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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편의 동화이자 사랑 이야기 <렛미인>
이화정 2008-11-12

주연배우에 혹할 지수 ★★★★★ 평생 남을 이미지 각인 지수 ★★★★★ 뱀파이어 장르의 신선 지수 ★★★★★

무조건적인 찬사를 줘도 아깝지 않을 영화. <렛미인>은 섣부른 평가에 행여 영화의 순수함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초대받지 않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인간의 공간. 뱀파이어의 속성에 기초한 원제 ‘Lat Den Ratte Komma In’은 ‘들어가도 되니?’, ‘들어가게 해 줘’라고 허락을 구하는 뱀파이어의 언어를 일컫는다. 그러나 정작 뱀파이어 장르는 <렛미인>으로 들어가기 위한 진입로에 불과하다. <렛미인>은 <언더월드> <반헬싱> 등 최근 뱀파이어 영화가 흔히 보여줬던 강렬한 음악과 특수효과, 화려한 액션 모두를 철저히 무시한다. 섬뜩한 유혈이 존재하지만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편의 동화이자 사랑 이야기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12살 오스칼(카레 헤데브란트). 햇빛에 바스라질 것 같은 금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연약한 체구의 소년에게 자신을 둘러싼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범죄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거나 나이프를 가지고 애꿎은 나무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또래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를 만나면서 오스칼의 닫힌 마음도 서서히 문을 연다. 검은 머리, 똘망한 눈망울의 이엘리는 상상 속 복수를 키우는 자신과 달리 추위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그 무렵 피가 빨린 시체들이 등장하면서 마을이 흉흉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스칼은 이엘리가 생존을 위해 피를 필요로 하는 흡혈귀임을 알게 된다.

<렛미인>은 스웨덴 작가 욘 린퀴비스트의 베스트셀러 소설 <Lat Den Ratte Komma In>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어둡고 비장한 원작의 세계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손길 아래 따뜻한 감성의 빛을 부여받는다. 쉼없이 눈이 내리는 차가운 북구의 풍광은 소음을 차단한 영화 속 침묵과 어우러지면서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해낸다. 뱀파이어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알프레드슨 감독은 공포영화에 으레 등장할 만한 요소를 하나둘 제거하고,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엑기스만 남겨둔다. 외모부터 성격, 어느 하나 같지 않은 오스칼과 이엘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식되지만 결국 이엘리는 오스칼이 그토록 바라는 강한 자아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뱀파이어 장르, 성장영화, 멜로드라마, 블랙코미디까지 아우르는 <렛미인>은 이 모든 장르에 구속받지 않는 신선한 감각으로 예테보리, 시체스, 에든버러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tip/ <렛미인>의 원작자 욘 린퀴비스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마술사, TV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독특한 인물이다. 원작은 2004년 출간 되자마자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덴마크·독일·미국 등지에서 영화화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자신의 맘에 드는 스웨덴 연출자를 찾기 위해 그의 거절은 계속됐다. <렛미인>의 제작자 칼 모린더가 영화화를 제의한 건 이미 40번이 넘는 거절이 있고 난 뒤다. 설득을 도맡은 출판 담당자는 녹다운된 상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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