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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눈으로 바라본 야만의 시대 <고야의 유령>
최하나 2008-04-02

고야의 눈으로 바라본 야만의 시대

프랑스 혁명의 열기와 종교재판의 광풍이 맞부딪치던 18세기 후반 스페인, 궁중화가인 고야(스텔란 스카스가드)의 모델이자 뮤즈인 이네스(내털리 포트먼)는 식당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소에 끌려가고, 가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자신이 비밀 유대교도임을 거짓 실토한다. 이네스의 아버지는 종교재판을 진두지휘하던 로렌조 신부(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똑같은 고문을 가해 신성모독의 자백을 받아낸다. 투옥된 이네스를 찾아간 로렌조는 욕망에 휩싸여 그녀를 겁탈하지만, 신성모독의 자백이 들통나자 도주 길에 오른다. 밀로스 포먼(<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과 각본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프라하의 봄>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가 함께 시나리오를 쓴 <고야의 유령>은 고야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야를 제3의 관찰자로 배치한 영화는 당대의 비극과 아이러니를 허구의 두 주인공을 통해 극대화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야의 그림으로 대변하려 한다. 부패한 성직자들의 얼굴 위로 통렬한 풍자 판화인 <변덕> 연작이 지나가고, 나폴레옹의 침공과 잇단 전쟁의 포화는 <전쟁의 참사> 연작, <1808년 5월3일>과 오버랩된다. 화폭을 통해 비명을 지르는 듯 강렬한 고야의 작품들은 짐승 우리 같은 지하 감옥과 호화로운 궁정의 풍경을 충실하게 재현한 영화의 프로덕션디자인과 맞물리면서 역사의 순간을 소환해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빼어난 화폭과 맞물리는 것은 과도한 우연으로 점철된 멜로드라마다. 하비에르 바르뎀과 내털리 포트먼은 제 몫을 다하지만, <고야의 유령>은 두 허구의 인물이 그리는 드라마보다는 종종 시선을 압도하는 고야의 작품들이 더욱 뇌리에 깊게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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