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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오래된 갈등의 골 <레몬트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지수 ★★★★ 중년여인들의 공감대 지수 ★★★☆ 히암 압바스의 매력지수 ★★★★

있을 수도 있는 테러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일과 아버지가 물려준 삶의 터전을 보존하는 일, 둘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전자가 가상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라면 후자는 실제적인 생존 수단을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에란 리클리스 감독의 <레몬트리>는 이런 문제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오래된 갈등의 골을 조망한다. 아버지가 물려준 레몬농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던 살마(히암 압바스)의 옆집에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이사 온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자리잡고 있는 레몬나무 숲은 남편을 여의고 아이들을 모두 타지로 떠나보낸 살마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경제적 터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과 안보국의 눈에는 테러리스트들이 몰래 침입하기에 딱 좋은 은닉 통로처럼 보일 뿐, 그들은 그곳에 경계초소를 세우는 것도 모자라 나무를 모두 뽑아버리겠다는 통지를 보낸다. 살마는 변호사를 찾아가 소송을 제기하고 대법원까지 가는 투쟁을 불사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3천년간 지속되어온 갈등, 그것이 살마의 레몬나무들을 타고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레몬트리>가 살마와 나본 국방부 장관 사이의 갈등에만 집중했다면 혀끝을 아리게 하는 시큼한 맛만 남겼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살마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대접하던 새콤달콤한 레모네이드 향을 품게 된 것은 갈등 사이로 스며든 사랑과 공감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살마는 아들뻘인 변호사 지아드(알리 슐리만)와 애틋한 감정을 나누고, 국방부 장관의 부인인 미라(로나 리파즈 미셸)와 말없이 교감한다. 살마는 지아드와의 감정이 무르익기도 전에 여전히 여성에게 폐쇄적인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의 규약들과 부딪히게 된다. ‘당신의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이라는 말이 지긋지긋하게 살마를 따라붙고,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이라는 강요된 복수주어가 그녀의 선택을 미리 제약한다. 미라는 언제나 아버지 이야기를 들먹거리며 교묘한 정치적 발언으로 이웃집 여인의 고통을 묵살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내조하기 위해 포기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평범한 이웃이 되고 싶었던 그녀의 소원은 너무나 오래된 반목의 역사와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상황이라는 거대한 담론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의 표상처럼 군림하는 남편의 권위적인 태도에 의해 묵살당한다.

주요한 갈등 사이에 배치된 이런 일상적인 번민들은 이 영화의 주제를 두 민족간의 특수한 갈등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시킨다. 감독이 이 작품은 ‘정치영화가 아니라, 어떠한 고착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통쾌한 승리감이나 거창한 정의를 부르짖는 할리우드식 엔딩이 아닌 담담한 결말은 이 작품이 거짓된 위안보다는 단단한 현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Tip/<레몬트리>는 안보문제 때문에 나무를 뺏기게 된 여성의 실화를 토대하고 있으며, 레몬농장과 장관 저택 사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이스라엘 정부가 설치하고 있는 분리장벽을 암시하는데, 이 장벽을 둘러싸고 테러방지를 위한 방어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쪽과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적으로 합병하고 경제적 피해의 원인이라고 규탄하는 쪽, 양 진영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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