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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한국영화] 김철영 조감독이 말하는 <크로싱>
박혜명 2008-06-20

북에서 살다온 사나이가 분출하는 아픈 진실

“<국경의 남쪽>이 북한의 고위층 계급을 그린 영화라면 <크로싱>은 최하단, 말단 계급 사람들의 이야기다.” 북한 출신 김철영 조감독의 설명은 명쾌하다. 그는 자신의 상업영화 이력을 <국경의 남쪽>으로 열었다. “<국경의 남쪽>에선 정치적 위협 때문에 가족들이 탈북하게 되지만 <크로싱>의 용수(차인표)는 가족의 약과 식량문제만 아니었으면 탈북하지 않았을 사람이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볜 땅을 밟고 수용소를 거쳤다가 남한 땅에 무사히 이르지만, 북쪽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 때문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아버지. <크로싱>의 여정은 아픔으로 점철돼 있다.

김철영 조감독이 이 영화에서 일반적인 조감독의 역할 이상을 했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장 처음 한 작업은 시나리오 모니터링이다. “아무래도 다양한 종류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보니 여러 사람의 삶이 한 사람의 한정된 인생 안에 다 들어가 있어 충돌하는 부분들이 좀 있었다.” 6주 정도 걸린 촬영지 헌팅에서부터 세트 제작 등 미술 관련은 물론이고 소품과 의상 관련, 하다못해 보조출연자들의 연기까지도 꼼꼼히 살피는 것이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본” 그의 몫이었다. “자꾸 얘기하니까 자랑하는 것 같아 가지고…”라며 웃는 그는 수용소 촬영신의 경우 수많은 보조출연자들이 제각각 어떤 동작으로 시간을 보낼지, 어떤 구호를 외칠지, 어떤 노래를 할 수 있는지 등을 현장에서 가르쳤다. “북한학과 학생들보다도 아마 더 많이 알 정도”로 연출부원들을 교육시켜 함께하긴 했지만 조감독의 몫은 훨씬 컸다.

그런 그도 북한말 가르치기는 할 수 없었다. 2001년 남한 땅을 밟은 김철영 조감독은 이제 고향 말을 많이 잊어버렸다. <크로싱> 제작진은 “남한에 온 지 6개월 미만인, 사회 접촉이 거의 없었던” 북한 출신들을 찾아 ‘남자말 선생님’과 ‘여자말 선생님’으로 두었다고 한다. 용수의 아들 준이(신명철)를 비롯한 아이들은 여자말을 배웠다.

“지금도 첫 시나리오를 받았던 날이 기억난다. 지하철 타고 집에 가면서 읽다가 눈물이 나서 책을 덮었다. (더 읽을 수가 없어서) 집에 가서 마저 읽었다. 그 뒤로도 다신 안 읽었다. 아무래도 그 회상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눈가는 조금 붉었다.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의 학생운동권처럼 정신이 좀 안 좋았다”는 그는 북한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공식적으로는 퇴학, 내 입장에선 자퇴”를 하게 됐다. 당으로부터 내려온 혁명화 명령에 1년 반 강제노동을 거친 다음 배우가 될 꿈을 가졌던 그는 “그래도 북한에 있을 때 부모님 덕에 큰 어려움없이 살았지만” <크로싱>의 용수와 준이 이야기는 곧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어떤 관객에겐 우리 영화가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멜로도 아니고 코미디도 아니고. 우리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웃거나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대신에 가장 진실된 이야기다. 진실이기에 더 불편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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