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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한국영화] 이재진 음악감독이 말하는 <모던보이>
강병진 2008-06-20

5.1채널로 생생하게 느끼는 1930년대 경성의 풍경

경성의 아침이다.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익숙한 손짓으로 축음기를 켠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경쾌한 재즈. 그런데 멜로디가 익숙하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남자는 재즈로 편곡된 <메기의 추억>을 들으며 옷을 입고, 머리를 만지고, 구두를 닦는다. “음, 멋있어.” 거울 속 용모에 만족한 남자가 발랄한 스텝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잡음으로 가득한 축음기의 음질은 5.1채널의 서라운드로 변신한다. <모던보이>의 음악을 맡은 이재진 음악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장면은 일종의 선전포고다. “아마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축음기 소리가 5.1채널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처럼 <모던보이>도 모노가 아닌 5.1채널 버전의 경성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웃음)”

음악은 <모던보이>의 “첫번째 퍼즐”이다. 1930년대 경성이 배경이자 중심 캐릭터인 영화를 만들면서 제작진이 겪은 가장 큰 고민은 “고증의 하한선과 모던의 상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란 문제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CG 등등 여러 팀이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을 설명했고 정지우 감독은 그중에서도 음악이 먼저 영화의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재진 감독이 채워 맞춘 퍼즐은 재즈였다. “유명한 재즈곡 가운데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이 있다. 처음 발표된 게 1938년이었는데, 1년 뒤에 우리나라에서 손목인이란 가수가 그 노래를 번안해 불렀더라. 당시의 경성에서 재즈는 단순히 서양문물이 아니라 하나의 대중문화로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재진 감독은 <메기의 추억> 외에도 익숙한 멜로디들을 재즈로 편곡해 영화 곳곳에 삽입했다. 극중 해명(박해일)이 문화구락부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에서는 러시아 민요인 <Dark eyes>가, 해명의 친구인 신스케(이한)가 처음으로 문화구락부를 찾는 장면에서는 흑인 영가가 들리고, 해명과 난실(김혜수)이 마주하는 화신백화점 옥상의 레스토랑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알비노니의 <Adagio>가 들리는 식이다. 시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관객의 귀에도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음악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지우 감독은 영화가 쉬웠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음악이 주된 역할을 하기보다 호흡을 진정시켜주고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기능을 하도록 했다.”

재즈가 1930년대 경성의 공기를 담는 기초였다면 난실(김혜수)이 부르는 노래들은 이야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다. 극중에서 난실은 다른 일본 가수를 위해 목소리를 빌려준다. 그녀는 언젠가는 한국어로 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다짐으로 절창한다. 이재진 감독은 당시의 가요나 동요를 찾으려 했지만 당시의 노래들이 대부분 친일 명단에 있는 작곡자들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1970년대 정미조가 부른 <개 여울>을 리메이크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김소월의 시를 가사로 해서, 30년대의 음악과 비슷한 곡조로 작곡된 노래다. “촬영 전 테스트에서 나미의 <슬픈 인연>을 부르며 정지우 감독과 이재진 감독을 만족시켰던 김혜수는 약 3개월의 트레이닝을 받은 뒤 이 노래를 불렀다. 허스키한 보이스가 매력적이었는데, 쉽게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일부러 목이 잠겨 있는 이른 아침에 녹음했다. (웃음)” 이 밖에도 <모던보이>에는 난실의 댄스를 위한 스윙곡과 이야기의 감정을 전하는 묵직한 기운의 오케스트라 세션, 그리고 에고래핑의 <색채의 블루스> 등 실제 일본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들이 삽입될 예정. 5.1채널 버전의 경성은 현재 약 90% 이상 조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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