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설 연휴 강추 TV영화] 방콕이 좋아? TV를 켜봐

설연휴 즐길 만한 TV 영화 추천작

이 시대를 위무하는 착한 가족영화

설 특선영화2 <가족의 탄생> 2월7일(목) 밤 12시15분 | KBS2 | 감독 김태용 | 출연 문소리, 엄태웅, 고두심

이 영화의 등장에 모두들 열광했다. 신파에 호소하지도 않고, 분노나 증오에 휩싸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쿨한 척(하지만 도대체 쿨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쿨한 사랑, 쿨한 관계, 쿨한 가족…)하지도 않으면서 관계의 결을 주의 깊게 파고드는 가족영화가 나왔다! 부계 혈연이 아니라 여성들로 연대하는 가족의 형상 앞에서 아마도 사람들은 가족의 폭력성에 시달린 자신들의 상처를 어루만졌을 것이다. 혹은 한 핏줄이라는 무거운 운명에 짓눌려 점점 메말라가는 그와 그녀와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를 떠올렸을 것이다. 타자와의 낯설고 불편한 맨몸의 부딪침에서 그 맨몸을 부비며 이루어낸 타자와의 아름다운 동거. 이 영화의 착한 태도는 너무 많은 가족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작 가족을 갖지 못하는 이 시대의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혹시 가족의 외피를 ‘착하게’ 바꿔 입은 신(新) 가족 낭만주의가 아닐까?

이미 다 알고 있을 세개의 에피소드. 첫 번째 이야기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미라(문소리)에게 소식이 끊겼던 남동생 형철(엄태웅)이 찾아온다. 문제는 그가 스무살 연상의 무신(고두심)을 데려왔다는 것. 심지어 무신의 전남편의 전처가 낳은 여자아이까지 그 집으로 찾아온다. 사태가 무거워지자 형철은 비겁하게 도망을 가고 남겨진 무신 역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관광 통역을 하며 혼자 사는 선경(공효진)은 아버지가 아닌 남자와 연애를 하며 자식까지 둔 엄마(김혜옥)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엄마가 병으로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못한다. 마침내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약 20년이 훌쩍 흘러 위의 두 이야기가 겹치는데, 여기서는 경석(봉태규)과 채연(정유미) 커플을 중심에 둔다. 흥미로운 건 경석이 선경의 배다른 동생이고 채연은 무신이 데려왔던 그 여자아이라는 사실. 이 영화가 자못 낭만적으로 비쳐지는 건, 바로 이 건너뛴 20년의 시간 때문이다.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차라리 미움으로 얽힌 이 낯선 타인들이 서로를 보듬어 안는 가족이 되기까지의 지난한 갈등과 시련의 시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말하자면 이 새로운 가족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가. 그 시간을 말하지 않을 때, 영화는 아름다운 가족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에서 그치고 만다. 영화의 결말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족의 결과는 탐날 만하지만, 관계의 윤리는 구질구질한 순간들을 온전히 거치고 여전히 곁에 둘 때 진정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조폭 가장, 정말 연민해야 할까?

설 특선대작1 <우아한 세계> 2월8일(금) 밤 11시5분 | KBS2 | 감독 한재림 | 출연 송강호, 박지영, 오달수

10년 이상을 깡패로 살아온 인구(송강호). 이제 그의 나이도 어느덧 마흔을 넘었고 그의 ‘깡패짓’을 견디며 한편으로는 그 돈으로 먹고살아온 아내(박지영)는 남편이 조폭 생활을 그만두길 원한다. 아버지가 폭력으로 번 돈으로 아들은 유학을 간 상태이며, 세상 물정을 다 아는 십대 딸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 수도 없이 때리고 맞아가며 가족을 부양했건만 인구에게 남은 건 늙어버린 몸과 가족의 냉대. 인구는 마지막으로 한밑천 잡아 이 비루한 생활을 그만두려는 결심을 하지만, 시작은 마음대로 해도 끝은 마음대로 낼 수 없는 것이 그쪽 세계의 원리다. 이 고독하고 피로한 중년 깡패에게도 삶의 선택지라는 것이, 지금과는 다른 미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고도 결국 홀로 남는 불쌍한 가장을 연민했다. 영화는 그가 살아가는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아도 막다른 순간, 막다른 선택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조폭을 미화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면서 그 극단적인 삶의 방식을 가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피로한 인간들의 이야기로 공감대를 확장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 방해되는 모든 이들에게 거리낌없는 폭력을 행사한 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씁쓸하게 인정하며 이것이 밥벌이의 비애라고 변명한다면,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얼마나 수많은 무고한 자들의 밥벌이를 부수고 뒤엎고 죽였는가. 밥벌이의 비애는, 살아남는다는 것의 위대함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스무살 엄마, 딸과 만나다

