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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기 두려운 싱글여성 <브로큰 잉글리쉬>

말랑말랑 로맨틱코미디 지수 ★★☆ 우중충한 연애 지수 ★★★☆ 파커 포시의 현실감 지수 ★★★★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상태가 아니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일까? 감독 조 카사베츠는 이런 질문에서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정한 나이에 접어들면 좀처럼 피하기 힘든 질문이 ‘결혼은 했느냐’이다. 아직 안 했다면 도움도 안 되는 걱정 한 바가지나 좀 쿨한 척하는 ‘결혼은 안 해도 만나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작 홀로 있는 시간들보다 그런 말과 쓸데없는 걱정들이 싱글을 더 못살게 군다는 사실. 뉴욕의 호텔에서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브로큰 잉글리쉬>의 주인공 노라(파커 포시)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홀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은 다 사랑에 잘도 빠지는데 내게 뭔가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사방에서, 그리고 자신에게서 쏟아진다.

그녀가 자괴감에 빠지는 것은 남자들과의 데이트가 ‘난 영원히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때 시작된다. 멋진 배우와 데이트는 바보 같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엄마가 주선해준 선을 통해 만난 남자는 전 애인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고백으로 김을 팍 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실제로는 잘못된 남자들이 그녀를 잘못 투영하는 것일 뿐인데, 그녀는 자신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정작 연하 프랑스 남자 줄리앙(멜빌 푸포)이 적극적으로 대시해오자 발을 슬슬 뺀다. 이 남자와의 사랑도 당연히 부정적으로 끝날 텐데 거기에 올인했다가는 자신이 잃을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라는 줄리앙을 찾아 파리로 떠난다. 하지만 그녀는 파리에서 줄리앙보다 더 많은 것들을 만난다. 이 영화는 혼기를 훌쩍 넘긴 평범한 외모의 전문직 여성이 준수한 외모의 연하남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에서 ‘삼순이’의 계보를 잇지만 세련이 낭자한 뉴욕과 낭만이 철철 넘치는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달콤함보다는 현실감각에 더 중점을 둔다는 차별성이 있다. 불안하지만 기대감에 젖게 만드는 이 작품의 결말은 사랑에 빠지기도, 그렇다고 혼자이기도 두려운 싱글 여성들에게 ‘프로작’ 같은 위안은 아니지만 ‘비타민’ 같은 위로는 줄 수 있을 것 같다.

tip 감독 조 카사베츠는 배우이자 감독인 존 카사베츠와 배우 지나 롤랜즈의 딸로 오빠, 언니, 할머니까지 모두 배우이거나 감독인 말 그대로 영화가족 출신이다. 덕분에 이 작품에서 노라의 엄마로 등장하는 지나 롤랜즈와 새아빠로 등장하는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아기 때부터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는 1991년 이후 배우로 활동하다가 1994년에는 소피아 코폴라와 함께 <Hi Octane>이라는 TV시리즈를 진행하기도 했다. 2000년에 만든 단편으로 선댄스에 초청되기도 했으나 <브로큰 잉글리쉬>를 통해 각본가 겸 감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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