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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 명장면] 캐릭터 액션의 원초적 매력
오정연 2007-10-25

<다이하드4.0> <007 카지노 로얄>

현재의 영화는 무소불위의 CG 기술을 갖췄다. 그럼에도 액션영화의 원초적 매력을 갖추고 까다로운 유즘 관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어쩐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자신의 몸을 구경거리로 내세우거나, 상상에만 그쳤던 상황을 CG로 재현하거나 혹은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하여 90분의 러닝타임을 추격과 총격과 격투로 빼곡히 채우거나. 이에 <13구역>식의 애크러배틱 액션이 있고, <스파이더 맨>을 비롯한 각종 영웅 시리즈가 있고, 최근 개봉한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아드레날린 24> 같은 막무가내 B급 액션이 있다. 첩보물의 기원이 된 007 시리즈와 1980년대 말 마초 액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다이하드> 시리즈처럼 규모는 있는데, 몸은 안 따라주고, 모두가 고루하다고 느끼는 액션 프랜차이즈라면? 이들 시리즈의 최근 작은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위기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언제나처럼 의도치 않은 총격전에 휘말린다. 소화기를 굴리고 이를 쏘아 터지게 만들고, 냉장고를 바리케이드 삼으며, 문을 뚫고 들어와 성가시게 총알을 내뿜는 총구는 발로 비틀어버린다. 주변의 소품을 적극 활용하는 맥클레인의 모든 액션은 그의 캐릭터를 반영한다. 그는 본디 소화용 호스에 몸을 묶고 고층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고(1편), 단신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폭파할 정도로(2편) 못 말리게 저돌적이다. 경찰차를 공중에 띄워 헬기에 부딪히게 만드는 것은 그래서 가능하다. CG를 최대한 자제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형사” 맥클레인의 캐릭터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후반부의 다소 허풍 같은 전투기와 대형트럭의 액션보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교통의 진행방향을 신호로 조절할 수 있는 넓은 터널 안 시퀀스. 자동차와 헬기의 충돌을 아날로그로 촬영한 점도 돋보이지만, 터널 속 차량의 방향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악당의 시도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는 장면 설계도 제법 의미심장하다. 디지털 테러의 위협을 보여준다는 명분을 지키면서도, 실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할 수 없어 단순한 그래픽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구식 액션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빠른 속도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양쪽 진영의 자동차의 속도와 박력을 ‘시종일관 (CG로) 그려낼’ 필요는 없다. 전복되며 튀어오른 자동차가 맥클레인 일행을 덮치듯 날아와 반대편에 처박히는 ‘한방’이면 족하다.

대대로 007 시리즈의 오프닝 액션 시퀀스는 제임스 본드의 젠틀함과 각종 신식 장비를 적절히 배합하여 관객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어느 투전판에서 시작하여 고층빌딩 공사현장을 거쳐 테러리스트 조직의 본부까지 이어지는 <007 카지노 로열>의 오프닝은 눈을 뗄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이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파쿠르 고수가 연기하는 상대를 쫓는 본드(대니얼 크레이그)의 추격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날렵하게 장애물을 뛰어넘고 물흐르듯 뜀박질을 이어가는 쫓기는 자와 달리 쫓는 자는 무식하게 벽으로 돌진하고 아슬아슬한 낙하는 종종 삐끗한다. 횡으로 이어지는 숨가쁜 운동을 종으로 변형시키는 건설현장 크레인 위에서의 액션은 프레임 속 공간의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일 뿐 본드의 발걸음은 늘 조금씩 뒤처지는 느낌이다. 제임스 본드가 살인면허를 부여받기 전, 어눌하고 과격한 마음이 앞서는 그의 상태는 그렇게 설명된다. ‘캐릭터 액션 안무’의 전형이다. 아직 007이 되지 못했으니, Q로부터 앙증맞은 신식 무기를 제공받지도 못한다. 앞선 007보다 유난히 주먹다짐을 많이 선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영화에서 이야기와 캐릭터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액션 안무가는, 웬만한 SF영화 속 시각효과 슈퍼바이저만큼 중요하다.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를 강조하는 최근 액션영화의 트렌드와 007 시리즈의 정체성을 함께 간직하기 위한 노력이 시나리오를 넘어 액션 설계까지 미치고 있다. 액션과 캐릭터와 이야기를 연결하는 제작진의 고민은 좀더 치밀해지고, 우리의 주인공은 좀더 부지런하게 뛰어다녀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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