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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인생은 즐겁다. 언제 뒤집어질 지 모르니까.”

케이블 채널 OCN에서 방영되는 코미디 <전투의 매너> <음란한 사회> 연출한 장항준 감독

2003년 <불어라 봄바람>을 내놓은 이후 장항준 감독은 계속 수면 아래 있었다. 그가 준비해온 <꿈의 시작>과 <메이드 인 홍콩>이라는 대작 프로젝트는 촬영을 코앞에 둔 시점에 운 없게도 좌절의 호수 속으로 빠져들었다. <라이터를 켜라> 같은 연출작이나 <북경반점> <귀신이 산다> 같은 시나리오를 통해 독특한 코미디 세계를 구축해온 그에 대한 궁금증이 치솟아 오를 무렵, 그는 영화를 들고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편을. 그가 만든 <전투의 매너>와 <음란한 사회>는 케이블 채널 OCN이 주최하는 ‘무비배틀’에서 김정우 감독이 만든 두편의 영화와 격돌을 벌이게 된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여자와 가전제품 대리점 직원인 남자의 연애담을 그린 <전투의 매너>는 4월17일 극장에서, 인생에서 쓴맛을 본 세 남자가 성인용품을 팔면서 희망을 찾게 된다는 <음란한 사회>는 4월25일 OCN에서 각각 김정우 감독의 <색다른 동거> <성 발렌타인>과 맞붙는다. 감독님, 컨디션 조절과 체중 감량은 잘되고 있습니까?

-김정우 감독과 곧 대결을 벌인다. 이길 자신은 있나. =아니, 나는 이 기획이 불만스럽다. 난 일생을 누군가와 싸우거나 대결해본 적 없는 사람이다. 나는 반전주의자이고 평화주의자다. 길을 가다 시비가 붙어도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영화로 대결을 한다니. 처음에는 기분이 안 좋았다. 그냥 내 영화를 열심히 만들려 노력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마케팅 차원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대결을 어떤 감독이 좋아하겠냐. 우리가 레슬러도 아닌데. (웃음)

-그래도 지는 건 싫지 않나. =져도 좋고 이겨도 좋다. 그런 것을 떠나서 영화가 그저 영화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게 좀 껄끄럽다.

-그런데 어떻게 참여하기로 결정했나. =처음에는 대결하는 게 아니었다. 애초의 컨셉은 케이블TV영화를 신인급이 아닌 기성감독이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말이 달라졌다. 일단 붙들어놓고 조금씩 돈이 궁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조금씩 요구하더라. (웃음)

-이 프로젝트를 맡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충무로에서 영화를 계속 해볼 생각이었다. 영화가 방송과 만나서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 이런 건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충무로가 어렵지 않았으면 왜 딴 데를 기웃거렸겠나. (웃음) 그래서 마누라가 버는 돈에 기대서 버텨보려고(웃음) 세번 정도 거절했다. 그런데 제작사인 더 드림픽쳐스의 이민호 대표가 계속 제의를 해왔고, 미리 받아놓은 돈도 있고 해서 거절을 못했다. 아무래도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영화니까 도중에 엎어질 리도 없고, 일반적인 상업영화보다 제약이 덜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예상대로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나. =그렇지 않았다. 특히 노출신 때문에 마찰이 많았다. 나는 죽어도 못하겠다는 쪽이었고, OCN은 당연히 노출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충무로에서 장편영화 2편을 연출하면서 나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처음으로 간섭이란 것을 받은 거다. 어쩌면 준비기간과 촬영기간이 짧았고,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는 점보다 힘들었던 점은 그런 간섭이었다.

-어떤 간섭이 있었기에. =<전투의 매너>에는 시나리오 초고에 야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못하겠다고 했다. 이민호 대표는 OCN의 입장이 있으니까 최대한 조율해보자며 이런저런 요구를 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하고 나름의 컨셉을 잡았다. 어차피 남녀가 사랑하고 동거하는 이야기니까 키스신을 리얼하게 한다고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노출 연기 때문에 망설이는 서유정씨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그런 컨셉을 확실하게 설명해줬기 때문이다.

-노출을 왜 꺼렸나. =불손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위해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노출신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솔직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집어넣는 것이잖나. 물론 조연배우의 가슴 노출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케이블TV영화치고는 노출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장면을 찍을 때도 나는 모니터를 보는 것조차 민망해 촬영감독에게 알아서 찍어달라면서 떠넘겼다.

