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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난니 모레티’ 영화 두편
2001-11-02

<아들의 방> <나의 즐거운 일기>

난니 모레티(48) 감독은 올해 열린 국제영화제들을 통해 가장 뉴스를 많이 탄 인물이다. 칸영화제에서 <아들의 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아 23년만에 조국인 이탈리아에 이 상을 안겨줬고, 곧 이어 베니스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 여파를 타고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그의 영화 두편이 오는 3일과 5일 잇따라 개봉한다. 76년 데뷔한 뒤 파시즘에 반대하고 68세대를 대변하는 등 끊임없이 현실에 대해 발언하면서도 영화형식의 실험과 탐구를 소홀히 하지 않아온 난니 모레티는 지금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작가다. 하지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두편 모두 큰 어려움 없이 대중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형식의 영화다.

아들의 방

특히 아들을 잃은 가족의 슬픔과 치유를 다룬 <아들의 방>(3일 개봉)은 소재나 어법이 익숙하다. 정신상담 의사와 아내, 아들과 딸, 넷은 특별히 부족할 게 없는 모범적인 중상류층 가족이다. 단지 아들이 승부욕이 약해 불만이고, 딸의 남자 친구가 혹시 무례하게 굴지 않을까 조바심 치는 아버지의 모습까지도 행복해 보인다. 어느날 아들이 스쿠버다이빙을 갔다가 사고로 죽는다. 남은 세 식구에게 잔인한 상실감이 각각의 마음에 둥지를 튼다. 모두가 슬프지만 함께 부둥켜 안고 울지 못하고 각자 따로 운다. 서로를 위로하는 데에 실패하고 자꾸만 다툰다.

영화는 그런 풍경을 차분하게 나열한다. 상실감을 실어 나르는 방법이 모레티 자신의 말대로 `단순'하지만, 그게 불러일으키는 파장이 단순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모레티는 한 인터뷰에서 “단순함은 자연스러움이나 즉흥성, 평범감과는 다르다. 상당한 노력과 연구의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대와 무관한 슬픔의 드라마를 선보인 모레티를 두고 평단 일부에서는 `시대의 증언자에서 철학자로' 너무 빨리 늙는다는 비난도 나왔다.

나의 즐거운 이야기

아무래도 모레티의 스타일을 더 잘 보여주는 건 94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나의 즐거운 일기>(5일 개봉)일 듯하다. 모레티가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 독백으로 들려주는 `영상일기'다. 모레티는 극장에 갔다가 “젊을 때 혁명의 정열을 불태웠지만 이제 남은 건 절망뿐”이라며 한탄하는 이탈리아 `후일담' 영화를 보며 몸서리를 친다. 극장을 나오면서 혼자 객기부리듯 하는 말. “너희들은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정의를 외치다가 빛나는 40대를 맞았다.” <헨리:연쇄살인범의 초상>을 본 뒤에는 이 영화를 좋게 평한 평론가를 비난하면서, 그를 찾아가 실컷 창피를 주는 상상을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모레티의 걸음과 생각이 경쾌하지만 어느 순간 우울해져 파졸리니 감독을 떠올린다. 반파시즘의 신념으로 살다간 파졸리니가 살해된 장소를 찾아갈 때 영화는 잠시동안 은근히 숙연해지기도 한다.

세상보는 눈이 깊은 친구, 뻔한 주제를 놓고 혼자 흥분해 웅변해대는 일이 없는 친구, 냉소적이지만 약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려는 친구를 만나서 유쾌하게 수다 떠는 기분으로 보게되는 영화다. 마지막 대목에서 임파선암에 시달리던 그가 “의사들 말 너무 믿지 마라, 그리고 아침 공복에 물한잔을 꼭 마시는 게 좋다”는 말을 들려줄 때는 그 친구가 이제 건강 걱정을 해야할 나이가 됐구나 싶어 목이 칼칼해진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