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아이들의 뛰어난 모방력을 영리하게 이용 <빅 시티>
장영엽 2008-09-10

어른 모방 지수 ★★★★ 풍자 지수 ★★★★ 해피엔딩 지수 ★★☆

인디언과 백인이 위태롭게 공존하던 1880년의 미국 서부지역, 인디언의 갑작스런 습격으로 작은 마을 ‘빅 시티’의 평화는 깨진다. 그런데 어른들이 전쟁터에서 지옥을 겪는 동안 마을에 남은 열두살 미만의 어린이들은 천국을 경험한다. 길거리 한가득 비누거품을 띄우고 마을 바를 점령해 코끝이 빨개지도록 술을 마시고, 이가 아플 정도로 군것질을 해도 잔소리할 사람 하나없는 마을은 피터팬의 나라 같다. 무절제한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조숙한 어린이 한명이 “이대로 살 수는 없다”며 마을의 재정비를 요구한다. 술 마시느라 전쟁터에 나가지 못한 주정뱅이 아저씨의 제안으로 어린이들은 각자의 부모가 하던 일을 맡아 마을을 돌보기로 한다.

<빅 시티>는 아이들의 뛰어난 모방력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영화다. 에누리가 절대 없는 은행장집 아들과 터프하고 남자다운 카우보이의 아들, 1달러를 줘야만 키스를 허하겠다는 술집 작부의 딸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똑같이 부모의 행동을 따라한다. 이들이 모방하는 건 어른들의 습관만이 아니다. 시장 아들의 백인 우월주의는 중국인과 흑인에 대한 공개적인 차별로 이어지고, 금광에 대한 부모의 야망을 물려받은 부잣집 패거리들은 아무 언덕에서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린다. 어린이 관객이라면 이토록 대담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또래 연기자들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어른 관객의 입장에서는 기존 어른 세계의 모습을 재빨리 흡수하고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마냥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듯하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의 잘못된 통념을 꼬집는 영화는 얼마든지 있어왔으나, <빅 시티>가 구사하는 블랙코미디는 확실히 할리우드 어린이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방식의 유머다. 그건 감독 드자멜 벤살라와 모든 아역배우들이 프랑스 출신이라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도 결국엔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여느 할리우드 키드 무비와는 달리 <빅 시티>의 결말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며, 씁쓸한 대신 여운이 길다. 지나치게 밝거나 경쾌하지 않은 프랑스 아동영화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미국이 중요한 배경이며 백인과 인디언 사이의 갈등을 다룸에도 모든 등장인물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는 점은 의도와는 관계없이 엉뚱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tip/<빅 시티> 곳곳에는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과 지명, 문화적 아이콘이 등장한다. 밤이면 밤마다 고양이를 봉지에 묶어 강물에 집어던지는 악동들은 KKK단 복장을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핍박받는 흑인 아이의 이름은 인디펜던스(독립)다. 미국의 유명밴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이름을 딴 가게가 눈에 띄며, 마을 제일의 훈남 카우보이 소년 제임스 웨인이 상상하던 미래의 아들 이름은 당연히 ’존 웨인’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