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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년 비투스의 이중생활 <비투스>
안현진(LA 통신원) 2008-04-09

천재 소년 비투스의 이중생활

리스트, 모차르트, 쇼팽 그리고 비투스. 모두 피아노 신동이지만, 비투스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수학, 주식투자에도 뛰어난 애늙은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여섯살(파브리지오 볼자니)에 이미 음악적 재능을 드러낸 비투스는 매사에 아이답지 않다. 베이비시터를 여자친구라고 생각하고, 모르는 단어를 들으면 조용히 백과사전을 찾는다. 밝은 미래를 위해 최고를 주려는 부모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초고속 승진 중인 아빠는 늘 바쁘고 엄마는 아이를 피아노 앞에 옭아맨다. 열두살(테오 게오르규)에 일찌감치 초등학교를 월반한 비투스의 행실이 계속해서 삐딱한 것은 이런 ‘영재의 삶’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 유일하게 자신과 소통하는 괴짜 할아버지(브루노 간츠)와 하늘을 나는 꿈을 말하며 나누는 대화 중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사고를 위장해 천재성을 상실한 척 연기할 만큼 절실하다. 부모는 일견 ‘보통 아이’가 된 아들에게 실망하지만 힙합을 듣고 또래와 친구가 된 비투스는 순진하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직장을 포기했던 엄마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아빠는 젊음을 바친 회사에서 구조조정당하는 고비를 겪자, 비투스는 감추고 있던 재능을 부모를 위해 발휘한다.

<비투스>는 스위스에서 2006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으로 출품한 매끈한 상업영화다. 악인이 없는 이야기는 착하고, 아역배우들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비투스를 연기한 파브리지오 볼자니와 테오 게오르규는 실제로 음악 신동들인데, 대역없이 촬영한 장면들은 고사리 같은 손이 건반 위를 뛰노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바흐, 라벨, 슈만 등 클래식을 영화 전체에 흐르게 한 프레디 M. 뮤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1999년부터 시나리오를 쓴 <비투스>를 “음악의 치유와 영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영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애석한 점은 음악영화도, 성장영화도, 천재의 탄생신화라기도 애매한 이 영화의 위치에 있다. 전반적으로 산만한 전개에 반전과 결말은 밋밋하고 적당한 순간에 감동을 강요한다. 베이비시터였던 연상녀를 향한 조숙한 소년의 로맨스는 “섹스는 임의적 DNA 교환”이라는 적나라한 대사 때문에 소름끼치고, 비(飛)행으로 상징되는 자유와 낭만을 위해 비투스가 저지르는 온갖 비(非)행은 달짝지근한 솜사탕처럼 뒷맛이 개운치 않다. 평범한 삶을 향한 해방구로 이중생활을 선택한 천재 소년의 투정보다 정말 평범한 삶은 몇배나 막막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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