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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희극과 비극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
정재혁 2007-11-14

범죄의 구성은 성글고 부녀의 눈물은 과하다.

초짜 강도와 프로 강도, 그리고 비리경찰이 한날한시에 은행을 습격한다.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은 절박한 상황에 몰린 한 남자가 궁여지책 끝에 은행을 털기로 하고, 그렇게 들어간 은행에서 여러 인물들과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 간판에 페인트칠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남자 배기로(이문식)는 아픈 딸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신체포기 각서까지 쓰고 돈을 빌리지만 소매치기를 당한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은행강도를 결심한다. 한편 마을금고를 며칠간 탐색하며 털이를 준비해온 강도 일당 만수(박효준)와 우상(정경호)은 같은 날, 배기로보다 조금 늦게 금고에 들어서고, 마을금고의 이사장과 어두운 거래를 하고 있던 비리경찰 구 반장(백윤식)은 금고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문서를 빼내기 위해 금고털이 도라이바(김상호)를 생수배달원으로 변장시켜 투입한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한 공간에 모인 세 무리의 인물들. 박상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뒤섞으며 인간의 희극과 비극을 이야기한다.

하루의 시간, 정해진 공간, 부딪히는 사람들.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의 포인트는 명확하다. 영화라는 무대를 전제로 다양한 인물들을 한데 모아 사건을 충돌시키고 거기서 오는 화학작용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인질과 강도, 경찰과 범인, 사채업자와 피해자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마주한다. 유니세프 친선대사, 불우아동돕기 등을 통해 자신을 포장하는 구 반장은 실제 불우한 기로의 딸과 만나고, 돈을 돌려받기 위해 기로를 쫓던 사채업자 일행은 의도치않게 유괴범이 된다. 인물들의 동기가 부족하긴 하지만 상황의 긴박한 전개와 역전이 장르영화로서의 재미를 느끼기에 나쁘진 않다. 하지만 영화는 기로의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몰고 간다. 수술비를 잃어버린 기로는 딸을 업은 채 동물원을 헤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금고 내의 상황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딸의 수술만을 부르짖는다. 특히 사채업자 사무실에 걸려 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문구가 배기로의 상황과 겹치는 엔딩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 부녀의 이야기가 심화되면서 마을금고 내부와 외부의 상황을 연결하는 드라마의 줄기도 빈약해진다. 영화는 딸에 대한 부성, 다양한 인물들의 복잡한 드라마, 여기에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추가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만듦새는 다소 버거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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