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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의 속편 <강철중: 공공의 적 1-1>의 성취와 한계
문석 2008-06-17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은 강우석 감독 개인에겐 카운터펀치 같은 의미를 갖는 영화다. 오로지 상업영화, 오락영화를 만들어왔던 그는 <실미도> 이후 <공공의 적2>와 <한반도>를 만들면서 노선을 급선회했다. 그는 이들 영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직설화법으로 외쳤지만, 평단은 물론이고 대중적 반향 또한 그의 기대를 밑돌았다. 그가 <공공의 적>의 사실상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강철중>을 만들기로 작심했던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만들어왔다고 자부하는 오락영화, 상업영화를 통해 감독으로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지난 6월2일 기자 시사를 통해 첫선을 보인 <강철중>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은 그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다. 다양한 비판도 제기되지만 대체로 ‘무난한 오락영화’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분위기다. 상업적 지향이 명확한 영화인 만큼 결론은 관객이 내려주겠지만.

생활고에 찌들린, 달라진 강철중

<강철중>은 <공공의 적>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영화다. 6년 전 <공공의 적> 속 강동서 강력반 형사 강철중은 참 어이없는 놈이었다. 범죄자로부터 빼앗은 마약을 팔아먹으려 했고, 빈집털이 집중단속기간이라고 해서 폭력범의 증거를 조작해 실적을 챙기려 했으며, 증거보다는 개인적 원한에 바탕을 두고 용의자를 쫓아다녔다. 그러니까 강철중은 형사라기보다 무법자에 가까웠다. 선과 악의 틀 안에서 나쁜 놈쪽에 훨씬 치우쳐 있는 게 확연함에도 강철중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즉물적인 사고체계와 육체 하나만에 의지해 상황을 돌파하는 광기에 찬 괴력 때문이었다. 그의 세계에선 정의감이나 사명감 따위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의 요체라 할 수 있는 ‘무데뽀 정신’은 범죄자뿐 아니라 검사의 권력 따위도 무능하게 만들 수 있었기에 통렬함을 자아냈다. 결국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는 <공공의 적> 전반을 끌고 나가는 원동력이자 웃음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강우석 감독이 <공공의 적> 1편을 승계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공공의 적1-1’이라는 부제를 붙인 <강철중>을 만든다고 밝혔을 때, ‘그 미친놈을 다시 만나겠구나’ 하고 기대감을 갖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강철중>은 <공공의 적>에서 불러일으켰던 기대감을 그대로 충족시키는 영화는 아니다. 강철중(설경구)이 딸 미미를 위해 초등학교 일일교사로 나서는 첫 장면부터 그는 기대와 다른 행보를 걷는다. 집 전세금을 내지 못해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심지어 돈 잘 버는 산수(이문식)에게까지 손을 벌리려는 그의 모습은 고독한 (안티)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경찰 일을 때려치우겠다는 이유도 성미에 맞지 않아서라기보다 어려운 형편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직업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생활고에 찌들린 강철중이라니, 과연 그 강철중이 맞긴 한 건가. 물론 사건을 떠맡은 뒤로는 도를 넘어서가면서 수사를 펼치는 괴력을 다시금 보여주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달라진 듯한 인상을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담배도 끊었으며, 욕설까지 자제하는 철중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6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악역 이원술의 비중 높아져

물론, 영화 안에서 강철중의 지난 6년을 유추하기란 불가능하다. 굳이 상상을 해본다면 1편에 부임한 엄 반장(강신일)의 영향 아래서 강력반이 정화됐을 것이고,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사회적 여건도 갈수록 나빠져서 강철중의 부수입은 말라붙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이는 자라고 강철중의 나이 또한 마흔을 넘어섰으니 안하무인격으로 좌충우돌하는 성향도 잦아들었을 터. 하지만 <강철중>에서 강철중의 변화는 내적 논리보다는 시리즈 영화에 대한 강우석 감독의 고민과 결정적인 관계를 맺는다. ‘1편을 넘어서지 못하면 망한다고 봤다’는 그의 생각은 형사 강철중보다는 ‘공공의 적’쪽에 힘을 싣게 했다. 강철중을 더욱 망나니에 인간말종으로 그린다고 한들 영화의 톤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강 감독은 강철중의 상대인 이원술(정재영)의 캐릭터를 좀더 생생하게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원술은 <강철중>에서 돋보이는 존재다. 대외적으로는 촉망받는 기업의 CEO지만 실제론 거대한 폭력조직을 거느리며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그는 영화 초반부 매우 비열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고등학생들을 스카우트해 폭력조직원으로 양성하고, 고등학생에게 살인을 사주하며, 조직원의 범죄를 학생에게 덮어씌우는 야비하고 치사한 인간이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한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이며, 마누라에게 꼼짝 못하는 남편이고, 자신이 맡은 일은 어떤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완수해내는 ‘멋있는 깡패’다. 후반부에 가서 그의 비열한 실체는 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그는 영화 전반에 강렬한 에너지를 부여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엄 반장의 역할이 전편에 비해 상당히 강조됐고, 항상 강철중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김 형사(김정학)도 비중이 높아졌으며, 이 영화의 또 다른 축인 고등학생들의 존재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보니 <강철중>의 강철중은 영화 전편을 휘저으며 원맨쇼를 펼치던 <공공의 적> 속 강철중에 비해 매력은 덜해질 수밖에 없었다.

