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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걸린 실존, <스파이더>

EBS 11월10일(토) 밤 11시

기차가 역에 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뒤, 아주 천천히 구부정한 남자가 내려선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바로 퇴원한 클레그(랠프 파인즈), 어린 시절의 별명을 따르자면 스파이더다. 재활시설에 들어간 스파이더는 어릴 때 살았던 집 주변을 헤매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메모한다. 그때부터 영화는 30년 전의 어린 스파이더와 현재의 정신분열증적인 스파이더를 오간다. 어른 스파이더는 비극적인 자신의 과거 속에 들어가 어린 스파이더를 바라본다. 아버지는 술집 여자(미란다 리처드슨)와의 외도를 아내(미란다 리처드슨)에게 들키자 아내를 살해한다. 어린 스파이더는 자신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던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힌다. 그들이 외출한 사이, 좁은 방 안에 밧줄을 마치 거미줄처럼 엮으며 어머니의 자리를 대체한 여자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골몰한다. 나는 아버지의 내연녀와 아내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을 실수로 중복해서 쓴 것이 아니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가지 않는가? 오이디푸스의 흔적, 반드시 결말에 잠재되어 있을 반전, 아들 스파이더의 정신분열의 뿌리.

그러므로 이 영화의 반전은 야심차게 계획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반전부터 보고 영화를 시작한다고 해도 <스파이더>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반전을 통해 비밀을 밝히는 영화가 아니라, 아버지의 시간 안에서 점차 자신을 무너뜨리면서도 싸우길 멈출 수 없는 아들의 시간, 혹은 그렇게 해서 자신의 분열된 시공간을 쌓아가는 남자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른 스파이더는 아버지와 겹치고 아버지의 욕망을 욕망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두려움에 떨며 바라본다. 자기만의 거미줄을 엮어내며 과거와, 상실과, 아버지의 세계와 충돌하는 스파이더의 존재는 그럴수록 그 거미줄로 인해 찢긴다. 크로넨버그는 유령처럼 황량한 런던의 거리와 세상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안으로 삼켜지는 스파이더의 언어와 행동을 스며들게 해서 스산한 실존의 풍경을 창조한다. 여기에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는 이제는 너무도 식상해진 오이디푸스의 죄의식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인간 실존의 ‘불안’을 세밀하게 길어내는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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