-두편을 동시에 작업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지난해 8월부터 작업했는데 <전투의 매너>는 12월 말부터 보름 동안 11회차 만에 찍었고, <음란한 사회>는 올해 2월부터 14일 만에 9회차에 걸쳐 찍었다. 보름 동안 11회차를 찍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영화 두편과 김정우 감독 영화 두편, 모두 4편의 스탭이 연출부를 빼면 모두 같은 팀이었다는 거다. 그들은 한 작품을 촬영하다가 쉬는 날이면 다음 작품의 확정헌팅을 가야 했다.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내 작품에 좀더 신경을 많이 쏟도록 스탭들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쪽이 좋은 작품이고 저쪽은 대충 해도 된다고. (웃음)

-제작비와 시간 제약으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나. =제작비는 작품당 2억5천만원이었다. 일반 영화에 비해 굉장히 적은 보수를 줬는데도 인건비와 촬영에 필요한 최소비용을 빼고나면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한번은 엑스트라를 동원해야 했는데, 조감독이 몇명을 부르냐고 묻더라. 나는 ‘일단 10명을 부르고 네 친구들과 내 후배까지 해서 30명 정도를 부르자’고 말했다. 얼마 뒤 조감독이 오더니 7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중 3명은 돈을 줄 수 있지만 나머지는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나중에는 엑스트라로 아내와 후배들을 동원했다. 조감독은 어머니와 형까지 불렀을 정도다. 거리장면은 카메라를 숨겨서 도둑촬영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허락을 받고 찍으려면 장소 사용료를 내야 하니까. <음란한 사회>에서의 추격장면은 스테디캠으로 찍어야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욕심을 내서 밤샘촬영도 할 수 없었다. 스케줄이 빡빡해서 그 다음날에도 촬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척 힘든 작업이었는데 얻은 것도 있었나. =감독으로서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을 해야 했다. 한명씩 차례로 와서 ‘이건 안 된답니다’, ‘저건 불가능하고요’라는 말을 전했고, 그때마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살수차를 한번 부르고 싶었는데 그것도 안 됐다. 살수차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싶더라. 그러다보니 예전에 너무 방만하게 찍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앞으로는 조금씩 허리띠를 졸라매고, 프리 프로덕션도 확실하게 해서 짧은 기간 동안 집중력있게 영화를 찍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투의 매너>보다는 <음란한 사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장항준 감독에게 훨씬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전투의 매너>는 다소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인데다 TV단막극 같았다. =<전투의 매너>는 이야기로선 다른 상업영화에 비해 특출난 점이 없다. 다만 그 안에서 조금은 아기자기한 맛을 찾아보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멜로드라마는 <한나와 그 자매들>인데, 처제와 사랑에 빠진 남자가 마누라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처제에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결국 처제와 잠을 잔 뒤 마누라에게 걸릴까 두려워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사랑의 많은 부분은 결국 욕정 아닌가. 이 영화는 그에 비하면 좀 예쁜 것을 보여주고 무난한 이야기 안에서 재미를 찾자는 쪽이었다. 두편을 동시에 만들어야 하는데 한편이라도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에 비해 <음란한 사회>는 장항준 감독 특유의 아웃사이더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애초 시나리오는 성을 상품화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하겠다고 한 것은 인생막장에 이른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싸워 희망을 갖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완전히 바꿨는데, 이를테면 <풀 몬티> 같은 영화가 모델이었다. 내 꿈은 이 영화를 들고 선댄스영화제에 가는 거다.

-<음란한 사회>에 더 애정이 있는 듯한데, 왜 <전투의 매너>를 극장에 개봉하게 됐나. =애정이 있는 것은 맞다. 나도 <음란한 사회>를 극장에 걸고 싶었는데 제작 일정을 맞출 수 없어서 그렇게 됐다. 예정보다 늦게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전투의 매너>가 내 영화가 아니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조금 섭섭했던 것은 두 영화 모두 당신의 코미디적 감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 같은 ‘희극인’ 출신들은 자꾸 웃기려는 본성이 있는데, 이번에는 웃음이 배우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면 일부러 시키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의 의도가 들어가게 되면 오히려 작품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이전에 쓰거나 연출한 코미디에 대한 반성인가. =예전에는 내 생각과 내 느낌이 확고했다. <불어라 봄바람> 때는 우디 앨런식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게 시네마서비스가 가진 기운과 뒤섞이면서 조금 이상해진 것 같다.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힘이 들어가게 됐다. 배우들을 광대로 만들었던 것 같고. 나이 먹어서 그런지 자연스러운 게 좋고, 사람들도 그런 것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 작위적인 상황보다는 재미있는 상황에 사람들을 몰아놓고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오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과거에는 배우에게 내가 원하는 표정을 강요한 적도 많았다.