강철중 대 이원술, 강우석 대 장진

강철중이라는 캐릭터의 힘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는 것은 두 인물 사이의 팽팽한 대립선이다. 강철중과 이원술이 처음 대면하는 곳은 어울리지 않게도 화목해야 할 가족농원이다. 만나자마자 불꽃을 튕기는 두 사람의 대결은 이 어우러지지 않는 공간과 접합되면서 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둘이 두 번째 만나는 곳은 이원술의 집이다. 이원술의 저택에 무작정 쳐들어가 저녁상을 받고 있는 게 강철중다운 단순무식한 모습이라면, “어릴 때부터 싸움을 좀 했습니다. 싸움을 하다보니 따르는 놈 몇몇이 생기지요. 그랬더니 조직폭력배라 그러대요…”라는 원술의 말은 인간적인 느낌마저 주면서 또 다른 긴장을 부여한다. 이 장면은 강철중 대 이원술, 또는 설경구 대 정재영의 대결이라기보다 차라리 강우석 대 장진의 승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오묘한 재미를 준다. 마지막 대목의 육체 대결 또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양상을 띤다. <공공의 적> 후반부의 핵심이 마침내 헐크로 폭발한 강철중의 모습이라면 <강철중>에서는 오랜만에 임자를 만난 싸움꾼들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의 느낌이 강하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사이에 동류의식 같은 게 엿보인다는 사실이다. 강철중은 고등학생들의 일대일 싸움의 심판을 보다가 칼을 꺼낸 쪽 학생을 한방에 보낸다. 살인사건에 휘말린 고등학생들과 강철중의 유대가 형성되는 것은 이때부터다. 강철중이 고등학생들에게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고 말하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그 또한 고등학교 시절 비슷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요즘 애들 한 성질 하거든요”라는 한 학생의 말에 “그 애가 커서 된 게 바로 나다”라는 그의 이야기처럼. 원술 또한 경찰서 유치장에서 고등학생 안태준(연제욱)을 본 뒤 “하긴 나도 저 나이 때 시작은 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들과의 유대감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비슷한 과거 때문인지 후반부의 격투신에서는 두 사람의 동질감이 묻어난다.

포인트는 강철중의 의지와 코미디

물론 <강철중>은 마이클 만의 <히트>와 차원을 달리하는 영화다. 강우석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알고보면 똑같은 내면을 가진 마초 남성간의 대립이 아니라 역시나 공공의 적을 처단하려는 강철중의 의지다. 하지만 그 의지는 강철중답지 않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은 자신의 얼굴을 칼로 벤 자에 대한 분노 때문에 열을 올리지만, <강철중>의 강철중은 아이들을 스카우트해 살인병기로, 총알받이로 써먹는 범죄집단에 분노해 수사에 착수한다. 그 분노심은 고등학생과 자신의 유대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직업적인 소명의식을 앞세운 것이기에 어색해 보인다.

코미디 또한 강우석 감독이 <강철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강철중이 수사를 펼치는 과정에서 범인과 대립하며 터져나오는 코믹한 상황이 전편과 유사하다면, 이원술이 자신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참신해 보인다. 1편에서 이어지는 코미디도 있다. 산수와 용만(유해진)의 등장뿐 아니라 마지막 대결에서 강철중이 권총을 꺼내자 이원술이 “공포탄 쏘면 자빠졌다가 일어나라고?”라 말하는 장면은 1편에서 이성재가 공포탄에 맞은 줄 알고 쓰러졌던 장면을 비튼 것이다. 다만 1편에서만큼 선굵은 코미디보다 산재해 있는 자잘한 유머에 힘을 기울인 것은 아쉬운 점이다. 장진식 유머와 강우석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은 기이한 조화를 이루기도 했지만, 때때론 잘 접합되지 않은 인상도 준다.

캐릭터 시리즈 영화의 가능성

<강철중>은 한국영화계에서 캐릭터 시리즈 영화의 가능성을 점쳐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상업영화라는 맥락에서 시리즈 영화는 중요성을 갖는다.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해 관객의 일정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상업적인 안정성이라는 면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계에서 한 캐릭터와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연이어 시리즈 영화를 이어나간 경우는 드물었다. <장군의 아들>과 <돌아이> 정도가 3편을 넘겼을 뿐 <투캅스> <두사부일체>와 <조폭마누라> 등은 결국 캐릭터와 배우의 변화를 겪었다. <공공의 적> 시리즈 또한 <공공의 적2>를 번외편으로 친다면 <강철중>이 2편에 해당하니 아직 그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시리즈 영화로서의 <강철중>은 그 매력이 조금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그건 당연히도 강철중이라는 괴물 같은 캐릭터의 맛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시리즈물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다이하드>나 <리쎌 웨폰>이 그랬듯, 속편이란 ‘반복이고 답습 아냐’라는 반응과 ‘왜 전편과 다르냐’는 상반된 반응 속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공공의 적> 시리즈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여전히 1편의 강철중이 한국영화계가 낳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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