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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의 시대극 버전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
이화정 2008-10-01

<섹스 앤 더 시티> 지수 ★★ 로맨틱 감성 업그레이드 지수 ★★★ 칙릿 지수 ★★★★

가정교사로 일하는 페티그루(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융통성없는 성격 탓에 번번이 해고된다. 떠돌이 신세로 전락할 즈음, 그녀는 얼떨결에 클럽 가수 라포스(에이미 애덤스)의 매니저가 된다. 젊고 아름다운 라포스는 뮤지컬 극단주의 아들, 부와 명예를 지닌 클럽 주인 닉, 그리고 가난한 로맨티스트 피아니스트 마이클을 동시에 사귀는 자유연애주의자다. 파티와 공연이 이어지는 긴 하루 동안 페티그루는 세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라포스의 연애상담사가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에 눈감았던 자신 역시 중년의 유명 디자이너 조 블룸필드와 로맨스를 이루게 된다.

‘숨겨진 제인 오스틴’으로 뒤늦게 조명된 영국 작가 위니프레드 왓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만나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복잡한 심리에 비하자면 다소 헐겁지만, 목사의 딸로 태어나 도덕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페티그루가 런던 사교계에 도래한 자유로운 섹스와 연애, 결혼 등을 접하면서 점차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는 과정은 변화를 꿈꾸던 당시 여성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1938년 발간 당시 유니버설스튜디오가 영화화를 시도했다가 2차대전으로 취소됐고, 70년이 지난 지금에야 다시 스크린으로 재가공됐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부각, 캐릭터들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영화는 원작보다 한층 심화된 갈등을 표출한다. 그러나 ‘칙릿’의 원조라 해도 아깝지 않을 원작의 장점은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온다. 사랑과 섹스, 연애에 대한 당시 여성들의 가치관은 가벼운 전개와 빠른 템포 속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30년대 한창 유행했던 스크루볼코미디의 티격태격 사랑싸움의 바탕 위에, 스윙재즈의 신나는 선율, 아르누보 양식의 인테리어, 샤넬, 발렌시아가 스타일의 화려한 패션까지, 영화에는 런던 사교계의 파티 피플의 분위기가 담뿍 묻어난다. 특히 페티그루가 란제리 쇼를 관람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 영화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시대극 버전임을 증명해주는 듯하다.

페티그루가 겪는 하루 동안의 소동극을 통해 결국 영화는 돈과 지위에 구속받지 않는 진정한 사랑을 설파한다. 그러나 이렇게 진부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꽤 훈훈한 매력을 잊지 않는다. 바로 도덕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던 페티그루와 무책임한 연애를 일삼던 라포스가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절충된 가치를 습득하는 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여성들간의 우정이다. 둘의 교감은 원작보다 다소 희석됐지만 여전히 이 영화를 다른 로맨틱코미디와 다르게 특별하게 해주는 요소다. 표정의 변화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얼굴에 내면의 무한한 요동을 고스란히 담아낸 페티그루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이 영화를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Tip/ 목사의 딸로 도덕적인 관습에 얽매여 살아온 페티그루. 그런데 우연히도 이 역을 맡은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 역시 양아버지인 캐나다의 목사 버난 맥도먼드 손에서 자랐다. 평생 ‘빌어먹을’ 정도의 욕도 해보지 않고, 술, 담배, 섹스를 죄악이라 여기는 페티그루의 연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어쩌면 실제 맥도먼드 개인의 삶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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