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스무살, 세상은 내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는 내 거예요”
2001-11-09

대안학교 하자센터 `우주로 통하는 골방` 멤버들, <고양이를 부탁해>를 이야기하다 (2)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 성경 나는 인천 한번도 안 가봤는데 감독이 의도적으로 인천에서 동대문까지 오는 장면을 보여줄 때 인천이라는 공간의 특색을 보여주려고 한 걸 느꼈어요.● 원 인천이라는 공간도 그렇고 내용 자체도 그렇고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틀도 그렇고 암울한 분위기가 많아요.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았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부탁하고 싶고 누가 맡아줬으면 좋겠고 그런 기분에 빠져들게 했어요.● 성경 드라마에 많이 나와서 인천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있어요. 월미도에서 회를 먹고 배타고 갔더니 배가 끊겨서 하룻밤 자고 그런 드라마 많잖아요. 놀이공원도 반짝반짝하고 이런 이미지였는데 <고양이를 부탁해>에선 바람이 세게 불고 서늘해보여서 얘들이 참 험난한 길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서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혜주가 서울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게 보이잖아요. 서울의 ‘삐까번쩍한’ 모습에 뭔가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오는데 막상 찾아간 데가 동대문이에요. 바로 옆에 청계천 있고 두타, 밀리오레, 겉에서 보면 번듯하지만 들어가보면 조그만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옛날 상가 모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에요. 서울이나 인천이나 다 그런 모순된 공간으로 그려놓고 있어요. 난 주인공들이 동대문까지 올 때 서울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울 가서 친구들 보면 사이좋은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서로 틀어지고 말이죠.● 원 근데 저는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자퇴할 때까지 쭉 인천에서만 지냈거든요. 그래서 <고양이를 부탁해>의 뒷배경을 잘 알아요. 아마 인천 애들한테는 2∼3배 보너스 감동이 올 거예요. 문 닫힌 상가에서 뛰는 장면 있잖아요. 그거 보면 개인적인 추억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너무 감동적이에요. 월미도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도 재미있어요. 연인들의 거리라지만 실제로 가보면 되게 혼란스럽거든요. 애들이 가출했다 하면, 월미도 노래방 가보면 다 있어요. 놀이공원도 짜임새 있는 게 아니라 가게마다 바이킹 하나, 디스코텍 하나 가진 식이어서 열 발자국만 걸어도 바이킹이 서너개씩 있어요. 바이킹 사고도 많이 나고. 그런데 입구에 보면 이름은 ‘문화의 거리’라고 써 있어요. 바다도 똥물이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 동동” 그런 노래가 항상 나올 것 같아. 공연을 해도 만날 교회 밴드가 “주께서 어쩌고” 하고 아니면 사물놀이 공연이나 하고. 월미도에 대해 감독이 묘사한 걸 보고 서울에 사는 사람은 ‘파격’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전 ‘맞아, 저거야’ 했어요. 정말 연구 많이 했구나 싶더라고요.

● 오로라 지영이 집이 세트인지 아닌지 궁금했어요. 허섭한 거 같지만 벽지며 내부장식이며 정말 공들여 만든 거 같더라고요.● 원 인천에 대한 비류와 온조 메타포도 재미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천에 관한 향토심을 심어준다고 청록색 노트를 나눠준 적 있는데 거기서 인천이라는 지역에 대한 설화를 알았거든요. 그게 비류와 온조가 고주몽한테 쫓겨난 형제라는 거잖아요. 온조는 서울에서 나라를 세우고 비류는 더 내려갔는데 나라를 세운 데가 인천이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소금기가 많아서 농사도 안 되고 그래서 망했다는. 나참, 그게 인천이 만들어진 설화래요. 경악을 금치 못했던 초등학교 4학년! 그런데 그런 서울과 인천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게 쌍둥이예요. 감독의 메시지와 여러 가지 측면을 보여주는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걔들은 한국사람도 아니고. 재미있던 건 동대문 두타에 가서 처음으로 비류와 온조가 헷갈리는 대목이에요. 서울의 화려한 공간에서, 근대화의 어설픔을 보여주는 곳에서 아이들이 둘을 혼동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성경 전 부산에서 자라서 나중에 서울에 왔는데 혜주가 서울로 가서 증권회사 취직한 뒤 친구들한테 자랑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뭔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갔는데 사실 아무것도 없잖아요, 혜주한테는. 처음 서울에 갈 때 내 심정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셋 다 혼자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상황인데 대학 안 가고 뭘 하려다 보면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밖에 없고 그거 해도 허무하고, 자신을 증명할 서류도 안 나오고 그러잖아. 지영이 보면 텍스타일디자인 하려고 하는데 돈도 없고 막막하고 집에서 지원받을 수도 없고. 얼마 전에 밤늦게 밖에 있는데 옆에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온 적이 있어요. 야생으로 돌아다니는 고양이라 발톱을 안 깎아서 툭 튀어나와 있더라고요. 집에서 기르는 거면 감출 수 있는데 학교 다닐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혼자 살게 되면 발톱을 날카롭게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지영의 모습 같았어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안심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발견하고는 주는 대로 받아먹는 모습은 태희 같더라고요. 그리고 고양이 눈에 눈꺼풀말고 이상한 막 같은 게 있는데 그건 또 혜주 같더라고요. 뭔가 눈앞에 막을 하나 쳐놓고 살아가려고 하는 느낌이.● 원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82년생은 다 개띠라는 사실. 어디서 감독님 인터뷰한 거 보니까 한국사회에서 고양이는 개에 비해 마이너리티라고 했던데 우연히 그렇게 된 건지 모르지만 실제로 영화는 개 다섯 마리가 고양이 한 마리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감독님이 자기가 대중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장난인가 싶기도 하고 무슨 맥락인지 알 거 같기도 해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 고양이가 개가 되지 않고도 잘살 수 있을까. 애들이 지금은 어디론가 떠나는 걸로 끝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싶고.가족사진에서 자기 얼굴 도려내다니, 너무 통쾌했어

