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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움의 정신이 엿보이는 신작 <비 카인드 리와인드>를 연출한 미셸 공드리 감독

<비 카인드 리와인드>

“나만의 몽골피에 기구(氣球)를 만드는 발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샹젤리제에 있는 한 호텔의 로비, 시간은 밤 9시. 미셸 공드리는 피곤해 보인다. 그래도 그는 쉬지 않고 말한다. 그러다 결국 얘기가 처음 시작됐던 지점, 그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오는데… 어찌보면 이는 지극히 논리적이다. 공드리 감독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성장을 집요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뉴욕에 자리잡은 프랑스인 감독 미셸 공드리는 현재 가장 독특한 감독 중 하나다. <휴먼 네이쳐>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비 카인드 리와인드>. 네 작품은 공드리의 환상과 유머와 노스탤지어를 한꺼번에 섞어 만든 그 특유의 칵테일이다. 공드리 감독의 영상 이미지에는 여러 개의 대형 나사못이 박힌 듯하다. 마치 정밀한 비밀시계와 수십여개의 톱니바퀴 장치, 기이한 도르래 장치 등에 연결된 듯이 장면장면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그의 영화가 관객의 눈앞에서 조립식 장난감 레고마냥 하나하나 조립되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 공드리 감독의 영화를 보는 내내 몇몇 동료평론가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지점이다. 하지만 오히려 내게는 그 점이 더욱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그 희귀한 별에서 훌쩍 튕겨져 나온 어린왕자 같은 공드리 감독을 만나보고 싶었다.

공드리 감독은 한 록뮤직 그룹의 드러머로 데뷔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여자애들을 꼬이기 위해서’였다고…. 그의 초기 작품은 자신이 만든 노래에 영상효과로 넣은 짤막한 애니메이션 비디오들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공드리는 여전히 창의성 넘치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비욕과의 공동작업 말고도 그는 롤링 스톤스, 카일리 미노그, 다프트 펑크, 폴 매카트니, 화이트 스트라입스 등 수많은 가수들의 비디오 클립을 만들었다. 공드리는 가수들을 절대로 영웅화시키지 않는 데 유의한다고 내게 누누이 강조한다. 그건 다시 말하면 공드리와 작업하는 스타들은 그들이 다시 인간적으로 되돌아오는 걸 수긍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공드리 감독의 이러한 ‘보통 사람’적 취향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의 최근작 <비 카인드 리와인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전기발전소를 파괴하려다 수천 볼트의 전기를 흡수하는 기괴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석인간이 된 이 남자는 친구가 일하는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가 거기 있던 테이프들을 깡그리 지워버리는 웃지 못할 사고를 일으킨다. 그러자 두 친구는 지워진 영화들을 직접 다시 제작하기로 한다. 둘은 <러시아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고스트 버스터즈> 같은 영화의 새 버전을 그럭저럭 만들게 되는데, 놀라운 건 대여점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이들이 만든 영화를 계속 찾는 게 아닌가! 유머와 비극이 섞인 형태의 이 영화에서 나는 공드리 감독 특유의 그 ‘지움’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공드리는 “영화를 모조리 지워버리고 제로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는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영화가 그렇게 복잡한 예술이 아니었던 맥 세네트 시절, 아침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가 저녁에 완성된 영화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로 돌아갈 겁니다. 당신을 최상의 위치까지 올려다줄 어떤 시스템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뭐든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 자체가 저는 좋습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공드리 감독이 하는 말을 듣다보니 나는 이 ‘지움’의 정신이야말로 90년대 신세대 한국영화를 만들었던 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상수, 김기덕, 류승완 같은 예술가에게는 각기 나름의 독특한 시스템을 창조하기 위해 70, 80년대를 모조리 지워버린다는 저력이 있었다. 초보자들이 앞서간 이들의 지혜를 통해 발전할 수도 물론 있다. 하지만 제로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앞서간 사람들을 단번에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건방지기까지 한 야망의 순수함만으로도 또한 성공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흔히 생각하듯, 젊다고 해서 윗사람의 조언을 굳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영화란 과연 악동(惡童)들의 예술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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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