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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소년의 삶, 그 험란함
오정연 2008-05-08

폐막작 <시선 1318> 제작기

<진주는 공부중>

꼴찌와 일등이 동시에 불행하고(<진주는 공부중>), 운동부를 그만두려 해도 “지금은 너무 늦었어”라는 말을 들어야 하며(<유.앤.미>), 의도치 않은 출산으로 인한 아픔도 버거운데 양육권과 학업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릴레이>), 엉망진창 한국사회에서 파생된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는가 하면(<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다르게 생긴 엄마가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달려라 차은>). 대한민국의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험난함을 말하기 위해, 다섯명의 감독이 모였다. 방은진, 전계수, 이현승, 윤성호, 김태용. 실사로 만들어진 네 번째 인권영화프로젝트 <시선 1318>의 감독들이다. ‘청소년 인권’이라는 하나의 키워드가 주어졌다는 것이 예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진주는 공부중>의 현장에서 방은진 감독은 싱글벙글이었다.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마지막, 방준석 음악감독이 만든 곡에 방은진 감독이 가사를 붙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26명의 여학생들은 촬영종료와 함께 다가올 이별을 벌써부터 아쉬워했다. 꼴찌부터 일등까지, “입시지옥으로 향한 문턱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이들의 모습이 싱그럽게 담겼다. “뭐든 그만두고 싶은” 시기,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주인공인 전계수 감독의 <유.앤.미>는 역도유망주 소영과 엄마와 함께 원치않는 호주로의 이민이 예정돼 있는 철구가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그 시기의 불안을 공들여 포착한 대사, 호흡을 고르며 아이들을 지켜보는 순간 흘러나오는 음악 등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공>에 이어 4년만에 또다른 단편영화로 관객을 만나는 이현승 감독은 <릴레이>를 통해 청소년 비혼모 인권을 다룬다. “첫 인권영화 때부터 감독들을 섭외해온 사람으로써, 누구 하나 펑크나면 언제든 투입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이젠 나도 한번 할 때도 됐다 싶었다. (웃음)” 청소년문제에 대한 각종 자료를 검토하던 중, 청소년 비혼모의 대부분은 자퇴를 종용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돈을 주면서 출산을 장려하는 시대에, 사회구성원이 태어난다는 건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인데 우린 그걸 너무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하는 것 같다.” 낙태의 권리, 생명 존중 등 보다 심각한 주제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무겁고 심각하게만 흐르지 않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자기 패러디를 시도하는 문성근, 부산에서의 일정 중에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준 정유미 등이 극중 교사로 카메오 출연했다.

“드라마투르기라면 나보다 잘하는 감독님들이 훨씬 많으시니까 주최측이 나에게 기대한 건 <우익청년 윤성호> 같은 발랄한 몽타쥬라고 생각했다”는 윤성호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하여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를 완성했다. 논바닥에서 죽었다는 여자아이에 대한 괴담을 전하는 아이들의 산만한 수다가 영화의 전부. “그래봤자 우리 중 80%는 한달에 백만원도 못 벌어”, “때리는 건 나쁜 거지만 어찌 보면 그럴 만할 때도 있어. 우리 언니도 나 되게 좋아하는데 가끔 때리거든” 등 한국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화들이다. “오디션에서 만난 배우들, 평범한 청소년들과 수다를 떨면서 들었던 대사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윤성호 감독은 그들의 이름 모두를 시나리오 크레딧에 올렸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속 시은에 이어, 김태용 감독의 소녀는 오늘도 달린다. <달리는 차은>은 육지로 변하는 바다의 쓸쓸한 풍경을 간직한 서해안 새만금 구간, 필리핀에서 온 새엄마를 부끄러워하는 육상소녀 차은이 주인공이다. 김태용 감독이 전국의 육상대회를 직접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실제 육상 유망주 배우의 담백한 표정 등 세심한 캐스팅과 비전문 배우 특유의 풍부한 표현이 눈에 띈다. “동남아 이주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널리 인지됐지만, 다문화 가정이 전체 가정의 20%에 달하는 현실에서 그 안의 청소년들은 막상 인권의 사각지대에 존재함을 알게 됐다”는 김태용 감독은 “특정한 문제를 고발하는 것이 아닌, 영화 속 인물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잘 살았으면 하는 응원의 의미가 더욱 컸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