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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박물관 전시품 기증 릴레이 45] <난중일기>와 <세종대왕>의 세트도면

<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45번째는 조경환 미술감독이 기증한 <난중일기>와 <세종대왕>의 세트도면입니다.

“방화 사상 최대 제작비 3억원, 1년6개월의 촬영기간, 거북선 등 병선 31척의 실제 크기 제작, 미니어처 특수촬영, 20만명 출연”이라는 홍보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난중일기>(장일호, 1977)는 유신정권이 주도한 국책영화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규모’를 강조한 영화다. 5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신성일, 선우용녀, 박암, 이순재 등 화려한 캐스팅의 <세종대왕>(최인현, 1978)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길종 감독은 당시 <난중일기>에 대해 ‘관객은 정부가 이 영화에 박수를 치고 (외화쿼터) 보상을 하게 된 이유를 확연히 알게 된다. 군력이 곧 국력이며 왜적이 곧 북괴로 비유’되어 이 영화의 목적성이 너무나 쉽게 노출되어 영화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고 썼다. ‘한국영화의 육성과 발전’을 기치로 내세웠던 국책영화들은 관객에게 외면당했고 1970년대 영화산업의 불황을 오히려 부추겼다.

당시 영화에서 손을 떼고 ‘유료 낚시터’나 해보자고 생각했던 미술감독 조경환에게 국책영화 제작은 귀가 솔깃하는 일이었다. <난중일기>에서 시도했던 미니어처 특수촬영과 고증을 거쳐 실제 크기로 제작한 거북선, 아군 장선, 왜선, 명나라 장선을 바다 위에 띄워놓고 찍은 해전장면의 스펙터클은 성공적이었고, <난중일기>와 <세종대왕>으로 16회와 17회 대종상 미술상을 연속 수상했다. 1935년 포항에서 태어나 우연히 시작했던 극장 간판을 그리던 대구의 한 간판가게 일을 인연으로 무대미술을 거쳐, 영화미술을 하던 갈이준에게 스카우트되어 <인생화보>(이창근, 1957)로 데뷔한 조경환 미술감독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며 광고미술을 포함해 2천여편의 작품에 크레딧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