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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의 청춘들에 대한 관심 <나의 노래는>

선량지수 ★★★★★ 명랑지수 ★★ 희망지수 ★★★☆

<다섯은 너무 많아>로 독립영화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안슬기 감독이 두 번째 독립장편영화 <나의 노래는>으로 돌아왔다. 구질구질하고 청승맞은 청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질풍노도의 성장기를 다루지는 않는다. 영화는 가난하고 꿈도 없는 소년에서 무기력한 청년 사이를 사는 스무살 희철의 일상을 천천히 따라간다. 이 은근한 시선은 청년이 서서히 뿌리 깊게 삶에 안착하며 스스로의 품 속에 소박하나마 분명한 소망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 이어진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소년을 생활 청년으로 만들면서 영화는 이 나이 또래가 겪는 불투명한 미래에 실현 가능한 실천의 윤리를 제시한다.

할머니는 신앙에 빠져 있고, 아버지는 대책없이 무능한 철부지다. 가난한 살림에 고등학교 졸업 뒤 분식집에서 배달을 하는 스무살 희철(신현호)에겐 꿈이 없다. 목적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음식 배달을 하다 우연히 단편영화를 찍는 영화과 동아리 대학생들의 눈에 띈 희철은 그들이 찍는 영화의 배우로 출연하게 된다. 그러나 구차한 생활엔 변함이 없고, 자신과 다른 처지의 대학생들은 영민하고 이기적이다.

희철은 무기력하다. 이 무기력은 이 나이 또래의 조숙한 아이들이 겪는 세상에 대한 냉소의 결과가 아니다. 빈곤이 성장기 청년들의 꿈마저 거세하는 현실은 참으로 불행하다. 가난과 저교육은 이들의 미래를 차단하는 거대한 장벽이다. 평생 사는 동네를 벗어나기 힘든 빈민가엔 무기력과 방관이 역병처럼 번져 있다. 그에 반해 같은 나이의 대학생들은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다. 꿈으로 포장된 야심을 위해 마음을 팔고 관계를 이용한다. 영화는 그러나 현실의 무자비함에 환멸을 품고 세속적 어른이 되어가는 플롯으로 엮이지 않는다. <나의 노래는>은 영리한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 희철처럼 순박하고 투박하게 거친 질감의 현실을 바라보고 어둠 속에서 더디게 한 걸음씩 내딛는 전략으로 가능한 미래를 암시한다.

순진하고 애매한 표정의 희철에겐 이렇다 할 취미도 기호도 열정도 없다. 다만 고등학생 때 힙합 동아리에서 만든 노래가 그의 가슴속에 한줌의 불잉걸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어둠 속에서 길을 걸으며 “미치지 않아, 삐치지 않아”라는 랩을 수줍게 부르며 미소짓는 것만이 주인공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표정이다. 영화는 이 소박한 표정을 하나의 희망의 좌표로 설정한다. 소년은 가슴에 자신의 노래를 품고, 어둠 속에서 길치가 되지 않기 위해 더딘 걸음을 걷는다.

안슬기 감독의 이러한 관심사는 또 다른 독립영화감독인 노동석(<마이 제너레이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 회색빛의 청춘들에 대한 관심은 이들이 각박한 현실 속에 더 새롭고 생산적인 뿌리를 내리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착한 어른들의 배려로 이어진다. 무기력하게 부유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천천히 그러나 깊은 애정으로 바라보며 이들에게 가능한 미래와 생산적인 노동과 현실을 바라볼 카메라를 준다. 송효정/ 영화평론가

Tip : 전작 <다섯은 너무 많아>처럼 현직 교사인 감독이 겨울방학에 찍어 봄방학에 편집한 살뜰한 영화다. 1500만원의 저렴한 제작비에 총 13회차 촬영으로 완성됐다. <마이 제너레이션>에 사채업자로 등장한 안슬기 감독이 이번엔 카메라 가게 주인으로 깜짝 출연했다. 주인공 신현호는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의 2대 킹카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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