인상적인 장면,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떤 것이 있었나.● 성경 난 얘들이 구덩이 팔 때 굴을 파서 집에 들어갈 줄 알았어.● 원 이해를 못했어, 처음엔. 재네들이 뭐하는 거야. 그런데 정말….. 걔들 대단하지 않냐? 그리고 배두나의 연기는 참 괜찮았아요. 몇몇 베스트신 있는데 최고로 경악한 건 만두 먹는 거, 그거 정말 대단한 장면이야. 머리에 헬멧 쓰고 불켜고 책보는 것도. 하나 유감이었던 것은 옥지영은 여자 정우성같이 될 수 있었는데, 되게 고독하게 그리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이영진처럼 카리스마를 내뿜어서 훨씬 많은 팬을 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거야. 그런데 필이 조금 모자라가지고. 솔직히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그렇게 지금까지 마니아가 많은 이유가 뭐겠어. 이영진 때문이잖아. ● 성경 난 배두나가 이따만한 가족사진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아니, ‘저런 한심한’ 하다가 사진을 걸고 비켜서는데 자기 사진 오려놓은 거 보고 너무 통쾌했어.● 원 (흥분, 고조된 목소리로) 맞다. 그게 진짜 베스트다. 만두 취소! 가족사진장면 정말 좋았어. ● 타락 난 뭐 하나 했어. 뭘 가위로 오리기에 쟤 뭐하니, 그랬는데…. 화면에 문자메시지 새겨지는 것도 좋았어요. 시인이 시 받아쓰고 문자 보내고 그러는데 활용한 것도 참신하더라.● 원 처음에 <고양이를 부탁해> 제목이 뜨는데 <벨벳 골드마인> 인트로 필이 나면서 되게 재미있을 거 같더라…. 그러더니 그래, 집, 나가고! ● 성경 마지막에 공항에 있는 장면 있잖아요. 그거 보면서 쟤들 돈을 얼마나 들고 나왔기에 저기 있지 싶더라. ● 지지큐 난 걔들이 반팔 입고 있어서 어디 가는 거지. 남쪽으로 가는 건가? 그랬어요. 분명 겨울이었는데….● 원 꼭 이런 애들 있어요. 영화보면서 긴팔이 반팔 됐네, 스카프가 오른쪽이었는데 왼쪽으로 바뀌었네 하면서. (웃음) 농담이고. 전에 <눈물> 영화사에서 자리를 마련해서 얘기한 적이 있어요. <눈물> 보고 영화를 조목조목 씹어줬어요. “그래 너넨 그런 식으로 살아라. 그런 구덩이에 빠져서” 뭐 그런 식이잖아요. <고양이를 부탁해>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도 했어요. 물론 걔들 비자는 지지리도 안 나올 거고, 어디 동남아라도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 성경 희망적인 메시지가 느껴지는 건 지영이가 분류심사원인지 거기 나오는데 태희가 마중나와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서 느껴져요. ● 오로라 근데 결코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게 마지막에 희망을 가지려고 했어도 그 중간에 불안하고 두렵고 그런 게 있어요. 육교 위에서 난데없이 미친여자가 나타나는 거나 둘이 담배 피울 때 뒤의 단무지공장 아줌마들이 보이는 것 같은, 너무도 불안한 미래인 거죠. 어딜 간다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죠. 혜주 역시 그렇죠. 그게 뭐지, 되게 안 좋은 말?(옆에서 가르쳐주자) 아, 저부가가치 인간. 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끝으로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 중에 누가 제일 걱정되나?● 원 우리가 뭐 남 걱정할 땐가? (웃음) 걔들은 영화 밖에 나오면 배우라 남도 하고 살지….

정리 남동철 namdong@hani.co.kr·김혜리 vermeer@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등장인물 소개● 원 1982년생.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하자센터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등장인물들과 같은 나이라는 점에서 누구보다 할말이 많다.● 지지큐1982년생.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는 아이큐, 이큐, 지지큐”라는 말을 듣는 젊은이.● 성경 1981년생.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하자센터에서 지내고 있다. ● 오로라 열여덟살. 이 친구가 찍은 ‘우주로 통하는 골방’에 걸린 사진들을 보면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 타락 열일곱살. 얼마 전에 자퇴하고 하자센터에 들어왔다. ‘타락’이라는 별명에서 연상하기 불가능한 다소곳한 인상의 소녀.▶ 또래들, <고양이를 부탁해>를 말하다 (1)

▶ 또래들, <고양이를 부탁해>를 말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