설 특선영화 <인어공주> 2월7일(목) 밤 10시40분 | EBS | 감독 박흥식 | 출연 전도연, 고두심, 박해일

아들이 아버지의 무거운 그늘을 증오하다가 어느새 아버지의 자리에 서게 되듯이,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 어느새 또 한명의 엄마가 되어버린다. 결국 뿌리를 끊지 못하고 그 굴레를 반복하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는 마치 그것이 아무리 부정해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필연적 순리라는 듯 재생산된다. 이제는 부모-자식 관계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증오와 연민과 눈물에 호소하는 이야기들은 신파적인 하나의 장르로서 그 관계를 좀더 극적으로 반복 소모하는 법을 터득할 뿐이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질기고 희생적인 엄마를 보며 치떨리는 애증에 자신을 버리고 엄마를 버리고 결국 모녀관계를 체념한 뒤 긴 연민과 후회로 눈물짓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모진 세월을 견딘 엄마가 딸에게 이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혹은 지나간 시간을 향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딸이 엄마의 과거로 직접 돌아가게 한다. 그렇게 해서 마주친 스무살의 엄마 연순(전도연)과 그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딸 나영(전도연). 엄마의 역사와 딸의 역사가 겹쳐지며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둘의 상처가 비로소 소통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당신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당신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며 나의 뿌리를 제대로 다시 키우는 것. 이 영화는 건강하다.

여성에겐 허락되지 않은 축제

설 특선 아시아 영화2 <오프 사이드> 2월7일(목) 오후 3시30분 | KBS1 | 감독 자파르 파나히 | 출연 시마 모바락 샤히, 케이라바디 마샤디, 골나즈 파미니

촬영 당일은 실제 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르는 바레인 대 이란의 경기가 벌어지던 날이었다. 자파르 파나히는 온 나라를 흥분으로 몰아넣는 이 축제의 날, 그 축제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카메라를 맞춘다. 이란의 여성들은 경기장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다. 영화는 축구를 사랑하는 소녀들이 남장을 감행하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위태롭고 절박한 상황을 꽤나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 나자, 이들은 군인들에게 이끌려 경기장 밖 울타리에 갇히는데, 이때부터 영화의 관심은 경기장 안이 아니라 경기장 밖에 고립되어 선수도, 응원자도 되지 못한 여자들에게 집중된다. 소녀들은 두눈을 반짝이며 경기장 안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와 경기진행 상황에 귀를 기울인다. 영화는 답답하고 지루할 만큼 경기장 밖에 머물며 오직 경기장 안의 소리에만 의지한 채 소녀들의 심정을 공유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실제 경기에서 이란이 승리했고, 어디론가 이송되던 소녀들은 거리로 몰려나온 인파들의 너그러움 속에 자연스레 뒤섞여 마침내 축제의 일원이 된다. 월드컵이라는 ‘신’은 역시 순간적인 화합을 도모하는 데 천부적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서클>에 비해 이란 여성의 현실에 대해 한결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기운을 내재하고 있지만, 월드컵이 끝나면 소녀들은 다시 송곳 같은 현실로 돌아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괜찮아, 당신은 무너지지 않을 테니

설 특선 KBS독립영화관2 <괜찮아, 울지마> 2월7일(목) 새벽 1시 | KBS1 | 감독 민병훈 | 출연 무하마드 라히모프

민병훈 감독이 우여곡절 끝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완성한 일명 ‘두려움에 관한 삼부작’ 중 하나이다(순서상 <벌이 날다>(1998)와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 사이). 다른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자신의 화두를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풀어내기보다는 현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듯한 태도로, 고요한 우화적 감성을 통해 풀어낸다. 모스크바에서 도박으로 큰 빚을 진 무하마드는 빚을 갚기 위해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다. 허풍쟁이 무하마드는 성공한 바이올린 연주자 행세를 하며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닌다. 단조로운 고향의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집을 팔고 도시로 이사하자고 사정한다. 하지만 이미 지혜로운 두 어른은 무하마드의 거짓말을 알고 있으며, 직접적인 충고 대신 그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다. 자신의 잘못과 죄의식을 더이상 피할 길이 없음을 깨닫고 그 순간을 대면해야 할 때만큼 인간을 두렵게 만드는 건 없다. 무하마드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다시 자신의 두려움을 피해, 그렇지만 끝없이 펼쳐진 두려움의 길을 향해 고향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뒤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을 지켜본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 그렇지만 괜찮아, 울지마. 당신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삶은 쉽게 부서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