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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활극의 쾌감을 느껴라

만주웨스턴 특별전, 8월21부터 31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려

액션영화 <최후의 유혹>으로 데뷔한 정창화 감독은 1960년, 정릉에 2만평 규모의 오픈세트를 지어 중국의 어느 소도시를 만들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61년 초에 개봉한 이 작품의 제목은 <지평선>. 이른바 ‘대륙물’, ‘만주활극’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장르의 효시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우리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 두편의 ‘활극’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를 만나고 있다. 냉전기의 한반도, 분출하는 4·19 혁명의 에너지 속에서 나타난 이 새로운 상상력은 그 오랜 세월을 뚫고도 다시 새로움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번 만주웨스턴 특별전은 그 역사를 돌아보기 위한 자리다. 아쉽게도 <지평선>은 필름이 유실되었지만 이야기는 그 이듬해부터 다시 이어진다. 정창화 감독 아래에서 조감독으로 연출 수업을 쌓은 임권택 감독은 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다. 웨스턴이 정통과 이를 비틀어 보여주는 다양한 하위 장르를 낳았듯이 이른바 ‘만주웨스턴’에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데, <지평선>과 <두만강아 잘 있거라>는 이 장르의 초기적 경향을 잘 보여준다. 만주, 하얼빈 등을 거점으로 삼은 독립군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구도는 어쩌면 이 장르 초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습이었을 것이다. 대륙이라는 넓은 공간적 배경과 식민지시기 독립운동이라는 신화적 내러티브는 웨스턴 장르를 토착화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을 테니 말이다. 장동휘가 주연을 맡은 <소만국경>(1964)과 <불붙는 대륙>(1965), 신영균이 주연한 <광야의 호랑이>(1965)는 그런 경향을 잇는 작품들. 독립운동을 했으나 거래상대의 배신으로 좌절하고 국제 갱단의 두목이 된 권춘조(<소만국경>의 장동휘)와 독립군 아버지를 둔 관동군 헌병 강지석(<불붙는 대륙>의 황해)은 그런 ‘정통’ 만주웨스턴의 장중함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다섯명의 죄수들이 독립군을 도와 활약한다는 설정의 <광야의 호랑이> 역시 경쾌하지만 그런 무게를 내면화하고 있다. 정창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광야의 결사대>(1966)는 대적할 상대를 일본군에서 해방 뒤의 팔로군(중국공산당)으로 바꾸어 변주를 준 작품이며, 독립군을 돕는 주인공이 나오는 <여마적>(1968)은 ‘여성’과 ‘마적’을 주인공으로 한 특색있는 작품이다.

60년대 후반에 나타난 일련의 작품들은 이런 경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만주 벌판과 일본군, 독립군, 마적대가 등장하는 시공간적 배경은 비슷하지만 이제 주인공들은 독립운동에 가담하기보다는 우연찮게 도움을 주고 사라지는 외로운 방랑자에 가깝다. 신상옥이 감독하고 신영균, 최은희가 주연한 <무숙자>(1968)는 제목에서부터 그러한 캐릭터의 등장을 노골적으로 선언한다(토니노 발레리의 73년작은 이 작품과 무관하다). 마적들을 물리치는 검객이 등장하는 만주활극 <>(1968)의 주인공 영(독고성)도, 일본군에 무참히 살해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만주를 헤집고 다니는 <황야의 독수리>(1969)의 동혁(장동휘)도 혼자가 되어 길을 떠나는 ‘무숙자’들이다.

이번 특별전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인 <당나귀 무법자>(1970)와 <쇠사슬을 끊어라>(1971)는 그러한 무국적의 정체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작품들. 김지운, 류승완 감독이 입을 모아 인용하는 <쇠사슬을 끊어라>는 애국이나 정의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세명의 무숙자들이 ‘돈이 되는’ 보물을 찾아 경쟁하는 한바탕 소통을 경쾌하게 그린 작품. 구봉서가 주연한 <당나귀 무법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아무런 설명조차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듯, 영화는 노골적으로 서두의 웨스턴을 패러디하며 무국적의 웃음을 선사한다.

8월21일(목)부터 31일(일)까지 열흘간 진행되며(25일 휴관), 첫날인 21일에는 <다찌마와리…>의 류승완 감독(오후 2시 <황야의 외팔이> 상영 뒤)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오후 8시 <쇠사슬을 끊어라> 상영 뒤)을 초청한 관객과의 대화가 준비되어 있다(자세한 일정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www.koreafilm.or.k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