-이 두 작품이 새로운 코미디를 위한 도약대가 될 수도 있겠다. =사실 <불어라 봄바람> 같은 작업을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희극인 근성은 쉽게 버릴 수가 없으니까. (웃음) 리얼리티라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제하면 좀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홍상수 감독 스타일의 유머를 좋아하는데 그동안은 좋아하는 영화와 만드는 영화의 연출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사실 <라이터를 켜라>는 방관하는 군중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었고, <불어라 봄바람>도 내 딴에는 타락한 먹물들을 좀 까고 싶었다. 두편 다 의미는 거창하게 부여한 셈이다. 그런데 ‘나까’로 찍었으니까…. 영화에 미안하고, 같이 작업했던 스탭, 배우에게도 미안하다.

-<음란한 사회>에서 인상적인 것은 아주 화려한 카메오들이다. =술자리에 앉아 있던 학원 강사들은 김상진, 장규성 감독과 이관수 프로듀서, 설경구씨 매니저를 했던 방경일씨다. 조근식 감독도 다른 장면에 나온다. 그렇게 모신 가장 큰 이유는 엑스트라에게 줄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연기를 좀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상진 감독에게는 연기를 많이 시켰더라. =이 영화로 김상진 감독님은 배우의 꿈을 실현했다. (웃음) 사실 연기는 상당히 어색한데, 그게 죽 일관되니까 캐릭터가 잡히는 거다. (웃음) 촬영날 상진이 형은 대사를 달달 외워서 왔는데 장규성 감독이 왜 자기는 대사가 없냐고 불평하더라. 그래서 ‘상진이 형, 대사 좀 나눠주면 안 될까’ 하고 물었더니 ‘왜 내 대사를 쟤가 가져가?’라며 거부하더라. (웃음) 아니 연기를 잘하면서 대사를 달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나중에 편집할 때 보니 쓸 장면이 없더라. 그래서 두 사람에게 ‘나중에 내가 당신들 영화에 출연해 망쳐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웃음)

-그러고 보니 본인 스스로도 이 두편에 출연했고,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도 김민희가 연기한 시나리오작가를 볶는 감독으로 출연하지 않았나. =이 영화에서는 엑스트라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고, <뜨거운 것이 좋아>의 그 역할은 원래 정인기 선배가 하기로 했던 거다. 인기 형은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그런데 권칠인 감독이 누군가의 추천을 받았다면서 한번 보자고 하더니 느낌이 좋다면서 출연하라고 했다. 영화로는 <비상구는 없다>와 <귀신이 산다>에 이어 세 번째다.

-연기력이 대단하더라. 혹시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볼 생각은 없나. =그거야 권칠인 감독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원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감독 역할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이전에는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연기라는 게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 나이 마흔인데 몇살까지 감독을 할 수 있을까 따져보면 딱 5년만 더 하면 많이 하는 거겠더라. 그러면 뭘로 먹고살지를 고민하는데 노후를 대비하는 차원에서(웃음) 연기를 조금씩이나마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2년 전 딸이 태어난 이후 내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준비했는데 잘 안됐다. =<불어라 봄바람> 이후 스위스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이야기 <꿈의 시작>을 준비했는데, 이게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가는 여정을 담는 로드무비이다 보니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다. 50년대가 배경인데, 구형 비행기가 있어야 하고 하네다 공항, 터키, 스위스 축구장 등이 옛 모습으로 나와야 하니 최소 제작비가 90억원쯤 되더라. 어떻게 해서 60억원까지 낮춰보려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그 뒤로는 비루한 인생을 살던 사람이 돈 떼먹은 자를 쫓다가 국제 첩보전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나라를 구하는 이야기인 <메이드 인 홍콩>을 준비했는데, 촬영 시작 한달 전에 투자가 취소됐다. 홍콩 헌팅까지 다 마쳤는데 말이다.

-그럼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우선 <메이드 인 홍콩>을 어떻게 할지 결정내린 뒤 판단할 것이다. 이미 써놓은 시나리오가 하나 있어서 바로 준비에 들어갈 수도 있다.

-요즘에는 누구와 술 마시고 친하게 지내나. =아무래도 두 작품을 같이한 스탭들이다. 그리고 마누라와 아주 친하게 지낸다. 이달 11일이 결혼 10주년인데 갈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함께 사는 사람과 친하다는 것은 정말 축복 아닌가. 그리고 박정우, 장규성, 김상진, 조근식 같은 감독들도 자주 만난다. 그 밖에는 사람들 앞에 안 나서게 되더라. 그래도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충무로 주류 바깥에 오래 있다 보니 스스로가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그럴 수밖에 없다. 배우들을 만나면서도 예전에 느꼈던 시선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런 것 때문에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내가 만들어낸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즐거운 것 아닌가.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것이니까.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진 것 같다. =낙관적이지 않으면 돌아버리잖나. (웃음) 사실은 <음란한 사회>를 찍으면서 희망을 갖게 된 면도 있다.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래, 저런 사람들도 사는데’ 하면서 위안도 받았고, 나 스스로를 향한 대사도 있다. 정말이지, 나는 항상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실제로 잘난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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