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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그녀는 여전히 계단 위쪽에 서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하고 가장 대중적인 스타 카트린 드뇌브

카트린 드뇌브

그녀는 여전히 계단 위쪽에 서 있었다. 올 칸영화제의 프랑스 스타. 그 이름은 카트린 드뇌브. 알랭 들롱, 브리지트 바르도, 장 폴 벨몽도는 모두 현대영화라는 기차를 놓쳤다. 중간에 올라탔던 소피 마르소, 에마뉘엘 베아르도 결코 카트린 드뇌브의 자리를 가로채진 못했다. 아르노 데스플레생 감독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마치 여왕이나 다름없었던 카트린 드뇌브. 그녀는 올 연말까지 서너편의 다른 작품에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1960년대 말부터 중단없이 활동하고 있는 드뇌브의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본받을 만한 예인 동시에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마릴린 먼로와 마찬가지로 드뇌브도 금발로 변신하면서부터 영예를 누리게 된 여배우 중 하나다. 1963년 <쉘부르의 우산> 이후, 드뇌브의 태양빛 머리칼은 아몬드형 두눈과 매혹적인 대비를 이룬다. 드뇌브가 가진 광채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녀는 새 원피스를 입고 있고 애인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아직 어린 숙녀 드뇌브는 그 손을 저지하며 말한다. “내겐 아직 가시가 많이 돋아나 있어요.” 그녀를 만지는 사람이면 누구든 그녀의 가시에 찔리게 된다.

다른 프랑스 여배우들과는 달리 드뇌브가 전신누드를 찍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그녀는 의도적으로 옷을 반쯤만 벗는다. 스타킹 윗부분 혹은 스타킹 고정용 끈만 내보인다든지, 브래지어 어깨끈 하나만 살짝 드러낸다든지…. 그건 <로슈포르의 숙녀들>에서 사랑에 빠진 한 선원이 노래하고 있듯 “수천 가지 야릇한 꿈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천명의 벌거벗은 여자들보다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녀를 더욱 간절히 원하게 하기 때문”이다. 드뇌브에게서 퍼져나오는 황금빛 광채 아래서 본 그녀는 마치 모피로 된 롱코트를 걸친 가짜 숫처녀 같은 인상을 늘 준다.

그 어느 때보다 여배우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성스런 이미지를 가꾸는 데만 전력하고 있는 오늘, 이런 드뇌브의 색다른 선택은 많은 교훈을 준다. 1965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혐오>에서 드뇌브는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는 살인녀로 나온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녀는 다시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세브린느>에서 꽁꽁 묶인 채 채찍에 얻어맞거나, 혹은 진흙에 뒤범벅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작품에서 한 공작(公爵)은 장례식용 관 안에 누워 있는 그녀를 원하기까지 한다. 또한 1969년작 <트리스타나>에서는 동 루이가 그녀를 톨레드의 한 교회에 있는 묘석의 횡와상 위에 드러눕히기도 하고, 1971년작 <리자>에서 마르코 페레리는 드뇌브의 목에 개줄을 걸어놓고 완전히 개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한편, 최근 드뇌브는 미국 TV시리즈 <닙/턱>의 한 에피소드에서 죽은 남편의 재를 자신의 인조유방 속에 이식해 넣는다! 드뇌브가 맡았던 그런 역할들조차 프랑스적인 멋의 명백한 상징인 드뇌브 여왕의 명예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

드뇌브는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작품에 자주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우상이다. 사실 그녀도 대중성을 노린 코미디쪽으로 잠시 우회한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출연작들은 예술적 조건을 철저히 갖춘 작품들이다. 드뇌브는 여러 잡지에서 루이 뷔통의 광고모델로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라스 폰 트리에, 마뇰 드 올리비에라, 라울 루이즈 같은 감독들의 작품이나 레바논 출신 감독의 처녀작에 출연하기도 한다.

드뇌브가 맡았던 역할 중에는 그녀에게 그다지 큰 영광을 안겨주지 않은 작품들도 꽤 있다. 그녀는 이자벨 아자니 같은 배우와는 달리 결코 오스카의 완벽함을 겨냥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연기는 뒷전에서 하는 연기다. 드뇌브는 애교를 떨지 않는다. 특별한 포즈를 취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일종의 방 안의 향기와도 같다. 그녀는 그렇게 은은하고 마술적으로 현존한다.

나는 한번 드뇌브를 스쳐간 적이 있다. 몇해 전이던가. 센 거리에서, 그 회색빛의 파리 거리에서, 나는 익명의 그 실루엣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뒤돌아섰을 때 그녀는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나는 문득 <시라노 드 벨주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대사 하나를 떠올렸다. “당신 덕분에 드레스 하나가 내 인생을 스쳐갔소.” 카트린 드뇌브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스타다, 40년 동안 내내 스쳐가기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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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