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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의 CF] 윤은혜와 냉장고? 잘못된 만남!

예상 밖의 모델을 내세워 오히려 역효과를 낸 지펠CF

CF를 구분하는 기준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아이디어에 기댄 CF랑 모델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CF로 건방지게 구분할 수도 있겠다. 후자의 경우 제품의 메시지나 이미지를 모델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델과의 충돌을 통해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할 수도 있고, 모델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이미지를 강하게 구축할 수도 있다.

하이마트 CF

지펠 CF

최근 CF계는 대대적인 모델 물갈이 작업에 들어갔나보다. 이영애가 몇년간 여신의 카리스마를 굳건히 하며 지켜냈던 ‘휘센’을 려원-이선균에게 물려주었고, 모델을 전혀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던 ‘하이마트’도 현영-정준호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진 CF를 선보였다.

새봄맞이 대청소처럼 새로운 모델들에 대한 시도는 나빠 보이지 않는다. 워낙 모델과 강력한 연관고리를 갖고 있던 브랜드들이라 일견 모험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얼굴로 변화하려는 시도는 브랜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니 말이다. 현영의 비음 가득한 노랫소리도 솔직히 질릴 때가 되었으니 ‘하이마트’는 적절한 교체시기를 골랐고, ‘휘센’은 모델 이영애가 가지는 고상함에서 벗어나 좀더 젊고 감각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꽤나 성공적인 모델 교체로 생각된다. 젊은 부부로 분한 려원의 깨끗하고 상큼한 매력과 이선균의 젠틀한 이미지가 이제까지 유지해온 브랜드 이미지에 잘 어울리면서도 나름 신선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선균의 듣기만 해도 임신할 것 같은 목소리에 부가점을 더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 이런 시도는 매번 성공적인 것은 아니어서 이제는 익숙해질 때가 되었음에도 새 모델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CF들도 있다. 히트한 드라마와 부단한 노력 덕에 잘나가는 CF모델로 급부상한 윤은혜가 자신의 이미지를 백분 활용한 이런저런 소녀다운 광고들에 얼굴을 내민 것은 예상한 결과였다. 그러나 치열한 가전CF 시장의 대표 격인 ‘지펠’의 모델까지 꿰어찬 것은 정말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오랜 기간 김남주를 내세웠다 잠시 차인표로 바꿨다가 이래저래 모델 방황을 많이 하며 ‘디오스’의 고현정을 누를 만한 모델을 고민했을 ‘지펠’로서는 아마도 젊고 발랄하고 통통 튀는 신세대 주부들을 겨냥한 과감한 선택이었으리라.

그 결과는? 글쎄요. 별다른 기교없이 15초 동안 모델이 나와서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는 이번 CF에는 반 이상 모델의 이미지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윤은혜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냉장고와는 은하계만큼의 거리를 갖고 있더란 얘기다. 그게 또 근데 묘한 충돌을 거치면서 재미를 주는 것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듯하고. 모델 윤은혜의 실제 성격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가 가진 이미지만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냉장고가 수분을 지켜주는지 아닌지를 따져보라고 아무리 귀여운 눈망울을 굴리며 이야기해도 별로 먹히지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감각이나 젊은 디자인을 가지고 얘기했다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냉장고라는 가전시장의 타깃층과 비교해서 윤은혜의 이미지상 연령대가 너무 낮아 ‘살림도 안 해봤을 텐데…’라는 생각도 스쳐가고, 무엇보다 왠지 ‘윤은혜와 냉장고’라고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장면은 나에게 있어 다음과 같다. 오랜만에 의욕에 불타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서 냉장고에 쟁여넣었다가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문득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저기 한구석 이상한 비닐을 발견한다. 이미 야채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이래저래 싹이 나버린 국물 떨어지는 비닐! 코를 쥐고 그걸 쓰레기통으로 날려버리는 윤은혜의 모습이 그것이다(이건 나의 오랜 자취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또 한번 고백한다). 그러니 어른스런 옷을 차려입고 냉장고에 기대서 발음에 유의하며 또박또박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려 애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쩝.

브랜드의 타깃이나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예상 밖의 모델을 선택할 때는 그 ‘예상 밖’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여 의외의 반향을 불러올 수 있어야 한다. 윤은혜와 ‘지펠’은 어색한 만남이었고, 그 어색함을 그대로 어색하게 놔두었다. 이건 하하와 정형돈이 어색해서 더 재미있는 버라이어티 <무한도전>도 아니고 말이에요. 기왕 파격적 모델 전략을 세웠다면 그 파격을 반전으로 활용하는 더 재미있는 CF가 나올 법도 했는데 아쉽다. 그렇다면 경쟁사와도 확실하게 차별화되었을 테고, 새봄 모델 물갈이 전쟁에서 확실한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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