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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후일담 혹은 팬서비스 <섹스 앤 더 시티>
안현진(LA 통신원) 2008-06-04

TV시리즈 팬 만족지수 ★★★★ 반전 지수 ☆ 자막 때문에 웃을 확률 지수 ★★★☆

익숙한 음악이 눈보다 귀를 먼저 연다. TV시리즈 <섹스 & 시티>의 테마다. 반가워할 때쯤이면 멜로디는 바뀌고 스크린에는 뉴욕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TV시리즈의 결말로부터 3년 뒤를 출발점으로 정한 영화는 기발하게, 그러나 따라가기엔 다소 벅찬 속도로, 그간의 줄거리를 정리한다. 칼럼니스트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는 시리즈 내내 만나고 헤어졌던 ‘미스터 빅’(크리스 노스)과 성숙한 연애를 진행 중이다. 미란다(신시아 닉슨)는 일하는 엄마로서 바쁘게 살고, 불임이었던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은 중국에서 입양한 딸 릴리와 행복하다. 사만다(킴 캐트럴)는 연하의 배우 남자친구와 할리우드로 떠났는데, 뉴욕에서의 삶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다. 이때 캐리가 빅과의 결혼을 발표한다. 신문 가십난은 그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고 <보그>는 “웨딩드레스가 아름다울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40대의 신부를 모델로 세워 특집기사를 준비한다. 어느새 결혼식은 초대형 행사가 돼버리는데, 결혼에 대해 늘 미적지근했던 빅은 또 한번 도망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TV시리즈의 연장선 위에 있다. 캐릭터들은 3년 동안 정말 그렇게 산 것처럼 자연스럽고, 브런치 자리에서 나누는 수다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샬롯의 딸이 동석한 자리라 “섹스”를 “색칠”로 돌려 말한다뿐이지 낯뜨거워지는 대사와 장면은 관람등급에 걸맞게 대담하다. 사만다 특유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섹시한 입담과 결벽증 샬롯, 퉁명스러운 미란다도 변하지 않아서 반갑다. <섹스 & 시티>의 목소리, 캐리도 여전하다. 이제는 40대가 된 “뉴욕의 대표 싱글녀”는 20대 여성들이 뉴욕을 찾는 이유를 간단하게 ‘패션’(Label)과 ‘사랑’(Love)으로 정리하더니, 패션감각과 경제력은 가졌으니 사랑만 이야기하자고 빨대를 꽂는다. <섹스 앤 더 시티>는 TV시리즈가 미처 다 이야기하지 못했던, 팬픽으로 쓰여졌을 법한 바로 그 이야기를 구심점에 놓는다. 그리고 드라마에서처럼 캐리와 빅이 헤어짐과 만남에 한획씩 더 긋는 동안 세명의 친구들이 마주치는 각각 다른 사랑의 장애물들이 서브플롯으로 배치됐다. 영화는 TV시리즈의 제작자였던 마이클 패트릭 킹이 제작, 각본, 감독을 모두 겸했는데, 드라마 에피소드 5편 분량의 넉넉한 러닝타임에 사랑, 신의, 우정, 패션, 섹스 등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쏟아부었다.

TV시리즈가 보여준 섹스와 인간관계에 대한 무게있는 시선을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후일담이나 팬서비스 차원에서 본다면 딱 기대한 그만큼을 보여줄 것이다. 영화는 인생이 동화 같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해피엔딩을 선택한다. 물론 그 뒤로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가장 행복해지는 선택들을 했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것이 이성이 바탕이 된 선택이 아니었다고 해도 뭐 어떤가. <섹스 & 시티> 속 캐리의 내레이션처럼 “사실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건 실수들이 아닐까.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사랑에 빠지거나 아이를 갖거나 지금의 우리로 있지 못할 테니까.”

tip/패트리샤 필드가 의상감독으로 참여한 이상 눈이 피로할 각오는 해야 한다. 랑방, 디오르, 비비안 웨스트우드, 베라 왕의 웨딩드레스가 폭풍처럼 캐리를 휩쓸고 지나는 것을 목격할 것이고, 뉴욕의 패션위크까지 스크린으로 섭렵하게 될 것이다. 정장 아니면 홈웨어로 일관하던 미란다까지 패션센스가 월등히 발전한 것은 조금 어색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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