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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향기, <댈러웨이 부인>

KBS 2월24일(일) 밤 12시50분

아마도 감독은 원작에 밴 버지니아 울프의 향기를 최대한 그대로 영상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줄거리는 물론, 인물들의 대사, 어느 한순간에 대한 묘사까지 영화는 원작의 숨결을 따르고자 한다. 내용에 별다른 재해석이 없다면 울프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어떻게 재현되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감독은 별다른 야심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간명하고 소박하게 과거와 현재를 계속 교차시키는 방식과 댈러웨이 부인의 독백 내레이션을 통해 자유롭게 흩어지는 심리적 흐름을 드러낸다. 과거 젊은 시절의 추억과 노년의 현재가 파티를 매개로 서로에게 스며들며 파릇한 청춘들의 사랑, 우정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의 쓸쓸한 현재 속에서 되살아난다. 여기에 원작에도 존재하는 셉티머스의 우울하고 비극적인 삶이 병렬적으로 배치되다가 파티의 끝에 이르러 클라리사의 내면과 만난다. 셉티머스는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이를테면 전쟁 후유증과 실업이 만연한 상황을 환기시키는 인물이지만, 영화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고 그의 죽음 자체에 있다. 상류사회의 우아한 부인, 클라리사는 노년의 파티가 주는 삶의 쓸쓸함에 사로잡혀 있다가 어느 젊은이의 죽음을 풍문으로 듣고 생각에 잠긴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뭘까.’ 그녀는 곧 그의 죽음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댈러웨이 하원의원의 부인 클라리사가 파티를 열고 끝날 때까지의 하루를 담은 원작은 클라리사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로 퍼져가는 일종의 무한한 정신 여행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그걸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클라리사의 내적 독백과 플래시백은 울프의 섬세한 문체, 원작 속 클라리사의 기이하고 고독한 세계를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단정하게 제한된 느낌이다. 혹은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경계가 교과서적으로 정리된 것처럼 보여서 그녀의 정신 여행도, 그녀의 깨달음도 그저 어느 부잣집 여인의 낭만적인 고뇌 정도로 느껴진다.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상기하며 장면을 뜯어보는 재미가 종종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작품 자체로서만 본다면 마린 고리스의 <댈러웨이 부인>은 어딘지 올이 풀려 있다. <디 아워스>의 감동을 간직한 이들에게라면 더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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