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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위조지폐 범죄 재구성 <카운터페이터>
이영진 2008-07-02

범죄 모방 위험 지수 실화 충실 재현 지수 ★★★☆ 할리우드 진출 염두 지수 ★★★★

슈퍼노트 혹은 슈퍼달러. 출처에 관해선 논란이 있으나 대개 북한이 1990년대부터 만들어서 대량으로 유통시켰다는 위조지폐를 부르는 말이다. 전문가라고 해도 육안과 촉감으로는 구별이 어려울 정도여서 슈퍼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슈퍼달러와 함께 약방의 감초 격으로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나치 장교였던 베른하르트 크루거. 2차 세계대전 중 ‘신의 손’을 지닌 유대인을 차출해서 “영국 국고의 4배에 달하는” 가짜 파운드를 찍어내 전시 경제를 뒤흔들었다. <카운터페이터>는 60여년 전‘베른하르트 작전’이라고 명명됐던 이 희대의 위조지폐 범죄를 재구성하는 영화다.

1936년 베를린. 살로몬 소로비치(카알 마르코빅스)는 독보적인 위폐 제조 기술자다. 레지스탕스에게 위조문서를 만들어주며 살아가지만 특별한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다. 살로몬에게 레지스탕스는 그저 고객일 따름이다. 화가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그림 솜씨도 지녔으나 나치 완장 앞에서 목숨을 걸고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의 블라디슬로프와는 다르다. 화가로서의 재능을 알아본 한 여인에게 살로몬은 “예술해서 왜 돈 버나? 돈이야 직접 만들면 훨씬 편한걸”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전쟁의 포성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살로몬의 재능은 얼마 뒤 수용소에 감금되면서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카운터페이터>의 초침은 살로몬이 독일군의 베른하트 작전에 투입되고, 그곳에서 투철한 신념의 레지스탕스 브루거를 만나면서부터 빨라진다.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도 적을 도울 수 없다”는 인쇄공 브루거와“난 오늘 총살되느니 내일 가스실에 가겠어”라는 살로몬. 이들 사이에 채찍과 당근을 양손에 든 헤르조그 소령이 끼어들면서 베른하트 작전은 생명줄을 담보로 맡긴 도박판이 된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장막을 애써 들추기보다는(대부분 보여지지 않고 사운드로 대치된다. 배우들의 생생한 리액션이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든다) 원치 않는 게임에 끼어 매 순간 베팅해야 하는 인물들의 표정에 집중한다. 대학살이라는 울타리가 아니라면 영락없는 할리우드 범죄물이다.

과거 스콜피온스, 노 머시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던 슈테판 루조비츠키 감독은 <신이 버린 특공대> <아나토미>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한 감독. 후반작업 중인 최신작은 가족영화다. <카운터페이터>에서도 긴장을 배가시키는 편집(한숨 돌리려고 하면 살로몬 혹은 그의 동료들은 언제나 위기에 처한다)이나 이야기를 매끄럽게 만드는 장치들(탱고와 도박판, 살로몬의 닭고기,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나치의 하사품 탁구대)을 운용하는 솜씨는 눈여겨볼 만하다. 평생을 무기력과 공포에 시달리며 살았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뒤집어 해부하겠다는 야심은 애초 두지 않은 듯. 2007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첫 상영된 <카운터페이터>로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수상했으니 앞으로 할리우드로부터 정식 초청장을 받아들지도 모를 일이다.

tip/ 오스트리아의 토플리츠 호수. 패전 직전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엄청난 위조지폐를 버린 곳이다. 1980년대 들어 오스트리아 해군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당시 독일군의 동판, 위조지폐 등을 건져냈으나 반세기 넘게 목숨 걸고 호수에 뛰어드는 간큰 이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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