커들은 좀 무력한 편이다. 인간 해커 중 최고의 암약 실력을 보이는 해커는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이며(이것은 좋은 점이다), 성인이 되어도 아직 독립을 못하고 엄마와 살고 있으며, 안보위원들에게 잡히는 즉시 친구를 배반하고 명성에 어울리는 일을 적어도 영화에서는 해내지 못한다. 반면 프렌지는 사악하면서도 ‘fun’하고, 완벽 ‘카우치 포테이토’인 다른 해커들에 비해 상당한 액션도 구사한다.

해커는 디지털 시대의 일종의 영웅이다. 그러나 기왕의 남성 영웅들이 몸의 위용을 자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자이거나 출중한 덕을 가진데 비해 해커들은 전혀 몸을 쓰지 않고, 그래서 자랑할 만한 육체 대신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유약한 남자로 묘사된다. 여하간 이러한 남성 해커를 미국의 영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다이하드4.0>의 사명 중 하나다. <다이하드4.0>은 게릴라전에 관한 공식과도 같은 영화인데 할리우드가 부패한 집단 대 단독 영웅 서사에 심취하는 전통에서 이러한 게릴라전 총력전이 나오는 듯하다. <다이하드4.0>은 디지털 기술이라고는 휴대폰 사용밖에 모르는 아날로그계 뉴욕 형사,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이 디지털계의 천재들과 겨루는 이야기다. 영화에도 이 사실은 거듭 강조된다. 전직 정부요원이자 보안관계 수석 프로그래머였던 토마스 가브리엘(티모시 올리판트)과 존 맥클레인이 FBI로 연행해가려는 매튜 패럴(저스틴 롱), 두 사람 모두 최상급의 프로그래머들이다. 이 영화는 존 맥클레인이 이혼한 뒤 엄마의 성을 따라 떠났던 딸과의 화해를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 더 지속적이고 강력한 영화적 충동은 아날로그 시대의 육체 영웅과 디지털 시대 해커 사이의 우정의 교량 건설이다. 이 우정은 물론 동성사회적인 것이며,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화해나 이해이다. 존 맥클레인은 실제로 매튜 패럴에게 운동 좀 하라고 직접 충고한다. 그러나 이 화해는 정말 ‘다이하드’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세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번의 목숨을 건 모험이 필요하다. 전투기의 미사일 습격을 고속도로 위의 교량에서 피해나가는 장면은 하이퍼 과장법이나 사실 <다이하드> 시리즈물을 낳는 극한 체험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날로그 세대의 ‘다이하드’ 인정 투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물론 자국의 보안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탤런트를 애국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매튜 패럴은 미국의 미디어 및 그 주류 시스템에 엄청난 불만을 품고 있는 무정부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보안을 푸는 코드를 만들어주었다가 엄청난 재앙이 벌어질 듯한 위기촉발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공동체에 대한 자각을 갖는 것이다. 9.·11의 후유증을 다루는 영화로도 볼 수 있는 <다이하드4.0>은 이렇게 하여 디지털 세대의 해커를 미국의 책임있는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인한 시민으로 재탄생시킨다.

내가 기다리는 영화들

해커들이 세상에 일급 시민 내지 일급 외계인으로 등극할 사이 소년 마법사 해리 포터와 그의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불사조 기사단을 만들었고 여전히 컴퓨터 대신 마법을 전수받고 있다. 그러나 <트랜스포머>와 <해리 포터> 모두 라틴어를 변형해 선과 악의 우주적 세계를 펼쳐내려 한다. 디셉티콘, 디멘터, 페트로누스 마법, 옵티머스 프리머스 등. 서구 아날로그 세계 구성의 기원인 라틴어와 디지털 마법사, 트랜스포머의 전통 재창출의 순간들이다. 존 맥클레인이 매튜 패럴을 무정부적 세계에서 애국적 행동으로 끌어내는 것과 평행을 달리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데올로기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름 블록버스터 중에서 난 두명을 흥미롭게 여긴다. 예의 해킹 트랜스포머 프렌지와 <해리 포터>의 루나 러브굿(이반나 린치)이라는 소녀다. 루나 러브굿은 해리 포터의 세계에 나타난 일종의 기상 변이로, 꼬마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한 채 자신의 몽상적 세계에 잠겨 있어 가장 특이하게 보이지만 의리와 용기도 있다. 난 그녀가 <해리 포터> 마지막 편에서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다음 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타자가 엮은 이야기>나 <라미>와 같은 전지구화에 역행하는 마이너한 영화도 기다린다. 그 감독들이 처음의 경험을 넘어 역사적 차이를 영화적 차이로 만들어낼 수 있기를…. 뭐 굳이 말하자면 <해리 포터>나 <트랜스포머>에게 자신의 환상과 전설을 빼앗기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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